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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Mar 20. 2023

파벨만스*예술의 시선

《The Fabelmans·2022》노 스포 후기·해석

1999년에 극작가이자 첫째 여동생인 앤 스필버그가 부모님의 이혼을 두고 쓴 극본 <I'll Be Home>이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부모님이 혹시나 상처를 받으실까 봐 2017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레아 아돌러 그리고 아버지 아놀드 스필버그가 2020년 2월에 작고하신 뒤에야 재개되었다. 2020년 10월부터 스필버그는 토니 쿠슈너와 함께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세 명의 여동생들에게 검토를 부탁했고, 그녀들은 어린 시절 오빠가 자기들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읽고는 많이 놀랐다고 한다. 영화에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트라우마를 이기는 방법

《파벨만스》는 평범한 소년이 겪는 트라우마를 그리고 있다. 1952년 뉴저지, 6살 때 처음 가본 극장이 무서웠던 어린 새미를 진정시키는 양육법을 비교하면서 성향이 달랐던 부모를 간결하게 소개한다. 아버지 버트(폴 다노)는 영사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꿈의 마법이라고 아이를 달랜다. 처음 관람한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의 열차 사고 신을 보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잠 못 이루는 새미는 아버지 버트(폴 다노)가 사준 라이오넬 장난감 기차로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하며 무서움을 떨쳐보려 한다. 기차가 망가질까 봐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암스)는 “기차가 충돌하는 순간을 8mm 필름카메라로 녹화하면 반복해서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공포는 사라지고, 실제 기차는 계속 부서지지 않아도 돼.”라며 충고를 한다. 즉 '삶의 고통은 통제할 수 없지만, 필름은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미는 촬영본을 이어 붙이며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을 재구성한다. 이를 감상하면 무서움을 잊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동생 혹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홈 무비를 찍는다. 그것도 서부극, 공포영화, 전쟁영화 등 온갖 장르에 도전한다. 스필버그는 8살 때 8mm 필름영화를 찍고, 16살 때 연출한 홈무비가 동네 영화관에 정식 상영한 천재였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홈무비는 훗날 <미지와의 조우>로 재탄생한다.


어머니에 대한 용서와 아버지와의 화해

미셸 윌리암스는 자유로운 영혼 ‘미치 파벨만’ 역을 아이들의 상상력을 응원하는 치어리더로 해석하면서도 속박된 삶에 대한 그녀의 좌절감을 진솔하게 묘사한다. 토네이도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그녀의 기질을 설명한다. 미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꾹 참지만, 본성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녀의 꿈에 대한 미련은 가족을 불안케 한다. 반면에 폴 다노는 지적이고 안정감을 중시하며, 헌신적인 가장을 연기한다. 버트 파벨만은 자신보다 아내와 자녀의 의사를 우선 존중하고, 기꺼이 인내를 감수한다. 특히 순간순간 감정을 억누르며 숨기는 미묘함이 인상적이다.


《파벨만스》은 100% 자전적인 에피소드로 구성했으나,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자식된 도리로 가득하다. 스필버그는 대략 20-25년 동안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나게 한 책임이 있다고 원망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것을 인생 후반에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는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서로 가치관이 달랐던 두 사람을 묘사한다. 아버지에 대한 송구스러움과 어머니의 심정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심정이 절절히 녹아있다. 


스필버그는 (동생들에게조차 숨긴) 평생 간직했던 비밀을 폭로한다. 캠핑 영상을 편집하다가 어머니의 무책임한 행동을 알게 된다. 이때 어머니가 거실에서 바흐의 <아다지오>를 연주하는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큰 충격을 받은 새미는 당장 카메라를 중고시장에 내다판다. 쓰라린 경험은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을 따라가기 위해 가족을 포기한 아버지 로이, 그리고 <E.T>에서 이혼 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엘리엇 삼 남매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새미는 영화 만들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내재된 슬픔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영화를 가벼운 취미정도로 여겼던데 반해 어머니가 영화 예술을 추구하도록 격려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A.I>에서 로봇을 버린 어머니 캐릭터에서 극대화된다. 또 <태양의 제국>,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같은 어두운 영화에서조차 가족주의·동심·휴머니즘에 집착했던 이유가 여기서 밝혀진다. 


리액션의 미학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예술관을 확립하는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에 유년기에 만들었던 홈 무비를 다 함께 지켜보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카메라는 여행 영상보다 부모님과 여동생 레지(줄리아 버터스), 나탈리(킬리 카스텐), 리사(소피아 코페라) 혹은 친구들의 반응에 더 중점을 둔다.


리액션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이유는 단체 관람의 경험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스트리밍 시대에 어울리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유튜브나 숏츠 같은 어떤 영상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관객의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즉 스필버그에게 영화란 단순한 이미지의 총합이 아니다. 카메라가 관객의 표정을 포착하는 것에서 영화란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그의 예술관을 읽을 수 있다. 스필버그는 극장에서 이를 경험했고, 이것이 영화 만들기에 매진하게 된 동기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영화 만들기의 본질은? 삶과 예술의 상충

외종조부(외할머니의 남동생) 보리스(주드 허쉬)는 삶과 예술은 충돌한다며 사자의 입 속에 머리를 들이민다는 비유로 전달한다. 보리스는 예술이란 사자가 머리를 잡아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거실에서 피아노 치는 어머니를 예시로 든다. 어머니의 연주를 듣고 아버지는 화성학적으로 풀어내지만, 그것은 마치가 바라는 감상이 아니다. 보리스는 조카 마치의 좌절된 꿈이 그녀가 갖는 예민함의 근원이라고 일러준 것이다.     


