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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an 31. 2023

바빌론 영화에게 보낸 연애편지

《Babylon·2022》정보 결말 줄거리 후기

극장 산업은 2010년대 들어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중국 영화 시장의 성장으로 북미 박스오피스의 1극 체제가 붕괴되고 전세계 관객들이 한국 영화, 영국 영화, 독립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접하기가 쉬워졌다. 더욱이 OTT로 인해 영화를 보는 경로가 다변화되었다. 과연 영화계는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답변하기 위해 구약성서를 인용한다.


제목의 ‘바빌론’은 흥망성쇠의 대명사다.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치드키야 왕을 비롯한 유대인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다. 유대인은 바빌론에서 선진문명을 체험하게 되고, 일신교와 심판의 날 등 새로운 교리를 확립했다. 데이먼 셔젤 감독은 바빌론에 빗대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격변기의 할리우드를 조명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만 때때로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1927년에 유성영화가 처음 나오자 “어떤 인간이 배우가 말하는 걸 듣고 싶어 한다는 말이냐?”라고 워너 브라더스의 창립자인 해리 워너가 코웃음 친 적이 있다. 변혁의 시대는 인간에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도록 요구한다. 격변기를 겪은 LA는 스튜디오 시스템, 스타 마케팅, 실내 촬영 세트 등이 확립되면서 할리우드 황금기가 열린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변화를 깨닫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이것이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슈퍼스타 ‘잭’(브래드 피트), 신예 배우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멕시코 출신 영화종사자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을 통해 1926년부터 1932년까지의 할리우드 격변기를 여러 층위에서 관찰한다. 산업 메커니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쫓겨나거나 떠나기로 선택한 사람들, 이미지관리를 위해 성적 취향을 숨기는 동성애자들, 백인 배우에 비해 주요 배역에서 탈락하는 소수 인종 배우들을 지켜보게 만든다. 

 

인상적인 대목은 영화는 화려한 은막 뒤에 피·땀·눈물을 흘리는 이름 없는 종사자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한다 점이다. 특히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조반 아데포)와 동양인 여배우 페이 주(리 준 리)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과정을 따라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언급하고 넘어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윤리적 중심을 맡은 디에고 칼라

<바빌론>은 재즈적이다. 영화에 배경이 되는 1930년대를 아예 재즈 시대로 명명할 정도로, 빅밴드 스윙 재즈가 댄스홀을 지배했다. 당시 재즈는 2박과 4박에 강세를 주고, 당김음을 통해 그네를 타는 듯한 리듬감의 탄력성을 강하게 줬다. 사운트트랙 역시 강렬한 리듬의 춤곡에 아프리카, 쿠바, 멕시코, 중국, 하와이, 중동, 트리니다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월드뮤직 요소를 재즈 선율에 가미했다. 재즈 자체가 서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유럽음악을 배우면서 만들어진 범지구적인 음악이다. 동유럽 집시음악, 미국 블루스,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음악과 닮아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할리우드도 재즈처럼 세계 각국의 문화 자양분을 흡수했다.

  

서사에서 영화의 재즈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거대한 야망을 갖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사람은 부지기수이지만,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흥하는 자와 망하는 자가 처지가 극명하게 갈린다. 돈, 인기, 명성이 따르는 쇼 비즈니스의 뒤안길에는 섹스, 마약, 폭력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마련이다. 데미언 셔젤은 이러한 전환기의 혼란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대공황 직전 미국 주식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어있었던 것처럼 동시대의 할리우드 초기의 퇴폐와 타락은 고삐가 풀려있다. 감독이 보내는 영화에 대한 헌사에는 노골적인 풍자를 잊지 않았다. 당시의 사례를 과장했다고 하지만, 문화산업의 방종은 지금도 벌어지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현실적인 묘사가 곳곳에 녹아있어 배꼽 잡게 우스꽝스럽다가도 처절하리만큼 비극적이다. 희극과 비극 모두 건조하게 다루고 있어 더욱 신금을 울린다.  


극장산업의 추악한 면을 고발하고 있고, 스타들의 타락과 일탈을 여과 없이 전시하지만, 디에고 칼바가 윤리적 중심을 잡고 있어서 생각보다 보기 불편하지 않았다. 음악을 담당한 저스틴 허워츠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플로렌시아 마틴의 도움으로 감독의 시각적 야망을 실현한다. 영화는 그 시대의 장엄한 사치를 추모하지만, 고통(파토스)을 간과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잭, 넬리, 매니가 아니다.

스포일러를 고려해서 자세한 장면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바빌론>의 진짜 주인공은 '영화'다.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비호감 캐릭터를 단순한 관찰대상으로 취급해야지 올바르게 감상할 수 있다. 


데미언 셔젤은 F.W. 무르나우, D W 그리피스, <사랑은 비를 타고>을 오마주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인간의 유한함과 영화의 불멸성을 대비하며 유성영화 태동기에도 영화의 위기라는 경고가 있어왔지만, 지금껏 영화는 계속 이어졌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  (4.0/5.0)  


Good :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Caution : 진짜 주인공은 '영화'다. 그러므로 인간 캐릭터에 마음을 주지 마세요!     


●<바빌론>에 관해 혹자는 내러티브가 단조롭다거나 영화산업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는 데서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변혁기에 다양한 직군과 배우, 제작진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뭉클했다.


데미언 셔젤은  “어떤 예술의 한 형태와 그 산업이 처음 형성되던 초창기의 일들, 이들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바빌론>을 제작하기 위해 15년간 당대의 사진, 영상, 문헌 등을 조사했다. 그렇게 완성한 자료만 100페이지에 달한다. 

           

■바빌론 유수는 기원전 538년에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난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앞선 화려한 문화를 체험하였다. 페르시아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을 설정하였고, 그 신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개념으로 인간사에 윤리성을 도입하였다. 이 교리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여 그때까지도 현세 지향적이었던 유대교를 선진화시켰다. 일신교가 이때 정립된 것이다.  


 제80회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을,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오는 3월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의상상, 음악상, 미술상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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