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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13. 2023

2023 올해의 앨범 TOP 50

Best Albums Of 2023

요즘 같은 난세에는 음악은 탈출구나 위안을 줄 수 있다. 여성 아티스트(걸그룹 포함)의 약진과 관록의 노장들의 귀환, 50주년을 맞은 힙합의 상대적 침체가 돋보였다. UK개러지 열풍이 이어졌고, 그 바람을 타고 저지 클럽, 드럼 앤 베이스, 테크노, 트랜스가 부활했고, 아마피아노 같은 아프리카 신생 장르도 소개되었다. 동시에 동시에 Y2K 음악(R&B와 뉴메탈)을 그리워하는 레트로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컨트리와 포크, 루츠 음악 등 미국 백인 음악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이 글을 약 8시간 반 동안 쓰면서 올해의 음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024년엔 어떤 음악을 만날 수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50 : 키스 오브 라이프 《Kiss Of Life EP》

아이브, (여자) 아이들, 르세라핌, 에스파, 뉴진스 등 걸그룹 춘추전국시대에 야심 찬 작품을 만났다. 중소돌인 키스 오브 라이프는 멤버 전원 솔로곡과 전곡 뮤직비디오 전략을 꺼내든다. 이해인 프로듀서는 90-00년대 흑인음악에 기반한 일관된 컨셉을 가져가며 EP를 완성했다. 거대 자본이 없더라도 확고한 주제 의식 아래 빌보드 저격하는 U.S. POP으로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다. 




#49 : RM, 《Indigo

상업적 흥행과 음악적 성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김남준은 자신의 고뇌와 사색, 철학을 담은 가사에 맞게 음반을 제작하고, 피처링 아티스트를 기용하고, 대중의 기호를 고려한다. 모든 것이 김남준이, 김남준의, 김남준에 의한 세계관으로 통합되어 있다. 명확한 컨셉 때문에 팬들도 받아들이기 쉽다.




#48 : 앙드레3000(André 3000), 《New Blue Sun》 

앙드레 3000은 관악기에 대한 명상록을 첫 솔로 앨범으로 발표한다. 평화로운 바람 소리와 영혼을 울리는 느낌표들이 자기 치유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New Blue Sun》은 경쟁 사회에 지친 도시인에게 음악적 힐링이라는 데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47 : 박재정, 《Alone

기획사가 아티스트를 통제하는 국내 시장에서 본인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가운데 박재정은 〈헤어지자 말해요〉로 히트곡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10년 만에 발매하는 데뷔 앨범은 무명의 설움을 피아노에 의탁해 표현한다. 재즈라는 이상향을 향한 그의 집념은 숱한 고통을 통해서만 추출할 수 있는 소리들로 진정성 있게 들리며 듣는 이의 마음을 열어젖힌다. 




#46 : 보이 지니어스(Boygenius), 《The Record

미국 인디계에 잘 나가는 줄리엔 베이커, 피비 브리저스, 루시 다커스가 뭉쳐 슈퍼 그룹을 결성한다. 법인을 권리주체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논쟁처럼 밴드 역시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렇기 위해 세 명의 음악적 재능은 상호 헌신을 감행하며 그 희생의 대가로 인해 록의 가부장제를 허무는 쾌거로 이어진다.



#45 : 슬레이터(Slayyyter), 《Starfucker

소피아 쿠르테시스(Sofia Kourtesis)의 〈Madres〉와 더불어 올해 강렬한 하우스 파티를 개최한다. 레이디 가가 시절의 2000년대 일렉트로닉 댄스는 음악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을 강의한다. 시시때때로 얽어매는 감정의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하우스 루프, 경쾌한 보컬의 날 숨, 하이퍼 팝의 예상치 못한 습격까지 이 모든 것이 개인적 위로와 카타르시스로 집결한다. 난잡하면서도 정돈된 텍스트가 그녀의 재능을 의심치 못하게 한다.





#44 :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 《Fuse》 

트레이시 손과 벤 와트가 쌍둥이의 부모가 된 후 2000년부터 삐거덕거렸다. 밴드 활동과 가족의 의무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한다. 그 기간 동안 밴드의 음악적 문제점을 분석했다는 점이다. 가사를 보완하고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했다. 24년 만에 그때 그 시절의 담백하고 우아한 댄스 팝 음악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그런 기분을 들게 한다.



#43 : 이센스, 《저금통

모든 국힙 MC들은 쇼미더머니가 국힙의 정체성은 아니지 않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 이센트는 그 대답뿐 아니라 통일성, 주제의식, 스토리텔링, 철학적 가사 대신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한다. 특히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Hukky Shibaseki)’를 기용한 것은 신의 한 수다. 랩 스킬이야 국내에서 적수가 없지 않은가! 국힙의 최대 난점인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민을 오로지 실력으로 정면 돌파한다.



