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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Aug 14. 2023

오펜하이머*양면성의 재판

《Oppenheimer·2023》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짚으면서 1930-50년대 격동기의 과학자들, 군인, 정치가들이 다수 등장한다. 펜타곤을 건설한 주역이자 오펜하이머를 발탁한 맨해튼 프로젝트 담당자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 소련보다 먼저 수소폭탄 개발을 주장한 원자력위원회장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오펜하이머의 연인이자 미국 공산당 소속의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 오펜하이머의 아내이자 생물학자 키티(에밀리 블런트),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잭 퀘이드), 어니스트 로런스(조시 하트넷), 알버트 아인슈타인(톰 콘티), 양자역학의 선구자 닐스 보어(케네스 브래너),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 등이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 등장한다.


살리에르가 된 로다주

카이 버드와 마틴 J. 셔먼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한다. 작가들은 왜 그를 주신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했을까? 핵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주축이 돼 발명한 원자폭탄은 인류 최대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짓지만, 인류를 공멸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이기도 하다. 놀란은 이러한 양면성에 주목했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사고방식에 빠져들게 하는 놀라운 연출을 선보였다. 매 순간 4-5개의 시간대가 서로 맞물리고, 컬러와 흑백 화면이 서로 부딪히고, 음향 역시 고요한 정적과 귀를 찢는 굉음의 핵이 분열한다. 킬리언 머피를 비롯한 명품 배우들의 연기 또한 앙상블을 이루다가도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플롯이 연쇄적으로 충돌하여 끝내 핵폭발이 일어난다.


영화의 주안점은 변화하는 시대상에서 겪는 인간적 고뇌를 필름에 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놀란은 흑백 장면들은 실제 역사 혹은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관점을 따르고, 컬러 장면은 주로 오펜하이머의 관점을 반영했다고 한다. 또한 컬러 장면은 주로 트리니티 실험과정을, 흑백 장면은 전후의 시간대를 묘사했다고 밝혔다. 색으로 시간뿐 아니라 주관과 객관도 구별한 것이다. 놀란은 그 이유에 대해 "<메멘토>에서 정말로 좋아했던 흑백과 컬러의 교차 대조를 다시 활용할 완벽한 계기라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의 이야기의 전달방식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좀 더 많은 객관적인 이야기의 가닥들이 그 사이에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영화는 여러 시간대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놀란은 친절하게도 두 가지 플롯으로 정리해 준다. 첫째 1954년 오펜하이머가 보안 허가 위원회에서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오펜하이머 본인의 삶과 경력을 회고한다. 둘째, 1959년 상무부 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루이스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관점으로 오펜하이머의 업적을 평가한다. 즉 놀란은 검사와 변호사 간의 심문을 주고받는 공판(형사재판)을 속개시킨다. 일종의 공판검사인 스트라우스 역은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주관과 객관의 진술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라늄-235 원자가 새로운 중성자로 쪼개지듯 진행된다. 이야기는 핵분열 반응을 연쇄적으로 터트리며 오펜하이머에 대한 재판이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새삼 일깨우친다. 판결은 판사인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며 내릴 것이다.


★★★★☆ (4.7/5.0)


Good : 할리우드에 오리지널 영화의 필요성을 증명하다.

Caution :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현대사를 모른다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놀란은 맨해튼 프로젝트보다 전후 평화주의자로 돌아서며 정부와 척을 진 오펜하이머의 족적에 더 관심을 둔 느낌이다. 1930년대 미국 답게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으나, 냉전 이후 매카시즘(반공주의)으로 흘러갔던 것에 주목한 것 같다.  조금 설명하자면, 1930년대에 발생한 대공황과 소련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이것은 미국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일본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강의 기적’의 롤모델이 되었던 만주국의 '만주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은 만주국의 상공관료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총리는 당시 대공황을 극복한 소련 스탈린의 중공업 정책 등을 모방해서 작성하였다. 참고로 기시 전 수상은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이며, 전후 A급 전범으로 구속되나 이내 풀려났다.


■핵폭발 장면은 놀란답게 재래식 폭약을 폭발시켜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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