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山: Rising Dragon·2022》노 스포일러 후기
김한민 감독은 최대한 전투를 상세하게 다루려고 했는지 전개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하다. 한국 배우가 하는 일본어 대사처리능력이 어설프다. 그러나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소위 ‘국뽕'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뭉클할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백성에 대한 '충(忠)'만 강조했던 <명량>에 비해 이야기가 발전했다. 원균과 이순신의 의견 대립, 와키자카와 가토의 갈등, 해전과 맞물리는 육지전, 귀선(龜船) 설계도면을 둘러싼 첩보전 등 여러 겹의 갈등구조를 준비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사가 빈약하고 평면적이다.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로 규정짓고, 민족 영웅에 대한 경외심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웅장한 배경 음악 아래 이순신을 ‘활을 든 선비’로만 해석하고 있다. 왠지 모를 불리한 정황을 들먹이지만, 선조는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이순신을 신뢰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간관이 2년 만에 종 6품에서 정 3품으로 올린 것을 간했지만, 선조는 이를 물리치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제수시켰다. 이 결정이 나라를 구했다.
<명량>에서 지적받은 민족주의와 신파를 배제하기 위해 김한민 감독은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한 전략가였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순신보다 그 주변 인물에 힘을 실어줬다.
<명량>에 비해 조연과 악역을 배려하는 자세는 좋았지만, 그들에게 빠져들 만한 매력이 매우 부족했다. 와키카지 야스하루(변요한)와 항왜군사 준사(김성규), 수군향도 어영담(안성기) 외에 가토 기요마사(김성균), 원균(손현주), 이억기(공명), 나대용(박지환), 간자 정보름(김향기), 탐망꾼 임준영(옥택연) 등은 납작하고 대사마저 조악했다. 그러다보니 절박한 <명량>의 출연진보다 무게감이 가벼워 보였다. 결정적으로 엉성한 결말(쿠키)은 여운을 짜게 식혔다.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7월에 평양까지 점령당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일본군의 기세가 꺾인다. 곽재우, 조현, 고경명 등 의병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어 땅에 떨어진 조정의 명예를 끌어올린다. 1592년 8월 14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선조의 후원 아래 한산도 앞 견내량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 수군을 격퇴하고, 일본 육군의 보급로를 차단한다.
1시간 남짓 벌어진 한산도대첩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해전이다. 해상에서의 포위 섬멸전은 육상보다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준비성과 차분함, 지적인 면모와 과단성을 읽을 수 있는 위대한 승리이다. 개인적으로 이순신은 나폴레옹 못지않은 포병의 활용을 보여줬다고 평하고 싶다.
역사책에서 상상하던 전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산>은 '학익진'과 '거북선'을 중심으로 해전을 재구성했다. 기존의 학설과 새로운 견해 모두를 취했다. 예를 들면 귀선(龜船)은 2층 구조설과 3층 구조설, 당파선(충돌시켜 적의 함선을 무너뜨리는 배)과 총통(화포)을 활용한 돌격 임무를 적절히 혼용했다.
<명량>에서 명량대첩을 어지러운 난전과 백병전으로 일관한 단점을 고치고 돌아왔다. <한산>은 학익진과 어린진, 장시진 같은 진법에 공을 많이 들였다. 즉 전투 과정을 파악하기 쉽도록 짰다. 화포사운드가 생생해서 박진감을 더했다. 하지만 무채색에 가까운 CG의 색감이 바다 특유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 잿빛에 가까운 칙칙함이 리얼리티를 약간 떨어뜨린다.
<한산>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명량>을 보완·수정하려는 진심이 엿보여서다. 영화적 상상력이 들어간 부분이 약간 갸우뚱거리게 하지만, 사료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진심이 느껴져서 납득이 갔다. 대표적으로 이순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원균'이 아니라 적장 '와키자카'라는 부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실제 그가 남긴 <와키자카기(脇坂記, 협판기)>에 ‘나보다 더 치밀하고 전략적인 건 이순신 장군이다’라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적의 관점에서 한산도대첩을 바라봄으로써 역사의 승리에 대한 자긍심을 배가시켰다.
★★★ (3.0/5.0)
Good : <명량>에 대한 반성
Caution : 초중반은 버려!
■김 감독은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한산해전에서 ‘지장’(지혜로운 장수), 명량해전에서 ‘용장’(용맹한 장수), 노량해전에서 ‘현장’(현명한 장수) 이순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해일에게 <명량>이 격정의 불이라면 이번에는 깊고 고요한 물의 기운이 필요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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