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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Nov 24. 2018

국가부도의 날_겉핥기식 재난극

《국가부도의 날 (Default·2018)》

작년 베네수엘라, 올해 아르헨티나가 IMF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것은 지금도 벌어지는 비극이다. 제가 경제학을 전공할 까닭은 IMF 외환위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기에 무척 기대했다. 

결론적부터 미리 말하자면, [국가부도의 날]은 '금융 영화'라기보다는 '재난 드라마'다.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일주일 남은 시간 동안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의 3가지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어 진행된다.  


첫째, 위기를 미리 예상하고,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 (유아인)은 역베팅에 나서며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블랙코미디다. 그러나 결국 영화내내 비판받는 특권층과 똑같이 위기를 통해서 돈을 번다. 


둘째, 여당, 재벌과 결탁한 조신제(조우진) 재정국 차관이 IMF 구제금융을 무리하게 들이려 하자,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김혜수)은 이에 반대하지만, 극중 그녀는 무력하다. 왜 그녀가 주인공인지 의아하다.


셋째, 이를 알지 못하는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인 갑수 (허준호)는 서민들의 아픔을 대변한다지만 아버지 뿐 아니라, 갑수 아내가 비정규직 전환되는 비극에도 그 아들은 멀쩡히 금융권에 면접보는 장면은 조금 의아하다.


애초에 정부, 중소기업 사장, 투자가 3가지 시선을 총망라하여 금융위기 전반을 다루고 싶었겠지만, 아쉽게도 하나의 영화를 3개로 쪼갠 것처럼 '금융위기' 외에 접점이 없으므로 제각기 분리된다. 당시 실제 뉴스 장면과 자료를 등장시켜 억지로 엮으려 하지만, 셋 중 어디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애당초 2시간 내로 다 다룰 수 없는 분량인지라, 후반부터는 엉렁뚱땅 'IMF가 가진 자들을 더 배불려줬다'는 메시지만 남고 급마무리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일 뿐 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아니다.


보통 학계에선 더 세분화되지만, 전 내부적 모순, 정책적 실수, 대외적 악재 정도만 소개할께요. 군사정권의 정경유착(대기업의 차입경영과 이로 인한 관치금융의 부실화)무리한 세계화 정책으로 인한 외환보유고의 비상식적인 운용, 아니면 유대 핫머니의 양털 깎기일까?  셋 중 하나를 꼽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경제현상이므로,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던지, 확고한 결론을 미리 내려야만 했다. 지나치게 안전하게 가려다보니 중반부부터 이야기가 구심점을 잃고서 지루해져버렸다. 과격하게 말하면, 원인 없이 결과만 덩그러니 던져준 꼴이니까 관객들이 어찌 납득이 가겠는가? 


[국가부도의 날]은 IMF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는다. 3가지 이야기를 병행하듯 금융위기를 불러온 적폐들을 단순화 혹은 도식화시켜버렸다. 주인공 김혜수는 끝까지 무력하다. 윗선에서 묵살하고, 언론에서 외면한다. 결국 언론, 조신제(조우진) 차관, 정치인, 재벌 등을 지나치게 간단하게 '나쁜 놈'으로 규정지어버리고, 한국영화 특유의 과잉된 분노를 시전한다. 대리만족을 안겨줘야 할 윤정학(유아인) 특유의 과장된 연기톤이 극과 유리된다. 마지막, 소시민은 CJ표 감성팔이 외에는 할 게 없다. 여기서 금융영화이기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때부터 재난 드라마로 급선회한다. 


반면에 [빅 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원인은 '투자은행의 지나친 탐욕'라고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 투자은행을 상대로 4명의 주인공이 똑같은 금융지식을 사용하여 통쾌하게 엿 먹일 때 카타르시스가 생겼었다.


이처럼 금융영화는 타겟이 정확해야한다. 고작 금융위기가 안겨주는 참담한 고난과 암담한 생활고 따윌 보려고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건 재난영화가 다뤄야 할 소재다.


