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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l 10. 2023

한국 영화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될까?

한국 영화감독 중에 세계 시장에 통할 수준의 필름 메이커는 딱 5명이다.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정도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요즘엔 나홍진, 최동훈, 윤종빈, 류승완 같은 감독이 왜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5 : 경험재(Experience Goods)적 특성

‘영화’라는 상품은 극장에서 직접 소비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제품이 우수한지를 아무도 모른다. 생산자가 갖고 있는 영화의 품질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수요에 일치한다는 보장도 없다. 퀄리티와 무관하게 관객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소비를 결정하는 의사결정이 취향의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문화상품이 그러하듯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소비 경향이 현저히 낮아진다. 쉽게 말해 극장에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TV나 휴대폰으로 보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굳이 극장을 찾을 만한 작품이 아닌 이상 그 가격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오지 않게 되었다. 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처럼 관객 스스로 극장에서 관람할 이유가 없다면 말이다.





#4 : 극장산업에서 손을 떼려는 재벌들

2020년 8월쯤 CGV, 롯데, 메가박스 모두 신용위기에 봉착했고 청산이나 매각설이 대두되었다. 메가박스를 소유한 중앙일보는 상장시키겠다고 2020년 11월 12일에 발표했으나 지금껏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올해 6월 20일 CJ그룹은 자회사인 CGV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주주 배정 방식으로 5700억 원을 유상증자한다고 한다. 대주주인 CJ그룹의 지분율 48.5%를 고려하면 2700억 원을 책임져야 하지만 CJ 측은 600억 원만 현금출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결국 주주의 몫으로 떠넘긴 셈이다. CGV는 후속 유상증자 4500억 원으로 평가되는 CJ 올리브네트워크 지분 100%를 현금출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제가 위기이니) 자사의 현금 투입은 회피하면서 (현물출자를 통해) 대주주의 지위는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왜 이리 유상증자가 많은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재벌들이 유상증자를 하는 이유는 자사의 현금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주주의) 자금을 끌어오는 목적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자비용이 발생하고, 지금 같은 부채 규모로는 추가 대출받기도 힘드니까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일반 주주에게서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다. 왜 주주들은 반발할까? CGV의 총 발행 주식 수 4772만 여주인데 반해 이번에 새로 발행 예정인 주식 수는 7470만 주로 기존 발행주식 수의 1.5 배이다. 이렇게 주식을 마구 찍어내면 주주 가치는 그만큼 하락한다. 그 손실은.......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를 보시면 돼요.




#3: 영화관 = 영화산업 = 부동산업

상영관 몰아주기의 행태

우리나라 극장산업은 CGV, 롯데, 메가박스가 약 97%를 차지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점유하는 거대 자본이 제작·배급까지 도맡고 있다. 제한적 상영(limited release)과 2차 시장이 발달되지 못한 상황에서 극장 수입이 박스오피스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제작·배급·상영관을 독차지한 입장에서 자사의 영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배급관을 최대한 잡아서 동시 개봉하는 대규모 광역 상영을 노릴 것이다. 


개봉 1-2주 내에 반응 안 좋으면 자사의 다른 작품을 밀어주면 되기 때문에 퀄리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에 대한 대우를 해줄 유인이 없다. 또 <우리들>, <벌새>, <똥파리> 같은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독립영화들의 국내 관람 수가 처참한 까닭이다. 


미국은 독점 조항으로 제작과 배급, 극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제한적 상영(limited release)으로 <기생충> 같은 외국어 영화나 독립영화라도 반응이 좋으면 얼마든지 상영관을 점진적으로 늘려 손익분기점 이상의 수익을 기록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 영화는 한국인처럼 개천 용이 원천 봉쇄되어 있다.





#2 : 문제는 경제야!! OTT에 떨어지는 가격경쟁력

영화 1편 보는 관람료 수준에서 OTT를 1달 동안 이용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에 우리나라 극장산업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경기가 지금처럼 침체하면 엥겔지수(식비/총소득)가 높아진다. 영화티켓 가격은 (소비에 있어서) 부동산 비용, 세금 등 생계비에 비하면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번 정부 들어서서 직장인의 점심값이 1만 원을 훌쩍 넘었다. 국제 원유 가격과 밀가루 가격이 안정화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기·가스 요금이 올린 덕분에 체감물가가 상당하다. 또한 경총이 내년 임금 동결을 선언한 이상 앞으로도 소득이 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문화비 지출을 줄이는 것이 소비자로써 합리적이다. 


<범죄 도시 3>처럼 대중들이 찾아서 보는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할 여력이 있다. 가격 인상을 주도한 CJ CGV는 2018년부터 5년 연속 순손실을 내면서 부채비율이 올해 1분기 기준 912%까지 뛰었다. CGV는 무리한 해외 진출로 인한 손실 (이익 잉여금 적자 규모 1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제작하지 못한 공급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영실패를 왜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1 : 극장에 볼만한 영화가 왜 없을까? 창작자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영화제작의 출발점은 시나리오에 있다. 첫째, 우리나라는 대단히 특이하게 감독들이 각본을 쓰는 경우가 많다. 둘째, 웹툰 각색을 제외하면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비율이 대단히 높다.


셋째, 시나리오 마켓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한다 치더라도 투자자와 제작사, 감독을 모두 만족시켜야만 제작에 들어가므로 대략 2-10년 가까이 딜레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작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하거나 드라마· OTT 작가로 전업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영화 전문 시나리오 작가’는 국내에 거의 멸종 단계에 희귀종이다. 각본가부터 전문가를 육성하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어떻게 양질의 영화가 태어나겠는가? 안 그런가 말이다. 각본가와 창작자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단기간에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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