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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Mar 30. 2022

100대 명반 TOP 100 Albums (2)

~61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100장의 목록을 작성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클래식을 꼽느냐 또는 X가 Y보다 나은지, Y가 Z보다 나은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목록을 작성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X가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앨범보다 더 나은 장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반 독자들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기술해하는 점이 고비였다. 물론 공감대를 얻으면 좋겠지만, 독자들과 어떤 매체로도 서로 소통한 적이 없다. 우리는 연령, 지역, 성별, 기호, 취향, 종교, 키, 몸무게에 상관없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100대 명반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몇 마디를 건네고자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공통의 열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순수한 마음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80 : N.W.A. / Straight Outta Compton (1988)

갱스터 랩이 일으킨 평지풍파는 워싱턴 정가와 FBI를 소환되기에 이르렀다. 빈민가 갱스터들의 애환을 내뱉으며 N.W.A. 은 사고를 칠수록 도리어 유명세를 더해갔다. 닥터 드레, DJ 옐라와 아라비안 프린스가 제공한 비트는 머지않아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라고 명명되고, 미국의 모든 가정에 랩 음악이 침투하게 되는 길을 닦았다. 


세월이 흘러, 한때 공공의 적이 되었던 같은 「Straight Outta Compton」이 현재 美국회도서관에 있다. 





#79 : 아델 / 21 (2011)

스트리밍 시대에 굳건하게 다이아몬드 레코드(천만장 이상)를 기록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3천만장 넘게 팔린 <21>은 거창한 야심도, 불타는 창작력, 눈부신 비전도 찾아볼 수 없다. 안전한 기획의 블록버스터지만,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홀로 상처를 이겨내는 절절한 과정을 우리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78 : 더스티 스프링필드 / Dusty In Memphis (1969)

아델, 에이미 와인하우스, 더피, 조스 스톤, 팔로마 페이스 같은 백인이 부르는 흑인 소울 이른바 ‘블루 아이드 소울’을 개척한 선구자다. 애틀랜틱 레코드는 런던 출신의 더스티 스프링필드를 미국으로 초대한다. 그녀가 애정하는 아레사 프랭클린과 오티스 레딩의 세션 멤버들과 녹음한다는 생각에 멤피스에 당도한다. 악보를 받아 든 더스티는 자신이 불러야 할 곡이 반항적인 휭크(Funk)가 아니라 고상한 척하는 성인용 발라드라는 사실에 발끈했다. 모타운 스타일의 "I Don’t Want To Hear It Anymore"은 영국 4위(미국 14위)로 히트했다.      


프로모션 싱글 "Son Of A Preacher Man “은 영국 차트에서 9위(빌보드 10위)로 성공적이었으나 앨범이 나오기까지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단순한 팝이 아닌 ‘미국적인 소울’을 원했고, 그런 마찰 끝에 뉴욕으로 옮겨져 레코딩 작업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발매된 지 3달 이 지나기도 전에 디온 워릭,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Dusty In Memphis」와 유사한 앨범을 내기 시작하면서 금세 재평가가 이뤄졌다. 이 같은 ‘스탠더드 팝과 진중한 R&B의 결합’은 컨템퍼러리 R&B, 트립합, 블루 아이드 소울의 미래를 바꿨다.   





#77 : 비요크(Bjork)/ Homogenic (1997)

'20세기 최고의 일렉트로닉 앨범'중 하나인 「Homogenic」는 90년대 음악의 모든 동향을 읽을 수 있는 문화재다. 세기말 사이버 세상을 그리면서도 인간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고 트립 합도 아니고,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클래식도 아니며, 전통적인 팝도 아닌 제4차원으로 안내한다. 

     

"All Is Full of Love", "Bachelorette", "Jóga", "Pluto" 등 아이슬란드 사이렌의 감정적 풍경은 화산 폭발처럼 격렬하다. 참신한 음악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동세기의 숀베르크, 드뷔시, 프로코피예프에 견줄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현재도 리얼 악기와 가상 악기를 융합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활발하지만, 30여 년 전에 이미 훌륭히 과업을 성취했을 뿐 아니라 아트 팝/일렉트로닉의 미래에 대한 놀라운 예언을 남겼다.  





