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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Sep 20. 2023

거미집*영화란 무엇인가

《Cobweb·2023》

1. 오늘날 중국영화계를 닮은 1970년대

김지운 감독은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197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감독들(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하길종 등)은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고민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신연식 감독이 각본을 쓴 《거미집》은 필름메이커들이 보다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억압적인 검열 규칙을 헤쳐 나가야 했던 한국 영화의 한 시대에 경의를 표한다. 서슬 퍼런 시나리오 검열과 반공영화 같은 관제영화가 배급되는 모습은 오늘날 중국영화를 떠올리면 이 시절과 매우 흡사하다. 시민과 학생들이 독재자를 끌어내린 1960년대 한국영화는 ‘코리안 뉴웨이브’를 맞이하면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1970년대 10월 유신을 기점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검열되는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급속히 퇴조한다. 1980년대 3S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정부 차원의 시장 왜곡으로 더욱 암흑의 시기로 빠져들었다.


2. 액자식 구성과 미학적 재현

김기영에 대한 오마주

문화공보부 주사가 감시하는 가운데 ‘김열(송강호)’ 감독이 영화의 결말을 바꾸려는 제작사 신성필림의 스튜디오를 향수어린 빛바랜 색감의 컬러 화면으로 촬영했다. 극 중간부터는 영화 속 영화인 〈거미집〉은 누아르풍 흑백화면이 교차 편집되어 흥미를 돋운다.


관객은 김 감독이 만들고 있는 영화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를 추측하도록 이끈다. 주인공들이 찍고 있는 극중극이자 치정극인 〈거미집〉은 막장드라마가 어디서 왔는지 그 연원을 알려준다. 김열 감독이 재촬영을 결심하는 대목은 페드리코 펠리니의 꿈과 환상을 섞는 기법을, 극중국 〈거미집〉은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과 김기영의 여성의 개인적 욕망을 통해 치정에서 스릴러로 전환되는 기법을 오마주한다. 또 7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문어체 대사를 후시녹음으로 처리했고, 연극적인 연기를 과장되게 연출되어 있다.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소 복잡하지만 훨씬 더 재밌다. 제작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관을 고집하는 김 감독, 현장에 상주하는 문공부 직원의 검열, 바뀐 대본을 이해는커녕 억지로 끌려온 배우들의 비협조적 태도, '별들의 고향' 촬영을 위해 비워줘야 하는 세트장 등 수많은 골칫거리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 소동극에서 송강호, 오정세, 임수정, 전여빈, 정수정 등 배우들이 웃음을 이끌어내려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정이진 미술 감독과 김지용 촬영감독이 힘을 보태서 영화의 품격을 끌어올렸다.



3. 영화란 무엇인가? 

김지운 감독은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영화’에 대해 재정의하고, 그 의미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거미집〉이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제2, 제3의 르네상스가 올 수 있을지, 새로운 영화는 무엇인지 등을 고민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담겼다”고 말했다.


연출의도를 봤을 때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 앞과 뒷이야기를 굳이 돌림노래처럼 부를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 김지운 감독은 주인공 김열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똑같은 필름메이커로써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든 영화판에서 작가주의를 관찰시키려는 뚝심 혹은 고집을 예찬한다. 송강호도 영화예술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는 우직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장황하고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강조한 것은 좀 과했다. 중반 이후 편집을 좀 더 타이트하게 가져가거나 후반부에 새로운 통찰을 더했어야 했다. 


둘째, 영화를 다루는 영화 즉 메타영화답게 오늘날의 위기를 좀 더 반영했다면 더 많은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싶다. 1970년대 검열과 반공 관제영화와 현재 극장의 위기는 발생원인이 다르다. 당시는 종신독재를 위해 언론과 문화예술을 탄압했지만 지금은 재벌의 수직계열화로 영화판이 획일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상영관과 배급사, 제작사가 동일한 계열사라서 창작의 자유가 억압당한 것이다. 제작자인 ‘백 회장 (장영남)’은 재촬영에 반대하지만, CFO(재정담당)인 ‘신미도 (전여빈)’이 숙모의 반대에 맞서 김감독이 걸작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무조건 그를 지지하는 대목에서 그러하다. 


총평하자면, 김지운 감독답게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하다. 다만 코미디 영화라면 좀 더 망가졌어도 좋았을 것 같다. 만약 산업적 위기를 다루려면 좀 더 간결하고 냉철한 메시지를 던졌어야 했다고 본다.재촬영에 스태프의 불만을 더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A.I.가 대두되면서 영화인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OTT에 대해 우리나라 영화배우나 감독, 스태프, 작가들은 할리우드처럼 파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노조라면 치를 떠는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노동을 용이하게 대체할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현상황을 반영한 비판을 담았다면 김지운 감독의 비전이 전달되었을 것 같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 (2.6/5.0) 


Good : 70년대 선배 감독에 대한 존경심

Caution : 풍자라고 하기엔 너무 점잖아요.


●〈거미집〉의 김열 감독이 故 김기영 감독을 모티프로 하여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유가족이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가 극적 합의를 이뤘다. 제작진은 김열 감독은 시대를 막론하고 감독 혹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가질 모습을 투영한 허구의 캐릭터라고 강조했고, 송강호 역시 '거미집'은 한국영화 현장에 대한 전체적인 오마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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