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앨프리드 히치콕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감독이다. 약 55편의 장편영화 중에 25편의 목록으로 좁히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선악을 모호하게 넘나들며 스릴러를 구축하는 그의 방식은 한결같지만 매번 새롭다.
히치콕은 공포와 스릴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에는 로맨스가 핵심이다. 우리 모두 비록 그의 사랑이야기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익히 알고 있지만, 192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히치콕의 최고의 영화 25편으로 이뤄진 서스펜스의 투어를 시작해보자!
#25 : 패러딘 부인의 재판 (The Paradine Case·1947)
데이비드 O. 셀즈닉에 의해 할리우드로 옮긴 히치콕은 제작자의 입김에 휘둘린다. 가장 큰 원인은 셀즈닉 프로덕션이 가져다준 극본은 하나같이 엉성해서이다. 해피엔딩으로 바꾼 결말 역시 극의 집중력을 저해한다.
법정 드라마는 <12명의 성난 남자>, <앵무새 죽이기>, <신의 법정>이 제작되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까지 널리 대중화되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히치콕도 법정 장면에서 변호와 반론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변호사가 살인혐의로 기소된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는 멜로드라마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다 발리의 카리스마와 비열한 판사 역의 찰스 로튼 덕택에 볼 가치가 있다.
#24 : 찢어진 커튼 (Torn Curtain·1966)
제목은 주인공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뚫고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뜻한다. 영화는 동독으로 거짓 망명하여 기밀을 탈취하는 전반부와 임무수행을 완료하고 서방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다룬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영화는 한 시도 긴장을 멈추지 않도록 수많은 아이디어를 동원하며 후대 스파이 영화가 참조해도 좋을 치밀한 연출을 보여준다.
#23 : 프렌지 (Frenzy·1972)
히치콕 스타일의 집대성, 73세의 노장은 고국 영국으로 돌아가 젊은 시절의 열정을 회상한다. 히치콕이 창조한 ‘누명 쓴 사나이’ 하위 장르를 신선하게 전복한다. 주인공 블래니는 무능력하며 불친절하며 자신의 전처와 애인이 살해당했음에도 냉담하며 누명을 쓴 사실에만 분한다. 관객의 연민을 얻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장르가 가지는 공식을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리얼리티를 얻게 된다. 검열이 폐지되며 표현의 자유를 얻지만, 자극적인 묘사가 작품을 보이는 이상 불쾌하게 만든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암시’만으로 강렬한 효과를 주던 과거의 걸작에 비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히치콕의 카메라가 진짜 스타다. 그의 카메라는 일상생활에 불안과 공포를 드리우며, 시각적 이미지로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표현주의적인 편집은 뉴 할리우드 감독에게 새로운 학파를 고려하도록 힌트를 남긴다.
#22 : 해리의 소동 (The Trouble With Harry·1955)
김지운의 <조용한 가족>의 조상님, 이 코미디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 살인, 금발미녀, 화려한 대도시도 아닌 시골에서 아이가 시체를 둘러싼 소동을 다룬다. 해피엔딩을 지향하는 블랙코미디는 히치콕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차별화된다. 4명의 주요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히치콕의 동선은 원 조크 코미디를 풍성하게 만든다.
형식적으로는 순수한 영국식 코미디를 추구하지만 주제는 가톨릭적인 죄의 전이와 끔찍한 사건이 이웃과 가족 간의 화합을 회복하는 아이러니를 다룬다. 이렇듯 히치콕의 본류와 동떨어진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연구하기에 더욱 흥미롭다. 또 <현기증>,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로 이어지는 버나드 허먼과 히치콕의 협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21 : 파괴 공작원 (Saboteur·1942)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프로트 타입(초기 모델)으로 히치콕의 평생 테마 중 하나인 ‘오인’을 다뤘다. 또한 영국인 히치콕이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다. 전시상황이라 영화는 노골적으로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한다.
유명한 스타가 없고, 플롯의 정교함도 떨어지지만 최상의 순수한 서스펜스를 제공할뿐더러 예상치 못한 클라이맥스로 숨 가쁘게 질주한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러시모어 산 장면보다 앞서 자유의 여신상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은 압권이다. 흥행에 고무된 유니버설은 히치콕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약속했다.