#42 : 파라모어(Paramore), 《This Is Why》 

예술가는 어쩌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헤일리 윌리엄스, 테일러 요크, 잭 패로의 포스트 펑크의 찬가에는 30대가 느끼는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자기 파괴 속에서 채굴한 감정을 담은 가사와 매혹적인 멜로디로 실존적 위기를 파티로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41 :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최근 영화들이 3시간에 육박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트리밍으로 재편된 음악시장도 그런 추세다. 어쨌든 38살의 싱어송라이터가 노화를 받아들이며 음악도 와인처럼 숙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하는 모든 일이 설령 무의미할지언정 누군가에 잊히고 싶지 않은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많은 매체에서 이 앨범을 올해의 음반으로 꼽는 것이기도 하다. 


78분짜리 9집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가 참여했다. 이 세 명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국 백인들의 불안을 반영된 음악을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에 패권을 위협받고 달러 발행이 과다한지라 금융 불안에 시달린다. 더욱이 히스패닉 인구의 증대로 반이민자 정서가 득세하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라틴 팝, K 팝, 아프로 팝의 유행 속에서 전통적인 컨트리와 포크에 기반한 미국적인 음악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 것이다.




#40 : 킬러 마이크 (Killer Mike), 《Michael》 

데뷔 후 11년만 솔로 앨범을 발매한 까닭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그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개신교와 페미니즘, 민권 운동에 의지한다. 가스펠 음악이 랩에 서정성을 부여하고, 흑인 여성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갔던 고난과 역경을 재조명한다. 고해성사 같은 반성과 회개가 주를 이루고 있어 메시지가 전혀 교조적이지 않다. 동시에 마이클 산티아고 렌더가 어떤 사람인지도 함께 들려준다.




#37 : 크러쉬 《wonderego

기획사에 의해 레코딩 작업이 진행되는 우리나라 여건상 이런 작가의 내면에서 치열한 실존주의가 존재하는 음반은 희소하고 소중하다. 58분 내내 ‘신효섭’이라는 행성이 어떤 곳인지 소개한다. 그가 느끼는 감정이 알록달록하게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가사 곳곳에 알콩달콩한 애틋함이 묻어나고 제대 이후 예비역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의 혼란함이 반영되어 있다. 


원가절감 때문에 EP 즉 미니앨범이라는 일본식 용어가 판치는 우리 음악계에 19곡짜리 정규 앨범(LP)이라 더욱 희소성이 높다.




#38 : 롤링스톤즈 (The Rolling Stones), 《Hackney Diamonds

18년 만에 발표한 신작은 드러머 찰리 와츠가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완성되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전설답게 첫 싱글 〈Angry〉부터 현 세태를 정확히 진단한다. 1962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R&B에 대한 일편단심을 굳건히 한다. 특히 80대 할아버지들이 여전히 활기차고 응집력 있는 음반을 내놓다니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39 : 빈지노(Beenzino) 《NOWITZKI

기존의 앨범과는 다르게 주제도 미학도 일관되지 않다. 기존 프로듀서진과 결별하고 송 캠프에 모인 곡을 선택한 것 역시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아티스트의 의지일 것이다. 결혼 후 유부남이 된 30대 청년은 삶에서는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건설하면서 음악은 구애받지 않을 자유를 추구한다. 아티스트 본연의 감각을 산만하지 않게 구성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36 : 레이(Raye), 《My 21st Century Blues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는 말이 있다. 소속사와 불공정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비욘세, 리틀 믹스, 찰리 XCX 등에게 곡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던 실존적 위기를 고백한다.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균형 감각이 선보여 차세대 슈퍼스타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했다.





#35 : 칼리 우치스 (Kali Uchis), 《Red Moon In Venus

15개의 트랙이 순삭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 강렬한 흡입력은 어디서 비롯될까? 에로티시즘을 위해 꼭 19금의 자극에 매진할 필요는 없다. 콜롬비아계 미국인답게 영어 후렴구에 스페인어 버스(verse)를 집어넣는 기발한 착상 아래 훨씬 미국적인 음악으로 선회한다. Bad Girl 기믹과 엉덩이 흔들기 같은 자극에만 의존하지 않고 음악 그 본질에 집중한 ‘듣는 맛’에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34 : 블론즈쉘(Blondshell), 《Blondshell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90년대를 방문했지만, 사브리나 테이텔바움만큼 당시를 그럴싸하게 재현한 이도 드물다. 그녀는 얼터너티브 록이 가진 분노에 여러 가지 색깔을 입힌다. 감정적인 폭발부터 여성적인 저항 의식까지 봉준호 감독처럼 디테일하게 당신의 감정을 황폐화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한다.