솔직히 말해, 절대선인 한시현(김혜수)이 이끄는 한국은행팀도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당시 정부 관료, 은행 경영진, 재벌 총수 그 누구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책임소재가 광범위하다. 

오히려 그랬기에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던 듯싶지만, [국가부도의 날]처럼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성질의 것이 아니다.


IMF이후 얼어붙은 취업시장과 바닥을 치는 체감경기는 알다시피 현재진행형이다.그런 사안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가? 어쨌든 당시 시대상황을 성찰과 고민이 없이 그리다 보니 최극희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CJ표 흥행공식' 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재난드라마 부분을 살펴보자! 

'드라마'라면서 '인물 배경과 성격을 어떻게 제시할지'에 대한 고찰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금융위기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데, 인물들의 동기와 심리 변화조차 그리질 않으니 이후 행적은 죄다 무리수로 읽힌다. 특히 윤정학(유아인)이 이상했다. 어려운 경제용어와 복합적인 위기요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 등장인물별로 이야기를 각각 추가하는 탓이다. 


그러면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한시현을 위시한 한국은행 직원들, 재정국 차관, 재벌 쪽 인사들, 정치인, 갑수의 동업자, 윤정학이 조직한 투자팀, 거기에다 IMF 총재(뱅상 카셀)들이 절망에 빠지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안든다.


보다보면, 김혜수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과연 전문가일까? 싶은 의문마저 든다. 한국은행에 총장이 어딨나요? 총재죠. 영화속 대부분의 내용이 오류 투성이다. 경제를 아예 모르는 작가가 멋대로 썻다. 사족이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한국 드라마가 어떤 소재이든 멜로 장르 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냐 하면 작가들이 드라마 소재가 되는, 실제 직업세계를 면밀히 그릴 능력도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케 한다. 그런데 [국가부도의 날]는 더 심각하다. 아마 직장 생활해보신 분이라면 '코웃음' 칠게 분명하다. 특정 장면에선  제작진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설명도 부실하고, 감성팔이도 안 먹히니, 이제 노골적인 메시지에 집착한다. 러닝타임 내내 배우들의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을 계몽하려 든다. 영화내내 실컷 조신제(조우진) 차관에게 모든 십자포화를 다 퍼부어놓은건 마지막 메시지가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이라고 주장하는건 어불성설이다.


[1987]처럼 김윤석을 악의 축으로 각계의 군상들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싶었겠지만, 그런건 5부작짜리 다큐멘터리가 해야할 역할이다. 차라리 [택시운전사]처럼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는 편이 휠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IMF를 겪었던 세대에겐 '재현 드라마'라기엔 중반부터 듬성듬성 건너뛰었고젊은 세대에겐 이 재난이 무슨 난리법석인지 파악이 잘 된다. 그냥 '부모님 세대들이 고생했구나!' 정도만 남는다. 결론적으로 설득할 논리를 상실한 [국가부도의 날]은 울분을 주기도 부족하고, 경각심을 울리지 못한 게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소재를 존중해준 태도만큼은 정말 고마웠다. 첫술에 배부르랴!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금융영화가 많이 제작되면 좋겠다.



★ (1.0/5.0) 


Caution : 경알못이 쓴 각본!



● 영문 제목 디폴트는 '국가규모의 채무불이행'을 말한다.

● 조신제(조우진)는 당시 강만수 前 재정국 차관을 모티브로 한 듯싶다. 

●사실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건 한국은행 이다.


● 일본 외에 동아시아 전역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으므로 '아시아 금융위기'로 통칭된다. 

▶ 1996.12.09 내년 GDP 6% 내외 성장 예상 

▶ 1996.12.12 한국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 1997.01.23 재계 서열 14위 한보그룹 주력사 한보철강 부도 처리 

▶ 1997.10.27 확대 경제장관회의 개최, “한국 경제는 기초가 튼튼하다” 위기설 일축 

▶ 1997.11.21 정부, IMF 구제금융 요청 발표 

▶ 1997.12.03 IMF, 한국에 550억 달러 긴급지원 협정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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