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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Mar 07. 2023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첫사랑이 끝사랑이 될 수 있을까?

First Love 初恋 (2022) 노 스포일러 후기

넷플릭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First Love 初恋·2022)》는 2018년 삿포로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노구치 야에(미츠시마 히카리)’와 ‘나미키 하루미치(사토 타케루)’의 현재와 과거를 추적한다.  


1. 첫사랑이 끝사랑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장대하게 이어진 두 남녀의 기구한 운명을 조명한다. 인간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운명 같은 것을 발명했을지 모른다. 운명을 감지하는 경험 중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을 예시로 들곤 한다. 평생 딱 한번뿐인 그 첫사랑 전후로 무언가가 확실히 바뀌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것에 주목한다. 



2. 《First Love》와 《初恋》의 차이

연출과 극본을 맡은 칸치쿠 유리 감독은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 《First Love(1999)》와 《初恋(2008)》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혔다. 말이 나온 김에 음악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https://youtu.be/svgzf-MUgFY

둘 다 첫사랑 노래이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First Love》은 첫사랑과 헤어진 이별가이고, 《初恋》는 절절한 운명에 대한 예찬가다. 전자는 아무래도 본인의 첫 이별을 이야기한 것 같고, 후자는 꽃보다 남자의 속편 <꽃보다 맑음>의 주제가로 특별히 제작된 노래다. 전자가 첫사랑이 남긴 그림자가 후자는 첫사랑이 안겨준 빛이다.      


https://youtu.be/lcp4bA46tRg

칸치쿠 유리는 아주 영리하게 이 곡들을 극적인 순간에만 사용한다. 나머진 팝 음악에 의존한다. 팝송은 분위기만 표현하는 BGM으로 활용된다. 갑자기 우타다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3. 하루미치는 왜 아에를 잊지 못하는가? 

심리학적으로 해부해 보자! 남녀관계에서 남자는 본인이 원하든 원지 않든 간에 리드한다. 여성 또한 그녀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예쁨 받기 위해 자아를 스스로 억압하고 있던 여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불만이 쌓이면서 권태와 만성적 긴장에 시달린다. 남성은 (여성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무능으로 말미암아 자기혐오와 죄의식에 시달린다. 남성이 거듭 사과하지만, 여성이 모든 잘못을 남성에게 전가해버리는 순간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그러나 손뼉은 마주쳐야 장단이 난다고 했다. 보통의 연애에서 남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남녀가 한마음 한뜻으로 합심해야지만 둘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남성은 그 중압감과 죄책감에서 탈출을 꾀하고 여성은 사태의 심각함에 절망하며 분노한다. 그렇게 사랑은 끝난다. 


칸치쿠 유리 감독은 남성의 죄의식과 여성의 자아실현에 주목한다. 우선 하루미치는 아에의 불행에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잊지 못한다. 8화에서 하루미치의 여동생이 오빠의 약혼녀 ‘츠네미 (카호)’에게 대사로 친절하게 일러준다.     


반면 아에는 계속 장래희망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는다. 1회에서 그녀의 꿈을 시작하고 9화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수미쌍관은 여성이 관계(특히 어머니)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심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아에의 어머니 ‘키하코 (코이즈미 쿄코)’다. 남자 잘못 만난 죄로 미인대회 입상자였으나 현재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자신을 한탄한다. 딸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잣집에 시집보내려는 야망으로 불타오른다. 그런데 아에는 나중에 츠츠루에게 ‘부모의 기대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디테일이 녹아 있기 때문에 드라마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4. 사카모토 유지의 진화형  

극의 형식을 분석해 보자! 90년대부터 2018년까지의 장대한 과거사와 현대를 교차편집으로 한데 연결한다. 두 사람의 감정과 개연성이 중구난방처럼 느껴질 법하지만, 여기에는 명확한 규칙이 있다. 칸치쿠 유리는 90년대 순정 드라마(순애보 드라마)로 시청률을 씹어 먹었던 사카모토 유지의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한드의 장점을 받아들여 새롭게 혁신했다. 그러면서도 사카모토 유지가 확립한 공식에 충실하다. 


회차별로 살펴보자면, 1화 <라일락꽃 필 무렵>은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떡밥을 투척한다. 2화 <너의 목소리>는 첫 데이트를 중심으로 달달한 당분을 섭취시킨다. 3화 <나폴리탄>에서 왜 두 사람이 지금 헤어졌는지를 밝힌다. 4화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인연을 강조함으로써 재회의 복선을 강하게 심는다. 5화 <수어로 말해요>를 통해 조연 캐릭터에 집중함으로써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6화 <육감>에서 갈등을 심화시키며 로맨틱한 이벤트를 제공한다. 7화 <꿈의 전과 후>에 연적을 등장시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8화 <어떤 오후의 프루스트 효과>에서 연적 문제를 봉합하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9화 <하츠코이>에서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는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면서 한드 <태양의 후예>와 <사랑의 불시착>처럼 밀리터리 요소를 끌어와서 남성성을 부각한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이 영상미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일드 특유의 칙칙하고 촌스러운 화면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응답하라 1997> 같은 복고감성을 자극하는 코드도 확실하다. 국민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를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참고로 우타다 히카루의 1집은 아직도 일본 최다 판매 앨범일만큼 역사적인 명반이기 때문이다.



5. 애절함은 어디서 생성되는가?

이 드라마는 교차편집과 서브플롯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아마 속도감 있는 전개를 하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살기 힘듦'을 껴안고 있다. 풍운의 꿈을 꾸는 20대가 현실의 벽에 한계를 느낀 40대가 되는 과정을 그림에 있어 칸치쿠 유리는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주인공 외에 모든 인물들에 힘을 쏟은 이유일 것이다. 전개가 느려졌지만, 그만큼 풍부한 디테일을 품고 있다. 인생의 쓴 맛과 단맛을 모두 맛본 세대라면 공감할 이야기가 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그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극 중 부모들은 제각각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제멋대로 흘러간다. 


부모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아에의 성장을 보면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연상시킨다. 미츠시마 히카리가 주연이고 여성감독이 연출과 극본을 맡았다는 점에서 진취적인 여성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겪는 불행이 그녀가 가장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었던 사람이라는 아이러니가 더 애달픈 법이니까 말이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독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결말이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

              


★★★ (4.0/5.0) 

 

Good : 미츠시마 히카리의 화면 장악력 그리고 품위를 잃지 않는 대사

Caution :  어른들의 이야기라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런 만큼 더 깊다.    

  

보면서 일본은 SF강국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화성탐사선을 통한 꿈의 좌절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거나  츠네미의 북극성 드립 역시 특촬물의 본고장다운 펀치 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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