삶은 예술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예술은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조언은 스필버그가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느낀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심리학적으로 읽으면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등으로 박스오피스 총수익이 100억 달러를 넘긴 최초의 영화감독은 가족과의 안정된 삶을 포기해서 얻은 것이라는 서글픈 결론에 도달한다. 스필버그의 특징인 가족주의·동심·휴머니즘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의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보리스가 던진 화두는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라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들이다. 후배 예술가들에게 재능에 지나치게 헌신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고 조언을 건넨다.


삶의 고통은 통제할 수 없지만, 필름은 편집할 수 있다

새미는 캘리포니아 이주 후 학교에서 유대인이라고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에 첫사랑이 찾아온다. 열혈 가톨릭신도 여학우를 만나 키스하기 전에 십자성호를 긋는다. (그녀를 위해) 프롬파티에 상영할 해변영화를 연출한다. 새미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를 도리어 영웅으로 묘사한 단편영화를 제작함으로써 보리스가 가졌던 의문에 대신 답한다. 학창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를 다루면서도 스필버그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거나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머니가 일러준 편집의 마법과 보리스 삼촌이 경고한 예술관 덕분이다. 현실의 비극을 어떤 관점에서 다루느냐에 따라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스필버그는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다.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영혼을 정화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일치한다.


여기서 얼핏 평범해 보이는 《파벨만스》가 비범한 까닭이 밝혀진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외계인 <ET>로 치유했고, 자신의 이혼에 대한 후회를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의 윌헬미나 윌리 스콧(케이트 캡쇼)을 통해 전달했다. 학창 시절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쉰들러 리스트>와 <뮌헨>으로 정리했으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예술의 시선

존 포드의〈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존 포드를 만났던 일화는 유튜브로 볼 수 있을만큼 그동안 많이 이야기했다. 새미가 친구들과 함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관람하는 장면이 복선이다. 스필버그는 극장을 오가며 에른스트 루비치, 구로사와 아키라, 앨프리드 히치콕, 스탠리 큐브릭, 윌리엄 와일러, 빌리 와일더, 클라렌스 브라운 등의 작품을 감상하며 스스로 영상문법과 기술을 터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배 감독들에 대한 존경심이 상당했다. 구로사와에게 제작비를 조달해 준다거나 큐브릭의 유작을 대신 연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선배의 가르침대로 스필버그는 근사한 엔딩 장면을 완성한다. 인물은 가만히 있지만, 카메라만 움직인다. 이것은 시선의 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70세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했다는 자기고백인 동시에 영화의 마법은 현실의 고통을 필름에 담아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를 통해 예술은 삶을 담는 과정, 트라우마를 이기는 방법이라고 술회한 셈이다.



★★★★ (5.0/5.0) 


Good : 가족의 희생에 감사하고 삶과 예술에 관해 담담하게 고백한다.

Caution :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려보길 바란다.


아버지와 동생들

■“언제 우리 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거니?” 어머니에게 늘 듣던 이야기라며 “어머니는 부모라기보다 큰누나 같았다.”며 피터팬에 비유했다. 아버지는 워커홀릭이라 집에서 함께 할 시간이 적어서 자랄수록 많이 그리웠다고 회고했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잘 한 행동이 아버지와의 화해라고 털어놨다. 이혼 후에 아버지를 따라갔지만 관계가 멀어졌다고 후회했다. 아버지와의 관계회복이 <링컨>을 연출할 때 도움이 됐고, 아버지가 들려준 소련으로 출장 갔던 경험담이 <스파이 브릿지>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했다”며, (<파벨만스>를 제작한 것이)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스필버그는 폴 다노와 미셀 윌리암스가 분장을 끝마친 모습을 보고서 생전 부모님이 생각나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배우들이 그런 그를 안아줬다고 한다. 한편 87세의 주드 허쉬는 영화에 딱 한 번, 그것도 고작 8분 출연하고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스필버그가 만든 서부극이 너무 보고 싶다. 폴 다노는 연기력에 비해 상복이 너무 없다. 그리고 올해 아카데미의 유일한 아쉬움은 스필버그에 감독상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들의 왕'이라 칭한 존 포드는 장 르누아르,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촬영하고 어떻게 조명을 설치하고 이미지를 이어 붙일지를 개척한 선구자 중 하나다. 또 존 포드는 히어로영화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의 계보에서 맨 먼저 거론되어야 할 거장이다. 그가 만든 서부극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활극을 거쳐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의 블록버스터,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란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존 포드는 서부극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서부극이 아닌 1936년 〈밀고자〉, 1941년 〈분노의 포도〉, 1942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53년 〈말 없는 사나이〉로 아카데미 감독상 최다 수상영예를 갖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계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멸시를 겪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에 매우 민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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