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옛날 영화'을 추천하는 것은 채식을권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한 일이 가득한 이 시대에, 퇴근 후 영화를 보는 것이 과연 여가인가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허나 장담할 수 있다. 영화적 '즐거움'에 관한 브라이언 드 팔마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1968년부터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들은 순수한 오락, 도발적인 주제, 시네필에게 종종 저급하다고 폄하받는 장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드 팔마는 B급 소재를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스타일리스트이며, 기성사회가 싫어할 주제의식와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과 반항으로 가득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동세대의 여느 감독과 특별히 달랐던 점은, 천대받은 공포영화의 문법을 받아들이고,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통해 제도의 타락, 차별과 배신, 무너진 가치 등 미국 신화의 해체를 이야기해왔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영웅이 되려던 주인공은 늘 악몽을 겪고 희생자가 되고 파멸당한다.
본인은 "케네디 암살 사건과 베트만 전쟁으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60년대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해왔지만, 그가 '히치콕의 주석자'라는 별명처럼 일상과 가정에 숨어든 악몽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 그가 재현하는 공포의 방식은 개성적이기 때문에, 박찬욱, 테렌스 멜릭, 쿠엔틴 타란티노,우인태, 니콜라스 빈딩 레픈, 평론가 폴린 카엘, 로저 에버트 등으로부터 찬사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장 대우도 받지 못하고, 할리우드를 뒤흔드는 흥행사도 못되었다. 이 반역의 스타일리스트는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흥분을 불러일으키며 관심을 집중하게 만드는 대표작 10편을 엄선했다. 드 팔마의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고 항상 놀라움을 선사하며 즐길 수 있다.
#10 :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1996)
제작자 톰 크루즈는 원작의 틀을 깨면서 시작했다. 팀이 폭사하고 리더는 배신자. 유일한 생존자인 풋내기는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다. 드 팔마는 이단 헌트에게 필사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히치콕식 '오인된 남자' 플롯을 결합한다. 액션영화의 탈을 쓴 서스펜스 스릴러이며, 탐정 기법을 이용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스터리를 완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1편은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로 남았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상당히 일관성을 유지한 몇 유지한 몇 안 되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이지만, 1편은 여전히 가장 작가 중심적인 영화다. 역대 최고의 스파이 스릴러 중 하나로 그 기대를 충족했다.
#9 : 스카페이스(Scarface·1983)
드 팔마는 하워드 혹스의 고전을 리메이크하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코카인, 시끌벅적한 욕설, 충격적인 폭력, 거의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등 모든 면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부친다. 그러나 알 파치노의 역동적인 연기와 강인한 캐릭터에 120% 부합한다.
그리고 90년대 갱스터 랩과 00년대 마피오소 래퍼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스카페이스>에 비유하며 토니 몬타나를 자처했다. 우탱클랜의 래퀸, 나스, 제이지, 퓨처 등 수많은 래퍼들의 성공 신화는 <스카페이스>공식을 참조했다.
#8 : 칼리토 (Carlito's Way·1993)
일반적인 갱스터 영화에서 범죄자의 오도된 욕망으로 비극에 처하는 것과 달리 <칼리토>는 갱생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은퇴한 갱스터가 조직의 생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드 팔마는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남자의 죽기 전엔 벗어날 수 없는 지옥도를 구체화한다. 초반의 당구장 시퀀스, 절정의 추격전과 총격전으로 그 절박감을 환상적으로 시각화한다.
