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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18. 2018

마약왕, 2018_'개발독재'의 그림자

《마약왕, THE DRUG KING, 2018》 후기·리뷰

국가는 범죄자, 세상은 왕이라 불렀다


“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면 그게 바로 애국 인기라!”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 대한민국, 하급 밀수업자였던 이두삼은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했다가 마약 제조와 유통 사업에 본능적으로 눈을 뜨게 되면서 사업에 뛰어든다.


“이 나라는 내가 먹여 살렸다 아이가”

뛰어난 눈썰미, 빠른 위기 대처능력, 신이 내린 손재주로 단숨에 마약업을 장악한 이두삼. 사업적인 수완이 뛰어난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가 합류하면서 그가 만든 마약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달게 된다.  마침내 이두삼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백색 황금의 시대를 열게 된다. 한편, 마약으로 인해 세상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승승장구하는 이두삼을 주시하는 한 사람 김인구(조정석)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마약왕, THE DRUG KING, 2018》후기·리뷰_'개발독재'의 그림자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마약왕》의 극본을 쓰면서 "70년대 유신정권 시대에 존재했던 마약왕이라니… 처음 접근할 땐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오히려 그 시대라 가능했겠다 싶더라."라고 밝혔다. 최대 화두가 ‘잘 살아보자’인 시절, 그 미명 아래 모든 악행을 눈감아줬던 시대다. 심지어 ‘유엔 대사가 뒤로 고아까지 수출하던’, 그런 부패의 시대를 배경으로《마약왕》은 수출주도 산업화가 남긴 그림자를 추적한다. 


이두삼(송강호)은 마약 제조, 유통이라는 악행에도 이두삼은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70년대식 자기 논리를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약왕으로 성장하는 초반부는《범죄와의 전쟁》를 연상시키는 블랙코미디가 유쾌하게 펼친다. 삼성그룹 산하 한국비료가 저지른 사카린 밀수사건(1966년)을 패러디한 비료포대가 등장할 때 피식하게 된다. 우민호 감독은 70년대 유년 체제하에 자행된 정경유착을 파헤친다. 이두삼과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연대기 순으로 강의할 뿐 풍자와 해학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마약왕》은 이런 현실적인 존재들을 통한 '풍자'라는 속성 때문에 풍자 대상을 모르거나 배경 지식이 적은 독자 혹은 시청자나 관객들의 경우 그 속의 현실적인 소재나 감성을 공감하지 못하여 '블랙 코미디'를 의도대로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영화는 정관유착을 비판하기 위해 '수출주도 산업화'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수출주도 전략이 성공한 국가가 적은 이유는 후발주자(개발도상국)가 이를 시행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시행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총 4차례 정도 '국가부도의 날'을 맞을 뻔했고, 그중 한 번은 진짜로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중에 2번의 위기를 박정희 정부 때 맞이했다. 정경유착이 너무 심해서 발생한 '1972년 8.3 사채 동결 조치'사태와 무리한 중공업 과잉투자와 차입경영, 그리고 오일쇼크 파동으로 1979년 2분기 0% 경제성장률, 3분기, 4분기에는 연달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마침내 1980년 -2.1% 경제성장률로 크게 후퇴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수출 중심 정책을 더욱 강화했는데 2015년 성장률이 급전직하하고, 1인당 GDP도 역조현상(=국민소득 감소)을 보였었다. 