#76 : 포티시헤드(Portishead) / Dummy (1994)

비록 '트립합'이란 장르를 그들이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포티셰드는 잊을 수 없는 앨범으로 '트립합'을 재정의 했다. 그들은 힙합의 방법론을 차용한다. LP의 잡음들, 증폭된 베이스 라인, 재즈/훵크 샘플링, 턴테이블링으로 이름 그대로 ‘Tripped + Hiphop’ 즉 '약에 취한, 몽환적인' 힙합을 들려주고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존 배리, 재즈, 블루스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한 세기를 초월하여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레코드를 들려준다.     


낙담과 절망의 걸작이다. 영국 대처주의의 유산인 가혹한 경제 현실 하에 청춘들의 분노와 불안을 매우 정제된 소울, Funk, 랩으로 표출한다. 필름누아르 영화에 영향을 받은 우울한 분위기의 일렉트로닉/힙합소울을 롤링 스톤은 "고딕 힙합"이라고 명명했다. 





#75 : 제이-지(Jay-Z)/ The Blueprint (2001)

제이 지는 당시 유행하던 2가지 조류를 모두 거절한다. 션 “퍼피” 쿰스가 개척한 소울 사운드를 따르지도 않았고, 진지한 인디 랩 정체성을 지키려는 순수주의자도 아니었다. 향후 힙합 프로듀싱에 대한 음향의 청사진을 구상했다. 그는 랩이 80년대 소울 시대 이래로 느낄 수 없던 온기를 불어넣는다. 칸예 웨스트, 저스트 블레이즈 등을 기용해 소울 고전의 보컬 음원을 활용하며, 랩 특유의 허풍을 완벽히 차단했다. 특히 포크의 가르침을 따라 래퍼들의 무미건조한 자기 과신이나 여성 혐오, 추잡한 보석 자랑을 싸잡아 풍자하는 해학을 펼친다.  

    

물론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선보인 자(고스트페이스 킬라)들은 있었지만, 언제나 방법론을 정립하고 흐름을 공식화한 이들만이 기억된다는 점은 역사의 비정함이다. 





#74 :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There’s A Riot Goin’ On (1971)

전작「Stand!」의 대성공으로 인기가 치솟았지만, 밴드는 내우외환에 시달린다. 스톤 형제와 래리 그레이엄의 갈등이 있었고, 에픽 레코드는 더 많은 판매량을 요구했고, 흑표당은 밴드의 백인 멤버였던 그레그 에리코와 래리 마티니, 매니저이자 백인이었던 데이비드 카프래릭을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더군다나 밴드의 리더였던 슬라이 스톤은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외적으로는 베트남전과 흑인 민권운동으로 격렬해지는 인종갈등은 밴드의 감정 상태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이런 스트레스 속에 낙관적인 사이키델릭 소울은 점차 엣지 있는 휭크리듬, 원시적인 드럼머신, 광범위한 오버더빙, 조밀한 믹싱을 통해 어둡고 도전적인 사운드를 탐구했다. “Family Affair”와 “(You Caught Me) Smiling”은 당시 인권운동이 처한 곤경이 담겨있다. 적절한 시의성과 더불어 힙합(트랩), 펑크, R&B, 디스코의 기원이 앨범 곳곳에 담겨 있다. 원제는 「Africa Talks To You」였으나, 6개월 전에 발표된 마빈 게이의「What's Going On」에 대한 대답으로 지금의 앨범 타이틀로 바뀌었다.


