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할 때 정보를 최대한 모르고 보시길 권해드리는 마음에서 줄거리는 멸종시켰으니 안심하고 읽으시길 바란다.
학교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 아이들과 투명한 관점과 어른들의 엇갈린 시선을 다룬 가족드라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카모토 유지 각본,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을 뭉쳐 올해 칸영화제에서 극본상을 받았다. 이 3명의 거장은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굉장히 우아하고 거시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회비판이라고 해서 절망을 다룰 것 같지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괴물을 낳은 사회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이와무라 쇼헤이, 오다 에이치로, 고바야시 마사키, 이치가와 곤, 고샤 히데오, 데시가하라 히로시, 토미노 요시유키,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신카이 마코토 같은 예술가들이 일본의 부조리를 작품에 담곤 했지만, 고레에다는 일상성을 숭고하게 다룬다. 우리 곁에 접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 불합리의 운동성과 부조리의 특수성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이를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다각도에서 취재한다. 그러면서도 따스함을 잊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가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협동’이라고 했다. 생전부지의 사이에도 혈연, 종교나 이념, 지연, 학연 등으로 인해 서로 협조하고 조직을 이룬다. 〈괴물〉은 학교에서 벌어진 아이들 간의 갈등이 어떻게 은폐되고 음지화되는지를 관찰한다. 어른들의 잣대, 학교 측의 규칙, 일본 사회의 제도 속에서 외면받은 약자들은 ‘괴물’이라고 엉뚱하게 오해를 받는다. 어른들이 별생각 없이 뱉은 말에 소수자(혹은 약자)들은 조금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당한다. 어른, 학교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일어 초등학생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일반적인 ‘보통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친다. 사회적 압박에 아이들은 자학하고 위악에 동참한다. 즉 어른, 학교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라는 거대한 패거리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다수의 논리에 순응하고 개인의 인격은 언제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논리로 합리화되는 것을 빗대고 있다.
나만 잘 먹고살면 된다
일본 속담에 ‘出る 杭は 打たれる(튀어나온 말뚝은 두들겨 맞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은 일본식 집단주의를 함축하고 있다. 즉 영화 속 괴물은 ‘모난 돌(튀어나온 말뚝)’이다. 이지메는 일본 정치문화에서 출발했다. 일본식 분할통치 (Divide and rule)은 피지배층을 분열시키거나 서로 적대하게 만들어 통치를 용이하게 한다.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메이지 유신으로, 그 이전에 본인의 거주지를 ‘쿠니(國)’라 부르며 독립된 개체로 권력자를 상대해야 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일본인의 특성은 자기 지역 영주는 알았지만, 텐노를 모를 정도로 일본이라는 사회는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옅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강한 지역성과 연고의식은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 형성된 것이다. 지역이권과 밀착해 있는 자민당이 일당 독재가 가능한 연유와도 일맥 상통한다. ‘일본인은 누구인가?’ ‘텐노를 신성시하는 일본인의 의식’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겠지만, 한국과도 관련이 있다.
일제가 우리에게 남긴 ‘나만 잘 먹고살면 된다.’는 일본식 분할통치가 전래된 결과다. 우리나라의 정겨운 ‘우리주의’를 사분오열시켜 놓았다. 우리나라는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쳐도 의병을 조직하고 외적에 항거하던 저항정신과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정(精)’의 한민족을 특정 집단에 의해 ‘반공’과 ‘지역’, 학벌‘, ’ 성별’로 갈등 공화국화 시켜놓았는지를 돌이켜볼 때 영화는 짙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 (4.5/5.0)
Good : 다름이 틀림이 되는 사회가 괴물을 낳는다.
Caution : 일제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주의에 대해 보충설명하자만 이런 것이다. 엄빠도 내 아빠, 내 엄마가 아니라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고레에다 감독은 누구도 사카모토 음악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거절당하면 영화의 근본적인 발상부터 바꿔야 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사카모토는 작품 제안을 수락했고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음악을 완성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