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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Aug 07.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그들만의 세상

《Concrete Utopia·2021》노 스포 후기

황궁아파트 복도와 로비에서 만난 주민들은 더 이상 집값논의를 하지 않는다. 대지진이후 유일하게 멀쩡한 황궁아파트 주변으로 몰려든 외부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고, 내 몸을 돌보지 않고 화재를 진압한 이타적인 902호에 사는 ‘영탁(이병헌)’이 주민 대표를 맡아 아파트 사수에 나섰다. 1207호의 부녀회장 ‘금애(김선영)’이 여론을 주도하고, 602호에 사는 부부, 공무원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는 사태를 관망한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아파트 한 채만 보존됐다’는 설정 아래, 대한민국의 지배 레짐을 풍자한다. 약 1200만 채, 한국인의 거주 공간 60%를 차지하는 아파트는 단순한 거주지, 안식처, 재산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해, 1062조 3000억 원의 가계부채를 부담하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파트를 둘러싼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 전반을 고찰한다. 동시에 극한 상황을 빌어 인간 본성과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우리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아파트는 거주형태로 지칭될 수 없다. 아파트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농촌 사람들의 꿈을 상징했고, 점차 서민층에서 중산층으로, 중산층에서 상류층으로 계급 상승을 갈망하는 이들의 재태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국인의 재산, 권력, 욕망의 총합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갖는 아파트의 상징성을 풍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내내 뜨끔하다.


황궁인은 외부인을 배제하고 약탈한다. 리더가 된 영탁은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고 독재체제를 완비한다. 외부인을 적대시하고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린다. 한국사회의 단면들, 남자와 여자, 수도권과 지방, 좌파와 우파로 극단적인 편가르기의 양태를 반영한다. 그러나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나 국가가 그렇다. 감독은 이러한 휴머니티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 잘 살면 돼’라는 끼리끼리 문화를 통해 공감대를 얻는다.


아파트공화국의 근본이념

외부인과 주민의 경계에 선 박지후

영화 속에서 남성들이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해오고, 여성들이 티타임을 갖는 모습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또 전세 사기, 주택 대출, 주민 갈등 같은 현실의 이슈를 필름에 담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허구의 세계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몰입감을 갖는다. 등장인물의 행동, 대사,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레퍼런스한 조명의 활용에서 물질주의적 가치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주의, 관치경제, 주변인들의 메시아주의, 정치적 무관심이 연상된다. 감독은 아파트가 박정희주의(개발독재)의 산물이고 지금은 신자유주의로 트리밍되어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두 이념 모두 강자생존의 논리라는 점, 약자우대를 역차별로 여긴다는 점, 저능력자를 돌보지 않는 걸 넘어 혐오하는 '과잉능력주의(hyper-meritocracy)'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권자 다수는 분배보다 성장을 원하고, 경제 발전만 되면 노동탄압·언론억압 같은 건 눈감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고로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 (3.9/5.0)


Good :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K-아트버스터

Caution : 기능적인 캐릭터, 다소 무거운 이야기


■원작인 김숭늉의 웹툰 《유쾌한 왕따》보다 박해천의 한국 아파트 문화 연구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화의 제목을 따왔다. 엄 감독은 “웹툰 원작을 본 뒤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자 이 책을 읽고 시나리오 가제로 먼저 붙였었다”면서 “콘크리트는 아파트를,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않는 이상적 공간을 상징하는데 두 단어의 아이러니한 조합이 현실과 잘 맞아 떨어져 영화 제목으로 저자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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