#33 : 레이베이(Laufey), 《Bewitched》 

재즈가 낡고 어렵다고요? 그런 분들을 위한 듣기 편한 입문서가 여기 있다. 중국계 아이슬란드인 인 레이베이는 화려하고 대중적이며 섬세한 두 번째 앨범은 내놓았다. 굉장히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며, 팝과 보사노바를 가미한 소리 밀도와 채도가 높은 재즈를 들려준다. Z세대의 재즈는 성찰과 절제의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32 : 코린 베일리 래(Corrine Bailey Rae), 《Black Rainbows》 

서정적인 재즈와 부드러운 R&B 가수가 개러지 록을 선회한다. 흑인 문화의 사회정치성과 낭만적인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썼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다. 처음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대본을 집필했고, 그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31 : 그리트(Miss Grit), 《Follow The Cyborg

한국계 미국인 ‘마거릿 손(Margaret Sohn)’의 데뷔작은 챗 GPT로 예고된 A.I. 혁명에 대한 심층적인 보고서다. 그녀가 직접 연주한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기계음 사이에서 온기를 불어넣는다. 인간과 기계 더 나아가 포스트 휴먼 시대로 옮겨가는 세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30 : 저드(jerd), 《Bomm

정소연의 음반은 특별하다. 둔탁한 붐 뱀 비트에 실린 얼터너티브 R&B 사운드에서 청춘의 고뇌가 흘러나온다. 날 것 그대로의 불안한 영혼이 쓴 일기장이 랩처럼 들려온다. 2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감정이 솟아난다. 복합장르 영화랄까? 트랙(반주) 위에 여러 장르를 혼합한 샘플 소스를 여럿 등장시킨다. 보컬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상이한 사운드임에도 일관된 무드를 유지하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예술가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통해 의도를 알리는 것이 뮤지션의 책무라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29 :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 《Heaven Knows》 

UK 개러지는 2020년대 음악 동향을 읽는 지표가 되었다. 그 흐름에 편승해 틱톡 스타에 올랐지만 궁극적으로 아티스트로 나아가려는 목표 의식 또한 잃지 않았다. 내 음악을 하려는 고민과 의지, 그것을 드러내되 과하지 않게 선을 넘지 않는 냉철한 판단까지 생각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28 : 슬로우다이브(Slowdive), 《Everything Is Alive

30년 동안 쌓여온 경험치는 고렙의 피, 땀, 눈물의 절정의 크레셴도다. 슬로우다이브가 재결합 후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은 그들이 왜 드림 팝 장르의 거장인지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몽환적인’인 형용사가 품고 있는 함의를 청각적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들 특유의 리버브가 가득한 기타와 나른한 신시사이저, 퍼지 디스토션 페달이 우려낸 진한 육수를 맛보길 바란다. 


 


#27 : 잭 브라이언(Zach Bryan), 《Zach Bryan

올해 상반기 컨트리 열풍은 기득권층인 백인들의 두려움의 결과다. PC 음악에 대한 보수 반동 흐름 속에서 우리는 걸작을 목도하게 된다. 16곡 중 듀엣 가수와 함께 쓴 3곡을 빼고 나머지를 27살의 노동자가 혼자서 뚝딱 만들었다. 이보다 더 간결할 수 없는 편곡, 진솔한 노랫말, 보컬학원에서 절대 가르칠 수 없는 독학으로 터득한 정직한 보컬까지 음반은 가슴을 울리는 ‘호소력’이라는 희귀템을 획득하게 된다.





#26 : 영 파더스 (Young Fathers), 《Heavy Heavy

이들은 몸을 들썩이게 하는 그루브의 달인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춤을 춘다. 이때 음악은 필수 요소다. 이들이 혼합하는 칵테일은 겸손한 광기와 순수한 즐거움이 녹아 있다. 《Heavy Heavy》가 어떻게 소울, 포스트 펑크, 힙합을 배합하는지 몰라도 된다. 낙관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그루브 축제가 여기 마련되어 있다. 




#25 : 아마래(Amaarae), 《Fountain Baby

음악이 굉장히 관능적이다. 가나계 미국인인 아마래는 정복왕으로 아프로 팝의 영토를 크게 넓힌다. 팀발랜드와 넵튠스 스타일의 클럽음악, 펑크록, 플라멩코 등 남미 춤곡, 일본 포크 음악까지 포용한다. 일종의 플랫폼처럼 이물감 없이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공존하는 미래를 꿈꾸게 한다. 아니 실현했다가 더 옳은 표현인 것 같다.