#7 : 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1980)
히치콕이 그랬듯이 드팔마 또한 스릴러에서 이야기보다 스타일이 중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드 팔마의 섬뜩한 도발은 <싸이코>, 지알로 장르와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모든 장면마다 자신이 영향받은 요소들을 갈기갈기 해부해버린다. 성심성의껏 선배들의 유산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조차 애정 어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참고로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의 학교 시퀀스를 찍을 때 <드레스드 투 킬>을 분명히 의식하고 찍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6 : 시스터스 (SISTERS·1972)
드 팔마의 첫 공포영화는 그의 정치적인 면모와 히치콕적 감성이 훌륭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경찰의 인종차별, 여성 억압을 비판하면서 히치콕적 플롯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
한 기자가 모델의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경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이창>의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시각화하는 방식은 지극히 드 팔마적이다. 자기 혼자 하나하나 발명해야했던 히치콕에 비해 드팔마는 영상세대답게 훨씬 진일보했고 자유로웠다. 분할 화면과 이중인격, 관응증, 공포에 대한 강조, 강렬한 여성캐릭터, 멜로드라마적인 음악 등 드 팔마의 주제적·미학적 집착이 처음 드러난 처녀작이다.
#5 : 전쟁의 사상자들 (CASUALTIES OF WAR·1989)
2008년에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연말 결산 1위로 뽑힌 <리택티드>의 정신적인 조상님을 만나보자! 전쟁이 어떻게 문명인을 야만으로 끌어내리는지를 다룬 이 영화는 월남전 당시 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192 고지사건’을 반성하고자 제작됐다. 드 팔마는 모든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하는 놀라운 일을 성취해냈다. 숀 펜이 맡은 악역은 분명 괴물이지만 전쟁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드 팔마는 그를 변명하지 않으며 냉정히 흑역사를 시점 샷을 통해 끔찍한 범죄의 목격자가 된 듯한 관음적적인 톤을 사용해 강렬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4 :천국의 유령 (Phantom Of The Paradise·1974)
다프트 펑크와 <베르세르크>에 영감을 준 록 뮤지컬로 "Old Souls", "Life At Last", "The Hell Of It"은 찾아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드 팔마의 다른 많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낙원의 유령>도 개봉 당시에는 크게 호평 받지 못했다. 영화는 와인처럼 숙성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페라의 유령>, <파우스트>와 같은 고전적 소재와 쾌락주의, 호러, 코미디, 멜로, 판타지, 스릴러 장르를 전복하며, 로큰롤, 관음증, 이중의 모티브, 분할 화면을 통해 문화 산업을 기발하게 풍자한다. 특히 훗날 작곡가협회장에 오르는 폴 윌리암스가 예술가를 착취하는 제작자 역을 맡은 점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3 : 언터처블 (Untouchables·1987)
드 팔마와 로버트 드니로가 17년만에 뭉친 영화는, 겉보기에는 악당을 때려잡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엘리엇 네스가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많은 동료는 물론 모든 이상을 희생해야 했고, 결국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노력했던 볼스테드 법을 폐지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이런 영웅 신화의 해체에 히치콕식 폭탄 테러,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오데사 계단 오마주, 야구방망이로 응징되는 카포네 등 눈이 번쩍 뜨이게하는 인상적인 장면들로 그 주제를 뒷받침한다.
#2 : 캐리 (Carrie·1976)
<캐리>는 스티븐 킹 소설의 각색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시시 스페이식은 원작과 다른 이미지지만 연기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고, 딸을 학대하는 광신도 어머니를 연기한 파이퍼 로리의 전설적인 연기도 굉장히 끔찍하다. 영화는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드 팔마의 번뜩임이 잘 녹아있다. 드 팔마는 분할 화면, 창의적인 편집, 긴 트래킹 샷 같은 장기를 아끼고, 복수의 대학살 시퀀스 등에서만 상당히 아낀다. 내러티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시각적 스타일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1 : 필사의 추적 (Blow Out·1981)
드 팔파가 항상 추구해온 테마와 형식이 완벽하게 집약된 작품이다. 암살 가능성을 밝히기 위해 녹음을 강박적으로 재구성한 주인공의 모습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 Up)>과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의 <도청(The Conversation)>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대사보다 빌모스 지그몬트가 촬영한 시각적 이미지로 승부한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듯한 분위기는 관객을 주인공의 심리에 직접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케네디 암살에서 보듯이 미국 기득권층의 은폐를 모든 프레임에 집약시켜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