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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08.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남긴 유산

국가대표팀이 귀국한 현시점에서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대략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자 남겨요.



1. 과정을 중시할 것이냐? 결과를 우선시할 것이냐? 

16강전에서 비록 8강에 가지 못했지만, 브라질 상대로 우리나라 대표팀이 가장 많은 유효슈팅을 기록했지요. 텐백을 하지 않고 대등하게 경기한 것을 보면서 만족스러웠어요. 반론이 많이 있으시겠지만, 16강 진출이라는 확실한 성과는 보여줬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실 것 같네요. 지난 4년간 벤투 감독은 일관된 콘셉트, 중장기적인 계획, 확고한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이번 월드컵에서 증명했고요.


그래요, 이것이 우리나라 축구가 가야 할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일본도 30년 동안 '스키 타카'라 불리는 일관된 철학 아래서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갔기 때문에 2 대회 연속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도출하였지요. 




2. 차기 감독 선임은?

벤투 감독이 성공한 가장 큰 원인은 '확실한 전술적 콘셉트'이죠. 우리가 치른 4경기 모두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고, 실점하는 순간마저 닮았죠. 상대에 무관하게 일관된 경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수동적인 축구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축구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실제 우리나라 대표팀이 주전과 벤치 간의 차이가 크다 보니 주계획에 집중한 것이죠. 한정된 자원 내에 가장 큰 효율을 이루는 방법이기도 하죠. 이러한 표준화 전략은 경제나 경영, 정치 어느 분야에서 통용되지요.


그러나 그간 최강희-홍명보-슈틸리케-신태용 감독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기는 것 외에 구체적인 지침이 없었지요. 지난 러시아 월드컵만 봐도 예선 3경기마다 전술이 휙휙 바뀌었죠. 상대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려면 그만큼 가용할 자원, 즉 선수 자원이 풍부해야겠죠. 


차기 대표팀의 핵심은 이강인 선수가 되겠죠. 그런데 황선홍 U-23 감독은 이강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더군요. 이강인에게 프리롤을 주고 나머지는 전형적인 한국형 뻥 축구를 구사하더군요. 국내 감독들은 제대로 된 코칭스태프 즉 사단을 꾸리지 않죠. 이것은 무엇이냐, 감독과 코치 간의 영역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러한 전체적인 큰 그림 즉 컨센서스의 부재로 인해 상대팀에 따라 포메이션이 급격히 바뀌거나  수동적인 축구를 하기 십상이죠. 


반면에 벤투를 흔히 '전술적 고집'으로 언론에 나왔지만, 벤투호는 명확한 컨센서스를 4년 동안 공유할 수 있었고, 선수들이 감독을 신임한 배경이죠. 그리고 벤투 사단은 감독의 전술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자 맡은 분야가 명확하기 때문에 전문화되어있죠. 현대 축구는 포지셔닝이 중요하죠. 즉 선수가 활동하는 범위를 정해주고, 그 안에서 협력수비와 공격 작업을 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놓죠. 그래야만 전방 압박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두줄 수비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지요.


정리하자면, 벤투가 우리나라 선수들을 휘어잡는 데에는 상대가 강하건 약하건 우리는 우리 축구를 한다는 전술적 컨센서스를 공유했다는 것이죠. 이것이 대표팀의 사기를 높이고 선수간의 유대감을 강화하게 된 배경이죠. 또한 강한 상대를 만나도 기본 틀은 무너지지 않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경쟁력이죠. 어떤 상황, 어떤 위기에도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4점이나 뒤졌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추가점을 낼 수 있었지요. 


상대에 따라 플랜 B, 플랜 C를 구사하는 것은 브라질, 프랑스 같이 뎁스가 두터운 팀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 벤투의 견해이죠. 예전처럼 크랙(슈퍼스타)이 혼자서 해결하는 시대는 지나갔죠. 성적을 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바뀌어서는 안 되죠. 유소년, 청소년, 성인 대표팀 모두 하나의 대전략 아래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죠. 통일된 전술이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더없이 좋죠. 클럽에 비해 대표팀은 아무래도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적으니깐요. 


벤투가 남긴 유산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켜야 우리도 꾸준히 16강 이상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일본보다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배출하는 우리나라 축구계답게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봐요.



3. 미녀 사냥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

우리나라는 현재 대내외적으로 문제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론 몰이를 할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봐요. 원인을 냉정히 분석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죠. 


우리나라 축구협회는 비판도 많이 받지만, 국내체육협회 중에 양호한 편이죠.  축협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협회 예산이라는 재정적 문제, 행정가끼리의 정치적 이해관계, 전문성이 부재한 코칭스태프의 무능 등을 들 수 있죠. 


이러한 것을 몇몇 분들이 책임지고 물러난다고 해결되지 않죠. 차근차근 하나씩 고쳐 나아 야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협의해나가야죠. 아무리 능력이 좋은 감독을 구해도 협회가 지원해주지 않고, 팬들이 응원해주지 않는다면 또다시 우리는 16강을 그저 바라만 하는 꿈으로 여겨야겠죠. 우선 벤투 감독이 남긴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마스터플랜부터 짜야겠죠. 축구계 인맥에 좌우되지 않는 뚝심 있는 외국 감독을 데려야죠. 유능한 코칭스태프가 꾸려진 감독을 골라야겠고요.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축구에 해당되는 담론은 아니지요. 대중국 무역수지가 수교이래 30여 년 만에 역전되어 적자행진을 거듭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 싶네요. 디지털 대전환, 신냉전, 기후위기 같은 변혁기에 맞게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할 때인 것 같아요. 더 이상 과정을 도외시하고 피상적인 결과만 추구했기 때문에 나타난 모순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죠. 


유소년 선수와 학생들에게 코앞의 성적 외에 다른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지 못하는 것이 올바를까요? 그들이 원하는 빅리그나 대기업에 가는 비율은 15%를 넘지 못하죠. 소수의 엘리트 외에 다수의 패자들을 양산하는 교육시스템,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고쳐야죠. 축구든 뭐든 간에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몇몇 에이스에 의존하기보다는 수준 높은 자원을 여럿 길러낼 수 있는 토대를 다져야죠.


우리나라 같이 경쟁이 치열한 국가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짓밟아버리는 방식은 '갑질'이라는 부작용을 낳죠. 착하게 살고 정의롭게 지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암세포가 사회 곳곳에 퍼지죠. 또한 성공방식이 한 가지뿐인 한국사회는 학업성취도 낮은 사람은 배척당하고 다양성을 줄이죠. 남들과 다른 의견을 표명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멸망의 수순을 밞게 되지요. 이것은 축구와 개개인의 삶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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