슬라이 스톤의 혼합 이론은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 미국 메이저 음악 최초로 다인종 밴드였던지라 음악에 피부색이 없다고 일축한다. 흑인 음악인 소울과 휭크와 백인 음악인 사이키델릭 록을 결합한 '사이키델릭 소울'을 발명한다. 선배인 마일스 데이비스와 허비 핸콕이 재즈 펑크로 돌아서게 한 장본인이며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팔리아멘트, 프린스와 아웃캐스트, 레드 핫 칠리 페퍼스, 퍼럴 윌리암스 같은 후대 스타에게 계속해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73 : 아웃캐스트(OutKast)/ Speakerboxx + The Love Below (2003)

<Speakerboxx+The Love Below>은 힙합 역사상 가장 대담한 순간 중 하나이다. 안드레3000과 빅 보이의 두 솔로 앨범을 합친 더블 앨범은 G-Funk, 팝, 재즈, 서던 소울, 블루스,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록까지 방대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이라는 예술양식이 일종의 문화적 스펀지처럼 대중음악이 제공하는 최상의 품질을 빨아들인다. 


힙합에 인색한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의 '올해의 앨범'상으로 그들의 업적을 기렸고, 역대 가장 많이 팔린 힙합 음반으로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72 : 자넷 잭슨/ Control (1986)

이 음반은 매니저인 아버지로부터 창작권을 되찾겠다는 독립선언문이다. 프로듀서 지미 잼 & 테리 루이스와의 기용은 리듬 앤 블루스, 랩 보컬, 휭크, 디스코 그리고 신시사이저의 융합은 현대 R&B의 선도적인 혁신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잭슨과 잼 앤 루이스가 사용한 트리플렛 스윙 비트 역시 뉴 잭 스윙의 탄생에 결정적이었다. 이 음반은 잭슨의 상업적 돌파구가 되었고 198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R&B와 랩 음악의 격차를 해소하며, 대중음악 판도를 바꿨다. 


「Control」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찾으면서 자넷 잭슨은 미래의 여성 팝스타들이 그들 자신의 궤적을 그릴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그녀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일을 했고, 그것은 흑인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일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녀의 인생관을 투영한 타이틀곡 'Control', 강렬한 록 비트가 돋보이는 "Nasty" 도발적인 펑키한 리듬의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뉴 잭 스윙의 프로토타입 같은 “The Pleasure Principle“ 빌보드 정상에 오른 ”When I Think Of You“나 감성적인 발라드 "Let's Wait Away"까지 그녀를 유혹하는 남자들에게 존중을 요구한다. 


순위가 높은 이유는 그녀가 휘트니 휴스턴과 더불어 평가절하 된 흑인 여가수의 위상을 드높였기 때문이다. 또 R&B와 힙합의 융합은 장차 비욘세, 리한나, 프랭크 오션, 아리아나 그란데, 핑크, 레이디 가가, 미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FKA 트위그 같은 아티스트가 번성할 기반을 미리 닦았다.     


   



#71 : 다프트 펑크 / Discovery (2001)

새천년 전 세계 클럽에 모인 젊은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EDM을 찾는다. 발표한 지 오래된 ‘One More Time'는 댄스 플로우에 여전히 울려 퍼진다. 음지에 있던 비주류 장르인 일렉트로니카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이 프랑스 듀오는 《Discovery》을 통해 샘플링 작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마치 '일렉트릭 뮤지션이 번역한 흑인음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태초의 하우스 자체가 디스코에서 파생했기 때문에 휭크와 재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다. 실제 악기 연주로 7080년대 흑인음악을 재번안한 《Random Access Memories》는 현재의 뉴트로 즉 '신스웨이브'에 대한 청사진을 남겼다.     


다프트 펑크는 '단순한 테마의 반복과 변용'이라는 하우스의 기본 틀 속에 힙합다운 질감의 그루브감, 소울 샘플링을 채워 넣으며 일렉-휭크 유전자가 친자가 맞는지 증명하는 검사 결과를 통보해준다. 거기다 냉정한 전자음악에 인간의 온기(멜로디)를 불어넣는다. 날카로운 금속성 비트마저 뭉툭하게 구부려 매끈하게 다듬어놨다. 전자음이라면 고개가 설레설레 젓던 이들마저도 이들의 사랑스러운 넘버들이 들려오는 순간, 자연스레 몸을 흔드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렇게 EDM이 우리 품 안에 들어왔다.  