그중에서도 '8.3 사채 동결 조치' 《마약왕》의 시대상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8.3 사채 동결 조치'는 국민들이 저축할 여력이 없으니 은행보다는 사채에 의존했고, 당시 재계 1위인 현대그룹이 부도를 걱정할 만큼 기업들은 암시장의 사채를 끌어 쓰다가 안되니까 정부와 여당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박정희 정권은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승인했다. 이로 인해 70년대 한강의 기적과 중화학공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졸부들을 오늘날 우리는 '재벌'이라 부른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업적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고 우민호 감독은 확실히 주장한다. '수출'을 명분으로 재벌들은 출처를 못 밝히는 돈을 굴렸던 것처럼 이두삼같은 범죄자도 “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면 그게 바로 애국 인기라!”라고 애국자 행세를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정권의 비호 덕분이다. 이처럼 이두삼(송강호)의 일대기는 바로 당시 재벌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단적으로, 주인공 이두삼은 마약을 팔아서 수출역꾼이 되고, “이 나라는 내가 먹여 살렸다 아이가” 라며 대통령 훈장을 받는 대목에서 이병철, 김우중, 정주영이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때 슈베르트의 '마왕'와 도니제티의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이 울려 퍼지는 것은 음악을 직설적으로 쓰는 에드가 라이트스러웠고, 한껏 기세를 올릴 때 Jigsaw의 Sky High가 울려 퍼지는 건 마틴 스콜세지가 자주 쓰는 음악활용방식이였다. 특히 마약 흡입하고 헤롱될 때 신중현이 만든 사이키델릭 김정미의 '바람'은 감독의 노림수이다. '사이키델릭'이란 장르 자체가 마약에 취한 환각적인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재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물음은 "왜 마약인가?"로 향한다. 당시 '한강의 기적'이라는 국가주의 뽕에 취해있었지만, 내실은 썩어있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72년과 79-80년 경제위기가 찾아왔었고, 전태일의 분신자살, YH 사건, 구로공단 농지 강탈 사건, 광주대단지 사건 등 노동착취와 박영복 금융사기 사건, 율산그룹 부도사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대학 재단 비리와 입시부정, 사카린 밀수사건 같은 부정부패가 판을 쳤었다. 그리고, 수출지상주의의 반대급부인 내수에 대한 경시 풍조는 대외의존도를 심화시켰다. 이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을 좀먹는 적폐가 여기서 출발했다. 후반부 김인구(조정석) 검사가 이두삼(송강호)을 향해 “이제 그만 깨어납시다”라는 대사는 '성과지상주의'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는 음원조작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차트 1위만 찍으면 행사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2018년 오늘날 모습과 똑같다.


반면에,《스카페이스》를 오마주한 후반부는 급작스럽게 진행된다. 그런데 저택 장면이 종결된 후, 송강호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해 사족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영화의 리듬이 좋지 못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화면 장악력을 가진 송강호에게 포커스를 몰아주는 것은 좋으나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 마약왕의 일에 동참한 순진한 사촌동생 이두환(김대명), 남편의 행보를 예민하게 지켜보는 조강지처 성숙경(김소진), 수출 활로를 열어준 조직 성강파 보스 조성강(조우진) 등 괜찮은 연기를 해준 조연들을 죄다 묻혔다.


이렇게 된 이유는《마약왕》의 블랙코미디와 갱스터 장르 모두 우민호는《내부자들》처럼 '분노'를 동력으로 삼은 것이다.《내부자들》는 막장드라마처럼 복수극인지라 감정적인 연출이 과잉일지언정 적어도 지루하진 않았다. 그러나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과 논리가 부족해서 송강호의 고군분투만으로 영화의 빈틈을 메울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무간도》에서 양조위가 죽은 것은 중국에 협조하는 홍콩인을 은유한 동료 경찰이었다.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가 암살당한 것은 '마약'이라는 시대의 변화를 거부한 탓이다. 감독의 주제가 확 와닿지 않은 건, 이두삼(송강호)이 몰락시키는 과정을 너무 안일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성상 딱 하나 좋았던 점은 이두삼(송강호)이 걸어간 흥망성쇠를 박정희 정권과 결부시킨 것이다.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범죄를 저지르는 마약왕이나 '국가발전'이란 미명 아래 심지어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가 왠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둘 다 몰락하는 과정이 매우 유사해서 놀랐다. 그래서 성숙경(김소진)을 주목해보자. 어떤 실존인물이 떠오를 것이다. 힌트는 두 번째 부인이며, 충북 태생이다.



★☆  (1.5/5.0)


Good : 적폐는 어디서 왔는가? 

Caution : 상상력과 통찰력의 결여


●실질적인 우리나라 경제위기는 72년, 79년, 97년, 2008년이다.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 관서 쪽 야쿠자와 거래를 튼 걸로 봐서 이황순 사건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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