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ller·2023》노스포 후기 및 해석
‘살인청부업자’들은 영화 주인공으로 친숙한 직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을 만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이들을 만나는 순간 저승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 영화 속 킬러들은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로 의뢰받은 표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냉혈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연민, 동정심 혹은 모종의 음모에 빠져서) 암살에 실패하면서 조직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생활을 청산하려다가 윗선으로부터 제거대상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무기를 든 동기가 허무이건, 복수이건, 자기 방어이건 간에 대개 액션이 펼쳐지는 당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킬러》의 경우는 어떨까?
주인공인 ‘킬러(마이클 패스팬더)’는 맥도널드를 먹고, 무기를 조립(분해)하며 요가를 한다. 세상사에 초연한 주인공은 그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킬러인지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레이션으로 자신의 철칙, 경력, 가치관, 방법론을 강론한다. 그 내용은 굉장히 웃기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그는 사망률과 출생률 통계에 비유하며 자신의 범죄를 미화시킨다. 또는 야구를 예로 들며 자신의 업적을 히트맨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어야 여긴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쿨한 주인공의 자기 과시는 희미해지고, 그의 능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늘어간다. 그 내면의 수사학은 그의 무능력을 변론하지 못하고 궤변처럼 들린다.
마틴 스콜세지가 갱스터 장르의 웅장함을 말끔히 벗겨버렸듯이 핀처는 히트맨 신화의 화려함을 철거해 버린다. 감상 중에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핀처는 어느 시점부터 인물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핀처는 패스팬더의 망상과 행동에 ‘비극적 영웅의 신화’를 덧씌우지도 않고 그에게 ‘명예로운 행위’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핀처는 결정적인 국면마다 영웅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신화적 분위기를 부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과시에 사로잡힌 패스팬더의 발작에 가까운 행동을 매우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카메라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길 바란다. (살인청부업이 행해져서)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지켜보며 서서히 움직이던 카메라는 어느덧 먼 거리에서 사건 현장을 초연하게 지켜본다.
킬러는 도덕적 기준이 없는 세상을 탓하며 본인을 ‘냉혈한’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심리적인 위기에 겪는다. 사자성어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外華內賓(외화내빈)이 떠오른다. SNS에서 온갖 차별과 혐오를 내뱉으면서 오프라인에서 멀쩡한 척하는 현대인의 위선을 냉소적으로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특징을 조금 더 짚어보자!
《더 킬러》는 스콜세지의 성취만큼 이르진 못했지만, 핀처의 연출력은 경지에 이르렀다. 총 6개의 챕터마다 형식과 액션이 다 다르다. 느릿느릿 진행되는 것 같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형지물마저 스릴의 도구로 활용된다. 프랑스의 야경도, 플로리다의 모래바람도, 뉴욕 지하철의 소음도 모두 불길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더 만족스럽게 즐기려면 음악에 주목하길 권한다. 음악감독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전매특허인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부터 온갖 전자음악을 다 썼다. 긴장감을 높일 때 웅웅 거리는 신스베이스음에 집중하고 들으면 영화가 달리 보인다. 딥 포커스 기법을 음향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먼 소리(원음)와 가까운 소리(근음)의 배치가 꼼꼼할 뿐 아니라 이동할 때는 시시각각으로 반영해 놨다. 꼭 음향시설 좋은 곳 혹은 스피커 볼륨을 높여 놓고 감상하시길 권한다.
핀처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만큼 괜히 ‘스미스(The Smiths)’의 넘버를 쓴 것이 아니다. 스미스의 가사를 담당하고 있는 모리세이는 그 특유의 반골정신과 오스카 와일드를 연상시키는 지적인 노랫말이 일품이다. 자신의 처한 어려운 환경을 블랙코미디로 활용하는 스미스의 미학을 《더 킬러》의 정서를 읽는 열쇠가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누는 농담마저 시니컬하다. 가사가 아이러니하게 절묘하게 주인공의 처지를 비꼬고 있다. 좀 더 좋게 말하면 해설한다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스콜세지는 항상 리얼리티를 중시했다. 역사적 이벤트 혹은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이야기에 끌어왔다. 구체적인 사건에 기반했기에 관객이 몰입하기 쉽다.
반면, 핀처는 순수한 '미학'에 집착했다.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아이리쉬맨〉, 더 스미스, 장 피에르 멜빌, 브라이언 드 팔마, 폴 슈레이더,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존 포드의 〈수색자〉에게서 배운 기예를 재량껏 펼쳤다. 그렇기에 《더 킬러》는 장인이 만든 명품이지만, 추상적이고 공허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핀처가 12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인 만큼 그 이유는 있다. 단지 스콜세지의 정신을 본받아 장르가 구축한 오래된 석상을 파괴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폐허 속에서 쾌감이나 오락성이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형식미(장르성)'를 발굴하길 원했다. 당연히 그 진품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시청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 (4.3/5.0)
Good : 히트맨 신화의 종막
Caution : 쾌감이 제거된 미학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제백석(斉白石)’은 “나를 닮은 자는 살고, 나를 모방한 자는 죽는다(似我者生 象我者死)”라는 말을 남겼다. 스승의 가르침에서 한 걸음 나아간 사람은 대성하지만, 답습에 머문다면 크게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춰볼 때 핀처는 전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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