#70 : 그린 데이 / Dookie (1994)

「Dookie」로 그린 데이는 하나의 장르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밴드가 되었다. 펑크 순수주의자들은 이 혁신적인 앨범 앞에서 아직도 움찔하지만, 그린 데이는 「Dookie」를 통해 낡은 장르에 신세대의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의 공식은 단순했다. 약간의 파워 코드, 귀에 착 붙는 선율, 가벼운 유머와 위트로 한바탕 뛰어놀자는 것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70년대 라몬스나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에서 반항적인 면은 살리되 정치적인 전복 성은 없앤 건방진 태도를 견지한다는 게 전부다. 작년 빌보드 1위를 차지한 <good 4 u>도 이 방법론에서 1도 벗어나지 못했다. 


 



#69 : 펑카델릭/One Nation Under A Groove (1978)

휭크(Funk) 밴드가 록을 연주한다면 댄스파티를 위한 맞춤 음악을 발명한다. 이렇게 태어난 매력적인 댄스 음악을 가리켜 'P-Funk'라 불렀다. 조지 클린턴이 이끄는 두 밴드를 간략히 비교하자면, 팔리아멘트(Parliament)는 그루비한 댄스 밴드였고, 펑카델릭(Funkadelic)은 몽환적인 애시드 록에 가까웠다. 조지 클린턴이 이끄는 밴드는 '춤의 흥'과 '음악의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는다.      


「One Nation…」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조지 클린턴은 음악적 스승인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스톤을 계승하는 휭크 ‘One Nation’, ‘Grooveallegiance’와 지미 헨드릭스 같은 사이키델릭 록 ‘Who Says A Funk Band Can’t Play Rock?’), 아프로퓨처리즘을 입각한 의식 있는 블랙유머, 파격적인 무대 연출 등으로 음악을 초월해 흑인의 종합 예술 장르로 발전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같은 훌륭한 직계 후손을 뒀을 뿐 아니라 토킹 헤즈, 갱스 오브 포 같은 포스트 펑크 밴드의 그루브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Pac, 아웃캐스트, 우-탱 클랜, 데 라 소울, 퍼블릭 에너미, 라킴, 켄드릭 라마, 오드 퓨처 등 힙합 거물들이 이들의 곡을 많이 샘플링했다. 이로 인해 조지 클린턴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샘플링이 많이 된 뮤지션 중 한 명이 되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특히 닥터 드레, 스눕 독, 워렌 G 등에 의해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의 P-Funk을 샘플 해서 G-Funk로 개조하였다.


    



#68 : 앨라니스 모리셋/ Jagged Little Pill (1995) 

1990년대 중반, 바야흐로 그런지와 브릿팝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그 가운데 여성은 없었다. 바람피운 남자 친구를 저격한 ‘You Oughta Know’에서 “그 여자랑 잘 때 나를 생각했니?”라고 일갈하는 가사는 여느 강성의 남성 록 밴드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통렬함을 담고 있다.  

   

‘Ironic’, ‘Perfect’와 ‘You Learn’ 모두 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다루었음에도 앨라니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글렌 발라드가 선사한 달콤한 선율은 그녀의 불안하고도 예민한 감성이 긍정적인 애티튜드로 받아들여지는데 큰 공헌을 했다.  

   

둘째, 목소리의 강함과 여림을 시시각각 바꿔서 자신의 섬세한 내면을 표출하는 창법이다. 쥬얼, 에이브릴 라빈, 파라모어의 헤일리 윌리암스, 체리필터의 조유진과 자우림의 김윤아, 일본의 시이나 링고 등 여성 록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Jagged Little Pill」은 역대 최연소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는 등 7관왕의 영예를 얻는다.   


