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크레이븐은 고색창연한 장르를 재료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든 괴물을 꿈속에서 현실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며 심상치 않은 유산도 남겼다. 《뉴 나이트메어》로 장르의 판도를 바꿨다. 이 영화는 '프레디 크루거'라는 전설을 창조한 이들이 겪는 공포, 일종의 메타 호러였다. 이 야심찬 실험은 비록 시리즈 중 가장 적은 매출을 올렸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멈추지 않았다.
《스크림》은 할리우드 난도질 영화의 법칙을 집대성해 뒤틀었다. 국내에서 ‘스포일러’라는 용어가 유행하게 된다. 당시 PC통신망에서 수입도 되지 않은 《스크림》의 반전을 누설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그런 행위를 비난하는 반작용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6 : 스크림 3 (Scream 3·2000) 웨스 크레이븐
《스크림 시리즈》는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와 같은 슬래셔 무비 시리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그 상황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덧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원작자 케빈 윌리암슨이 포기한 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3편은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기며 장르 분석에서 《스크림 시리즈》 자체를 비평한다. 할리우드 프로덕션의 무대 뒤에서 여성 착취에 대한 비판을 제공한다. 그러나 블록버스트 전문 작가 에린 크루거는 아이디어를 세련되게 다듬지 못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콜롬비아 총기 난사사건으로 대본을 변경하고 폭력 수위를 낮추기로 결정한 것이 결정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이 제작 현장에 밀어 넣는 설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1편의 살인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이런 운명론을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5 : 스크림 4G (Scre4m·2011) 웨스 크레이븐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현실과 유리되었다. 1편은 실제 세계와 장르 영화의 관계를 다뤘고, 2편에서 속편의 법칙을 비평했다. 3편은 트릴로지 열풍 속에서 시리즈의 끝맺기를 논한다. 축소지향적인 세계관은 이번에는 파운드 푸티지와 고문 포르노, 리메이크 공포영화를 조준한다.
1편과 닮은 모방범죄가 일어나고 시드니의 조카인 질을 새로운 십대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웨스 크레이븐은 창작력이 고갈되어 호러 클래식의 리메이크를 못마땅해 하지만, 자기 스스로 1편을 복제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캐릭터들은 살아남기 위해 숙지해야 할 ‘호러영화 규칙’대로만 행동한다. 이 풍자가 공염불처럼 공허하다. 영화가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영화만의 세계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의 위험성과 영향력을 쫓고 명성에 굶주린 인플루언서를 경고한 선견지명은 지금봐도 놀랍다.
#4 : 스크림 5 (Scream·2022) 타일러 질렛, 맷 베티넬리
《스크림 5》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촉발시킨 리퀄(리메이크+씨퀄)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상적인 속편으로, 원작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스크림 영화가 가장 잘 하는 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또 원조 캐릭터들을 추억을 상기시키는 조연으로 한발 물린 결정이 새로운 주인공에게 숨통을 틔어줬다. 당연히 신의 한 수가 됐다.
메타영화로써 소위 'Elevated Horror'라 불리는 <바바둑>이나 <유전>과 같은 요즘 공포영화를 패러디하며 풍자한다. 특히 할리우드의 멍청한 유니버스 구축과 리부트 남발에 대한 디스는 정말 통쾌했다.
#3 : 스크림 6 (Scream VI·2023) 타일러 질렛, 맷 베티넬리
슬래셔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한 이유는 뭘까? 5편이 1편의 뿌리를 재확인시켜줬다. 탄탄한 상속절차 덕분에 무대를 뉴욕으로 옮기는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다. 빅 애플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6편은 놀랍도록 밀실 공포증을 자극한다. 고스트페이스의 공격 역시 전편보다 악랄해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창의적인 살인 시퀀스가 동원됐다.
미래를 이끌어갈 재목들 샘, 타라, 채드, 민디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재편한다. 물론 시드니, 게일, 듀이의 메아리가 존재하지만, 횃볼을 넘겨받은 만큼 2편 이후로 가장 신선한 스크림 속편이라는 혁신을 보답한다. 프랜차이즈의 신화에 대한 조크와 전설적인 공포감독 웨스 크레이븐에 경의를 담은 이스터에그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어 팬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느껴진다.
#2 : 스크림 2 (Scream 2·1997) 웨스 크레이븐
공포영화의 법칙을 마음껏 비틀었던 스크림의 후속편은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뉴 나이트 메어(1994)』의 자기 인식을 계승한다. 전편의 사건이 《스탭(Stab)》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나왔기 때문에 전편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다. 트릭 면에서 전편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상황의 클리셰를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편을 ‘영화로’ 감상하고 후기를 남긴다. 비평가 랜디 믹스를 퇴장시킨 것은 실수다.
속편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는 메타 장르의 장점을 발휘했으나 (인터넷 유출로 인한 시나리오를 변경한) 범인이 사건과 너무 동떨어져있다. 그렇지만 《스크림 2》는 여전히 관객을 웃기면서 동시에 공포로 몰아넣을 줄 아는 크레이븐의 탁월한 연출력이 살아있다.
#1 : 스크림 (Scream·1996) 웨스 크레이븐
《스크림》은 할리우드에 큰 충격을 줬다. 작가 케빈 윌리엄슨은 공포영화들을 품평하며 멋진 후더닛(whodunit) 걸작을 썼다.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는 공포 영화가 살인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공포영화에 정통하더라도 그 퀴즈 쇼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설령 정답을 알고 있어도 목숨을 지키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
섹스와 폭력의 말초적인 자극에 의존하던 슬래셔 장르를 영리하고 사실적으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호러 영화의 어리석은 플롯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을 끌어들인다. 살인마를 ‘예술을 모방하는 추종자’로 전환함으로써, 바로 같은 장르 규칙을 정의하고, 고찰하고, 인용하고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