#20 : 오인 (The Wrong Man·1956)
히치콕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과거에 저는 서스펜스 영화를 많이 제작했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영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모두 사실을 근거로 하며 제가 제작했던 스릴러 영화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한다. 그는 자신의 장기를 포기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받아들인다. 히치콕 영화로는 드물게 살인과 섹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인>은 ‘크리스토퍼 엠마누엘 발레스트레로의 실화’를 재구성한다. 한 줌의 희망과 기쁨의 단서들을 제거하고 인상착의만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과정을 보도한다. 주급이 70달러에 불과한 서민에게 2500달러의 보석금을 요구하는 사법체계에 대한 조소와 더불어 가정이 파탄되는 심리드라마가 병열로 배치한다. 누명을 벗기는 과정에서 부채와 정신적 충격, 피해망상증, 죄책감, 불안으로 평범한 서민 가정이 붕괴된 뒤였다. 이 스산하고 황량한 풍경에 <오인>을 해피엔딩으로 기억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19 : 구명선 (Lifeboat·1944)
그 누구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항상 실험에 열심이었다. 그 의지가 어떤 영화에서는 실패로 끝났지만, 어떤 영화는 그의 예술적인 노력에 보답했다.
<구명선>에 놀랍게도 플롯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풍부한 인간성에 대한 연구와 사회학적 실험을 한다. 독일 U보트 공격에서 살아남은 영국인, 미국인 틈바구니에 독일 선원을 구명보트에 태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제작된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과감하고 사려 깊고 예민한 주제를 다뤘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 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의 직선적인 스릴러 영화들을 볼 때, <구명선>은 재평가받을 만하다.
#18 : 나는 결백하다 (To Catch A Thief·1955)
<나는 결백하다>는 1950년대 영화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에 화려한 의상에 미모, 경쾌한 재치와 유머, 여유로운 분위기이다. 캐리 그랜트의 능글맞은 코미디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레이스 켈리가 훔친다. 그녀의 역할은 히치콕의 금발 여배우들 킴 노박, 티피 헤드렌, 자넷 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능동적이고 입체적이고 현명하다.
#17 : 해외 특파원 (Foreign Correspondent·1940)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한 비운의 작품. 히치콕 캐넌(세계관)에서 과소평가되는 스파이 영화는 대부분의 현대 스릴러보다 더 독창적인 세트피스, 유머, 그리고 악마적인 줄거리들을 만들어낸다. 암스테르담에서 16분 동안 벌어지는 암살과 추격 장면은 이단 헌트나 제임스 본드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기발하게 돌파한 비행기 추락 장면에서 저절로 엄지척이 올라간다.
히치콕은 그간 정치적 언급을 피해왔지만 마지막 연설 장면을 통해 시기적절할 사회적 논평을 실었다. 1940년 개봉한 <해외 특파원>은 미국이 아직 참전하지 않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긴장에 대한 영화적 반응이었다.
#16 :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The Man Who Knew Too Much·1956)
아카데미 주제가상
1934년의 동명작품을 22년 만에 파라마운트의 지원 하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 '단 한 번의 심벌즈 연주가 한 미국인 가족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A Single Crash Of Cymbals And How It Rocked The Lives Of An America Family)'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을 수미상관으로 엔딩까지 이어지도록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 멕케나 부부가 버디 무비처럼 아들의 유괴사건을 수사하고, 부부간의 갈등을 길게 조명한다.
사건에 초점을 두지 않고 맥케나 부인의 심리에 집중한 덕에 긴장감이 줄지 않는다. 주제가 "Que Sera, Sera"와 <미션 임파서블>에 오마주된 알버트 홀 장면 등 뮤지컬 요소와 섬세한 가족드라마로 또 다른 실험에 성공한다.
#15 : 마니 (Marnie·1964)
작가를 교체하면서 까지 ‘성적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룬 심리스릴러를 선보인다. 강한 남성성을 뽐내는 ‘마크(숀 코너리)’와의 감정적 얽힘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 탈출하고 싶은 ‘마니(티피 헤드렌)’의 욕구를 탐구한다. 그들은 우리가 응원하는 아름다운 커플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그들이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헤어지는 편이 더 나은지 확실하지 않다. 매우 심리적이며 다층적인 이야기는 복잡한 모녀관계가 원인인지라 남녀문제로 섣불리 단정 짓기가 어렵다.
헤드렌은 마니가 개봉된 후 다시는 히치콕과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년에 거장의 ‘ ‘부적절한 요구’을 비난했지만 히치콕은 이를 부인했다. 이런 구설수 때문에 마니의 유산을 확실히 복잡하게 만들었다.
