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양》은 <블레이드 러너>, <에이아이>, <바이센테니얼 맨>처럼 인간보다 인간다운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테크노 사피엔스(줄여서 테크노)라 불리는 이들은 다인종·다문화 가정에 보급되어 세계 각국의 유산을 일깨워주는 ‘세컨드 시블링스’로 활용된다. 테크노들은 기계답게 수리가 가능하지만, 죽음에 이르면 부패하는 유기체이기도 하다. 이 설정이 기존 SF와 달랐다.
차(茶) 상점을 운영하는 제이크(콜린 패럴)와 회사 중역인 키라(조디 터너스미스) 부부는 입양한 중국계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위해 중국인 안드로이드 양(저스틴 H. 민)과 가족을 이룬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동명의 소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양과의 작별’이 가족에게 미친 여파를 천천히 관찰한다. 수리업체를 전전하던 제이크는 양에게 숨겨진 기억장치를 있으며 그 기록들을 면면히 살펴보게 된다.
기억을 형상화하는 독특한 촬영과 편집
인간은 '소우주'라는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하다
우리가 유럽을 영프독으로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듯이 《애프터 양》는 한중일을 동북아시아로 뭉뚱그려 바라본다. 미국인은 중국의 차(茶)와 우리나라의 고추장, 일본의 라멘(ラーメン)을 분별할 수 없다. 아마 분류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독일식이라고 콕 집어서 구분 짓는 것은 법률가들이나 하는 행위인 것과 마찬가지다.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주관성'을 지닌다. 영화 속 기억은 단정하지 않다. 불교에서 분별지(分別智)는 깨달음이 아니라는 가르침이 있기도 하다. 영화는 그것을 따른다. 양과 제이크가 차에 대해, 양과 키라가 나비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에서 매우 주관적이고 약간 혼란스럽다.
코고나가 감독은 배우들에게 테이크마다 다르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어긋남을 몽타주로 편집했다. 우리가 특정 과거를 아름답게 윤색하거나 어떤 비극을 순화시켜 기억하는 방식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무상생(有無相生)
미장센에 모더니즘 건축이 활용되었다. 현대 건축은 일면 차갑게 느껴지지만, 모더니즘 운동은 그 기원에 인간의 진실과 의미를 탐구하려는 열정을 품고 있다. 종교의 시대가 가고 서구 철학은 삶의 공허함을 탐구했고, 그 미학이 건축디자인에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동양사상이 대안적 사고로 시각적으로 제시된다. 빌려온 경치라는 의미의 ‘차경(借景)’을 카메라에 종종 담는다. 정원 밖의 주변 경관을 내 울타리 안으로 끌어올려 울타리 내부 경관과 정원 밖의 합치된 경관을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전통의 정원 조성 기법이다.
양은 ‘끝은 또 다른 시작’ 라며,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저는 괜찮아요.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요."라고 말한다. 그의 부재에서 양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되새기게 한다.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다”라는 노자의 말을 빌려 영화는 소중한 것은 변화할 뿐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위로한다. 이런 순환론은 우리 동양인에게 익숙하다. 서양인이 죽음 이후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직선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우리는 전생과 현생, 후생이 인연으로 이어져있다고 믿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有)와 무(無)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다. '무(無)'란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는 않지만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원리를 뜻한다. ‘유(有)’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다. 이 둘의 긴장과 공존이 세상을 구성한다고 노자는 보았다. 양이 사라진 빈자리에 무엇을 남겼을까? 정답은 양의 기억이다. 그것은 양이 남긴 유산이다. 그로 인해 주인공들과 우리 모두 위안받는다. 인류 최초의 힐링 사상가인 노자가 현대인에게 알려주는 TAO(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