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련사 오티스 'OJ' 헤이우드 주니어(대니얼 칼루야)와 그의 누이 ‘에메랄드 '엠' 헤이우드(키키 파머)’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찍은 최초의 모션 픽처(영화)인 《달리는 말(1878)》에 등장한 기수의 직계 후손이다. 이들 남매는 할리우드 촬영장에 훈련된 말을 제공하며 아버지(키스 데이비드)가 운영하는 목장에서 함께 일한다.
01. 미지에 관한 두 가지 감정
‘그것’은 우리 위에 떠있다. ‘그것’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OJ는 이를 두려워하지만, 엠은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미디어에 팔아 돈과 유명세를 얻고자 한다. 유튜브 세대답게 ‘그것’을 촬영하려는 인파로 붐빈다.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헤이우드 목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목장 근처에 위치한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이 운영하는 놀이동산도 덩달아 유명해진다.
《놉》은 이제껏 본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스포일러를 피해 관람하시길 권한다. 《놉》은 <미지와의 조우>, <죠스>에서 힌트를 얻은 퍼즐을 던진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다룬 코즈믹 호러이면서, 미국에 대해 근심하는 서부극이며, 영화에 관한 영화다. 조던 필이 만든 가장 거대한 작품이며, 이야기가 영리하고, 독특하다. 캐릭터들도 정말 잘 만들어졌다.
02. 스펙터클한 화면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007 스펙터>의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가 참여해서 70mm로 스펙터클을 한껏 강조한다. 1.43:1 화면비로 잡은 아이맥스 분량도 40분이나 된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는 뜻을 지닌 '스펙터클(spectacle)'을 강조한 속내를 뭘까?
조던 필은 ‘오늘날 시네마에 걱정하던 시기에 시나리오를 썼다’며 스펙터클과 영화의 역사를 이어 붙인다.거대한 장관에 매혹되거나 두려워하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극 중 인물들이 ‘보는 것’에 심취하듯 관객 역시 관람할 것이다. 블록버스터 위주로 흘러가는 영화산업의 폐해를 겨냥한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I will cast abominable filth upon you, make you vile, and make you a spectacle.)' 나훔서 3장 6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을 짧게 해석하자면 ‘이장폐천(以掌蔽天)’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뜻으로 얕은 수로 잘못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음을 이른다. 기원전 7~8세기에 살았던 나훔은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멸망을 예언했다. 즉, 쇼 비즈니스(문화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그것’의 출현과 연계한다.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 (1878)
동시에 초기 영화를 만든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를 끌고 와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정확히는 (영화의 역사에서) 소외된 흑인 영화인을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또 제우스에서 이름을 따온 ‘주프'는 어릴 적 시트콤 아역배우로 출연하여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이런 과거를 통해 통해 마치 SNL처럼 할리우드를 풍자하며, 오늘날 시네마에 대한 근심을 털어놓는다. 특히 100% CG로 구현된 침팬지 고디를 통해 요즘 영화들이 애니메이션화 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놉》은 한 번의 감상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층위가 두껍다.
3.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진 현대 영화시장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들
《놉》은 창의적인 놀라움이 너무 많다. 단적인 예로 음악을 들 수 있다. <겟 아웃>과 <어스>의 음악감독 마이클 아벨스는 엘머 번스타인,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존경심을 숨지지 않는다. 이들은 서부극을 작업했던 경력이 있어 그런지 사운드트랙은 서부극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하다. 물론 전자음악 정확히는 인더스트리얼 요소를 통해 현대적인 질감을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조던 필은 서부극 음악 아래에 흑인 남매를 내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카우보이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이었지만, 할리우드 서부극에서 백인 배우들이 주로 연기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대니엘 칼루야는 흑인 배우들의 클리셰인 호들갑을 뺀 진중한 연기로 영화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위기시에도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는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조던 필 감독은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적당히 어겨가며 호러와 유머를 자아낸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관심을 주지 않으면 힘을 잃고 마는 '그것'이다. 조회수와 댓글이 곧 권력이 되는 유튜브 시대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야망이 지나치게 커서 종종 자신의 역량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알프레드 히치콕, 스탠리 큐브릭, 쿠엔틴 타란티노, H.R. 기거 등을 레퍼런스하며 시각적인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야기 중심축이 약한 단점을 보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영화에서 찾을 수 없는 진귀한 풍경들이 《놉》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 (3.9/5.0)
Good : 단순한 이야기를 곱씹게 만드는 참신한 화법
Caution : 나쁘게 말하면, 스필버그로 시작해서 샤밀란으로 끝난다.
■제목이 <놉>인 이유는 “난(감독) 관객들이 극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반영하는 제목을 좋아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사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는 ‘Zoopraxiscope(주프락시스코프)"라 부르는 일종의 영사기를 통해 대중에게 모션 픽쳐(영화)를 보여주고 이것은 현대 영화의 시초가 된다. 프락시스코프의 원리는 원형판 위에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촬영한 연속사진을 영사기로 돌려 상영하는 방식이다.
■영등위의 등급판정에 갸우뚱거리게 한다.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은 영화가 보통 한국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는데 어째서인지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