#14 : 나는 고백한다 (I Confess·1953)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도전은 프랑스 누벨바그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직자에게 살인범이 고해성사를 하나 이를 발설하지 못하고 누명을 쓰게 된다. 성직자로의 직업윤리를 증언대에 올려놓고 그 침묵의 맹세가 살인 동기를 제공하는 아이러니에서 히치콕의 관객몰이가 발휘된다. 그러나 추궁으로 일관한 단조로운 재판 장면과 성급한 결말에서 당시의 검열과 종교적 지탄을 염려한 제작사의 압력의 흔적이 발견된다.
#13 : 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1954)
반전 없이 곧장 범인·범행 동기·범행수법을 공개하고도 관객을 손바닥 위에서 갖고 논다.
#12 : 사라진 여인 (The Lady Vanishes·1938)
히치콕이 1939년 할리우드로 옮기기 전 영국에서 연출한 마지막 영화 중 하나다. <열차 위의 이방인>을 포함한 그의 후기 작품들을 읽는 열쇠로 적절하다. 히치콕은 코미디 천재로 널리 알려졌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1930년대 로맨스 패턴과 긴장감 넘치는 첩보 스릴러를 혼합한다. 그것은 히치콕의 성장하는 재능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그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것이 운명 지어져 있다는 표시이다.
미스 마플의 화신이 분명한 여인의 행방을 둘러싸고 스토리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일단 그렇게 되면 고속열차 같은 이야기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 쾌활한 어조 뒤에는 머지않아 발발할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다.
#11 : 로프 (Rope·1948)
연극처럼 하나의 세트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지며, 필름 한 릴 분량의 롱 테이크로 촬영한 후 각 테이크를 이음새가 보이지 않게 연결하여 릴 스풀에서 빼내지도 않은 듯이 매끄럽다. 그 덕분에 질감과 사실감이 풍부하다. 이 영화의 기술적 업적을 차치하더라도 히치콕은 두 청년의 가식적인 위선과 광기를 담고 싶어 하는 영화적 욕망을 ‘원 테이크’으로 실현한다. 많은 관심이 롱 테이크에 쏠린 탓에 검열관들이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노골적인 암시를 간과한다.
<로프>는 1929년 레오폴드과 로엡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동성애자인 두 엘리트 대학생이 친구를 살해 한 뒤 거실 트렁크에 시신을 숨긴 뒤 고인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만찬을 진행하는 내용을 다룬다. 살인의 정당성을 논하는 궤변론자들의 공모에 관객마저 합석시킨다. 결국 완전 범죄가 무너지는 현장에 관객이 마지막 증인으로서 함께 서 있길 간곡히 설파한다. 특히 제임스 스튜어트가 이들을 부추긴 교수로 나와 자신의 끔찍한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파렴치함에 몸서리치게 한다.
#10 : 레베카 (Rebecca·1940)
아카데미 작품·촬영상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곧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를 만들며 주가를 드높인 데이비드 O. 셀즈닉이 제작을 맡아 11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모든 유령 이야기가 귀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히치콕은 단언한다. 전처 레베카의 흔적이 남아있는 맨들리 저택을 그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고 <시민 케인>의 제너두 저택에도 영감을 주었다. 수수께끼처럼 숨겨진 과거, 떨칠 수 없는 의심, 동화 같은 로맨스, 주변을 떠도는 범죄의 망령,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주인공 등 이 영화는 긴장감과 흥미진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진실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초대한다.
#9 : 39계단 (The 39 Steps·1935)
1930년대 영화 중에 <39계단>만큼 ‘할리우드 뉴 웨이브’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은 없었다. 유명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타운은 The New Yorker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현실 도피적 오락은 <39계단>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1930, 40년대에 <카사블랑카>, <제3의 사나이>등 복합장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시작점에 <39계단>이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로 출발한다.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이 공범의 입장에 놓인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암호명 ‘39계단’을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 동행하고 액션-어드벤처로 전환된다. 액션과 추격 사이에 경쾌하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끼워 넣었다.
히치콕의 첫 번째 절대적인 걸작은 현대 영화에 근간을 이루는 원칙들 이를테면 ‘맥거핀’와 ‘오인당한 사람’의 탄생지이다.