   



#67 : AC/DC/ Back In Black (1980)

아이언 맨 사운드트랙에 ''You Shook Me All Night Long'', ''Hells Bells'', ''Shoot To Thrill''가 수록된 까닭은 매우 간단하다. 듣는 이를 자극하고 감동시키는 힘은 세월이 흘러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장 이상 판매된 이유이기도 하다. 

    

『Highway To Hell (1979)』로 유럽을 초토화시킨 그때 보컬 본 스콧이 영국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미개척지 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위해 그들은 프로듀서 로버트 존 “머트” 랭의 추천으로 새로운 보컬 브라이언 존슨을 받아들였다.  

    

조의(弔意)와 추모의 성격이 강하지만, 『Back In Black』은 문명의 세례를 받은 비평가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인사할 정도로 유쾌하고 신난다. 이 원초적인 활기참은 “헤비적인 방식으로 완벽한 심플함과 우아함을 보여준다.”라는 존 오츠의 표현이 매우 적절해 보인다.  





#66 : 주앙 지우베르투/ Getz/Gilberto (1964) 

라틴 아메리카의 댄스음악과 미국인과의 밀회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세기 내내 탱고와 차차차, 룸바, 맘보가 미국 무도장과 재즈클럽에서 울려 퍼졌다.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겸 가수인 주앙 지우베르투는 1958년에 작곡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과 함께 삼바의 떠들썩한 리듬을 정제하여 간결하게 어쿠스틱 기타의 즉흥연주로 만든 새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최초의 보사노바 “Chega de Saudade”로 이름을 알렸다.     


한편 미국에서는 1950년대 로큰롤의 등장으로 재즈는 상업적, 예술적 위기를 맞았다. 필라델피아 태생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 스탄 게츠는 한물 간 재즈를 혁신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브라질 여행에서 접한 보사노바에 흠뻑 매료된 그는 주앙 지우베르투와 그의 아내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초청한다. 보사노바를 세상에 알린 ‘The Girl From Ipanema’나 조빔의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Corcovado', 어두운 단조와 대비되는 게츠의 달콤한 색소폰 솔로가 인상적인 'O Grande Amor' 등은 음악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다.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그래미 시상식에서 재즈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최고상 '올해의 앨범‘을 받게 된다.     





#65 : 마돈나/ Like A Prayer (1989) 

성숙한 음악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 「Like A Prayer」는 마돈나의 경력에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마돈나는 폴라 압둘이나 자넷 잭슨에게 댄스 시장을 양보하고 단순한 팝스타에서 위대한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Oh Father’),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Keep It Together’)에 대한 헌정곡을 수록하는 한편, 60년대 소울 정확히는 스택스 사운드(‘Express Yourself’)와 스펙터 사운드(‘Cherish’)를 당당히 재현해냈다. 가새 내용도 반항적인 허영에서 탈피해 휴머니티로 대체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Promise To Try”,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담은 ‘Oh Father’, 남편 숀 펜의 가정폭력을 암시한 ‘Till Death Do Us Part’에서 솔직하게 개인사를 오픈한다.     


이 음반의 진정한 가치는 아티스트에게 음악 이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뮤직비디오에서 흑인 예수와의 정사, 불타는 십자가로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였던 가스펠 “Like A Prayer”에서 알 수 있듯이 음반의 주제, 음악성, 뮤직비디오 등 총괄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업계에 가져왔다. 마돈나는 대중음악이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브리트니의 <Blackout (2007)>, 테일러 스위프트의 <Fearless (2008)>, 레이디 가가의 <The Fame Monster (2009)>, 비욘세의 <Beyoncé (2013)>은 모두 이 음반의 자손들이다.   





#64 : 건즈 앤 로지스 (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 (1987) 

탐욕스러운 팝 메탈의 퇴조 속에 펑크의 허무주의, 롤링 스톤즈의 쾌락주의, 레드 제플린의 고전주의를 합친 하나의 충격이 다가왔다. 보다 거칠고 원초적인 하드록의 르네상스를 외친다. 