#8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1943)
고든 맥도넬의 6장의 시놉시스를 작가 손튼 와일더과 히치콕의 아내 알마 레빌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로 작업한다. 평온한 마을에 사는 중산층 가족은 살인과 기만으로 얼룩져 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삼촌을 사랑하는 여주인공이 삼촌의 어두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심적 갈등이 핵심이다. <의혹의 그림자>는 선악의 이중성과 쌍둥이를 언급하며 ‘2’를 강조한다. 신뢰와 순수함을 지닌 조카 찰리와 거짓으로 똘똘 뭉친 찰리 아저씨를 나란히 비교한다. 검열 속에 엄두도 못 낼 근친상간을 암시하며 히치콕은 주인공 이외에 범인과 피해자 입장에서 공감하게 만드는 감상의 폭을 넓힌다. 즉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물고 양쪽을 모두 공감하게 만드는 관람의 폭을 넓힌다.
#7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클리셰를 창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액션 스릴러의 기틀을 제시한 선도적인 작품이다. 만약 낡아 보인다거나 익숙하다면 후대의 감독들이 이 영화를 철저히 베끼고 답습했는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6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Strangers On A Train·1951)
'완전범죄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범인들을 응원하도록 한다. 관객에게 매력적인 ‘교환살인’ 약속을 건네고, 그에 당황하는 관객들을 지켜보며 즐기고 있다. 내면에 잠재된 추악한 본성과 선한 의지, 일탈 욕구와 순수한 양심을 충돌하지 않는가. 이것인 히치콕의 노림수다.
#5 : 새 (The Birds·1963)
일상을 공포로 만드는데 탁월했던 히치콕이 또 한 번 해냈다. 첫 공격 대상이 학교 아이들인 점에서 캐릭터와 관객 모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설명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무섭다. 잔인함을 드러내면서도 무관심한 이웃, 종교와 시어머니를 비꼬는 사회적 논평을 곁들인다. 재난 영화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식으로 끝나지만 <새>는 작위적인 화해를 비웃고 있다. 그렇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더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4 : 사이코 (Psycho·1960)
이 불길한 이야기는 연쇄살인마와 반전영화, 슬래셔 호러의 불씨가 댕겼다. 컷 분할, 카메라 각도, 누드의 미묘한 힌트, 풍부하게 묘사된 악당,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 맥거핀, 궁금증을 남기는 엔딩 등등 약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영화 제작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한 법칙들이다.
<싸이코>가 위대한 영화인 이유는 완전무결한 완성도를 지녀서가 아니다. 영화사에서 아직까지 이어지는 준칙을 세우고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교본으로 지금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3 : 오명 (Notorious·1946)
<오명>은 가장 히치콕적인 영화나, 최고작이 아닐지 몰라도 교과서로 쓰일만한 장면들이 넘쳐난다. 히치콕은 당대 로맨스물의 관습을 도치한다. 여성이 남성의 미모에 반해 먼저 대시한다. 그녀는 세 명의 아버지를 뛰어넘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쟁취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남자와의 위태로운 로맨스는 스토리의 부조리함을 뚫고 생생하게 파닥거린다. 히치콕의 어머니 성격을 빼닮은 억압적인 어머니에 의해 훼손된 한심한 악당에 정말로 동정이 간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극본이 1944년에 집필되었는데 이때 원자폭탄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런데 히치콕이 우라늄이 영화 소재로 적합한지 캐묻고 다니자 FBI에서 요주의 인물로 감시했다고 한다.
#2 : 이창 (Rear Window·1954)
영화보기를 ‘관음증에 대한 본능’이라고 촬영과 편집을 통해 인지시킨다. 플롯은 편집 과정과 일치시킴으로써 우리 모두 엿보기를 즐기도록 유도하면서도 결국 관음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낸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우리는 관음증을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서로의 일상을 팔로우할 수 있지 않은가? <이창>이 제작되던 시절과 현재 사이에 유일한 차이는 SNS에 자신의 사생활을 스스로 오픈한다는 점 밖에 없다.
#1 : 현기증 (Vertigo·1958)
이 강박관념과 잠재의식에 관한 초상화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슬픈 작품으로 남아있다. 불가능한 이상형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스크린에 옮긴다. <현기증>은 히치콕이 얼마나 여성을 두려워했는지 얼마만큼 여성을 통제하려고 했는지를 솔직히 고해성사하며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이창>과 더불어 히치콕 자신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솔직하고 깊이 있는 반성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