    

그들은 충분히 멋져 보였고, 신념에 따라 투쟁했으며 뭣보다 록을 연주했다.이지 스트래들린의 탄탄한 송라이팅, 액스 로즈의 금속성 고음, 슬래시, 더프, 애들러의 완벽한 합주는 천하무적이었다. 3000만 장이 넘게 팔린 이 기념품의 전율은 당시로는 영원할 것처럼 비쳤다.





#63 : 폴 사이먼 / Graceland (1986)

오늘날 켄드릭 라마, 드레이크, 칸예 웨스트, 위켄드 등이 아프리카 음악에서 새로운 소스를 구하려는 움직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폴 사이먼이 1970년 사이먼과 가펑클이 헤어졌을 때, 그가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할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트 가펑클’이라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없이도 폴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다. 홀로서기에 나선 폴은 레게와 같은 대안적인 문화탐방을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 음악인들, 레이디스미스 블랙맘바조와 타오에아 마체카와 협업하며 사이먼은 남아프리카의 전통음악 ‘음바쾅가’를 접했다. 음바쾅가의 3코드 구조와 백그라운드 하모니는 그가 어렸을 때 사랑했던 R&B가 떠올랐고, 사이먼은 서구의 팝 멜로디와 매끄럽게 결합시켰다. 마치 아프리카 리듬이 아메리카로 건너와 블루스가 되었던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도와 같다



  


#62 : 아케이드 파이어/ Funeral (2004) 

캐나다 출신 혼성 5 인조 밴드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다. 당시 유행하던 개러지 록 리바이벌의 단순 명쾌함을 거부하고, 이모 코어가 자기중심적이며 비관적인 헤비 록의 위장에 불과하다고 폭로한다. 「Funeral」은 플레이밍 립스, 스웨이드, 브라이언 이노,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참조했지만, 지극히 낯선 작품으로 완전히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앨범은 가족의 기억을 떨쳐내려는 두 젊은 연인의 심리를 매우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웅대하고 장엄한 현악편곡으로 형상화한다. ‘Neighbourhood *1 (Tunnels)’, “Wake Up”, “Rebellion (Lies)”, “Haiti” ‘Crown Of Love’에 담긴 보편적인 슬픔을 끄집어내며 감성적인 격렬함을 일으키게 한다.

  




#61 : 비욘세(Beyonce) / Lemonade (2016) 

전작 「BEYONCÉ (2013)」에서 음반 전체를 뮤직비디오로 채운 '비주얼 앨범'라는 획기적인 발명을 해냈다. 팝스타가 ‘YOUTUBE시대에 살아가는 법’을 친히 일러줬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불륜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한다. 개인적인 고백들이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MeToo 운동을 겪으면서 사회적인 담론으로 자연스레 커져갔다.


지금껏 비욘세는 (마이클 잭슨처럼) 미국 주류 계층인 WASP 백인에게 '안전'한 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블랙 파워/블랙 프라이드를 드러낸다.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슈퍼볼 50 하프타임 쇼’에서 말콤 X에게 경의를 보내고 흑표당을 칭송했다. 곧장 SNL에서 패러디됐고, (백인에게도 흑인에게도) 하나의 사회현상을 일으켰다. 이로써 「Lemonade」는 한 시대를 이해하는 역사적인 유적 중 하나로 남았다.




●넥스트(N.EX.T)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1994) 

마왕은 「The Being 」을 통해 위대한 야심과 비전을 실현시킨다. 앨범의 콘셉트와 스케일, 각 곡들을 돋보이게 하는 복합적 구성과 편곡, 존재에 대한 성찰에 바탕이 둔 현학적인 가사, 서정적이고 웅장한 멜로디, 대곡 지향적 전개로 서양 아트록 못지 않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수록곡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Life Manufacturing’,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등은 서구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못지않은 우리 음악의 우수한 품질보증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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