#24 : 100 겍스(100 Gecs), 《10,000 gecs

하이퍼 팝은 문화적 콜라주 같은 것이다. 2집은 사리를 추가 주문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의 뉴 메탈과 스카펑크, 이모 코어를 더 밝고, 더 시끄럽고, 더 매끄럽게 자기 스타일로 소화하면서 근사한 퓨전 요리를 대접한다. 그 파괴적인 불협화음을 한데 녹여낸 창의적인 연금술에서 미래의 예언을 찾을 수 있다.





#23 : 피버 레이(Fever Ray), 《Radical Romantics

이번에는 현실 남매가 만든 앨범을 만나보자! 스웨덴 출신의 카린 드라이어는 남동생 올로프와 함께 인간관계에 대한 성명서를 작성한다. 


차가운 기계음은 인간 간의 교류와 소통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성, 친구, 가족과의 갈등을 신스 프레이즈에 담으며 집착, 따돌림, 서운함, 그리고 애착 같은 욕망을 멜로디의 원천으로 삼았다.





#22 : 이승윤, 《꿈의 거처

푸 파이터즈, 퀸스 오브 스톤 에이지의 앨범도 좋지만 우리 록 음반을 소개하고 싶었다. 싱어게인에서 “틀을 깨는 음악인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라는 포부가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앨범 전체를 묶는 맥락이 없다고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노래 곳곳에 1집보다 더 풍성한 메타포와 완성도의 고민이 느껴진다. 이일우의 태평소가 가미된 〈야생마〉처럼 말이다.




#21 : 크리스틴과 퀸즈(Christine And The Queens), 《Paranoïa, Angels, True Love》 

프랑스 가수 크리스틴은 완벽한 무대 연출가이다. 코러스와 보컬로 나눠진 구어체 대사를 음향 편집을 통해 상호 연계되도록 시나리오를 짠다. 이 거대한 팝 오페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애시드 록과 일렉트로닉을 유혹하고, 마빈 게이와 파헬벨의 캐논에서 영감을 받은 대작이다. 드라마틱한 음반을 원한다면 주저 없이 들어보시길 바란다.




#20 : 파란 노을, 《After The Magic》 

독립 음악은 가난한 비주류라는 오명을 단숨에 씻어낸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이 앨범은 앞으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인디 뮤지션들은 이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허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만큼 《After The Magic》은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19 : 제이슨 이즈벨과 400 유닛(Jason Isbell & The 400 Unit), 《Weathervanes

작곡가로서 그는 현재 최고 반열에 올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닐 영이나 톰 패티가 반짝반짝이던 영광의 시대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든다. 앨범은 분노와 절망, 두려움에 떨고 있다. 노랫말의 등장인물들은 포스트 팬데믹, 펜타닐(오피오이드) 남용, 총기 난사 등에 시달리고 양극화에 절규하고 있다. 미국병을 노래하는 양심의 소리는 미국인에게 성찰과 위로의 시간을 함께한다.




#18 :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GUTS》 

서포모어 슬럼프를 잊어버리고 스무 살의 여가수는 반성문을 제출한다. 마리아나에 취해 봉에 부딪힌 일, 클럽에서 만취된 일, 항우울제 복용, 전 남친과 다시 사귀었던 일 등 타블로이드의 먹잇감이 충분한 스캔들을 유쾌한 팝 록으로 상큼하게 이실직고한다. 만약 우리나라 아이돌이라면 퇴출될 뿐 아니라, 그걸 노래의 주제로 삼는 파격은 국내에선 힘들 것 같다. 


 

#17 : 제시 웨어(Jessie Ware), 《That! Feels Good!

K-아이돌에게도 디스코의 부흥은 대세가 되었다. 제시 웨어의 다섯 번째 앨범은 디스코의 전통성에 수절한다. 디스코는 퀴어 흑인 공간에서 태어났고, 제시와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 스튜어트 프라이스는 이 자유분방한 정신에 충성한다. 


모두가 흥겹게 춤추자는 쾌락주의는 70년대 필라델피아 소울부터 라틴, 일렉, 아프로 비트까지 업데이트하며 당신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That! Feels Good!》은 봉사할 것이다.





#16 : 노네임(Noname), 《Sundial

훌륭한 래퍼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문학적 관점에서 노네임은 굉장히 냉정한 작가다. 운동가로서 사회구조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감정을 섞지 않는다.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로 분류하자면 직관(N)적이다. 네오 소울 스타일의 어쿠스틱 트랙 위에 문학적 비유와 풍부한 어휘, 사회학적 통찰이 곁들여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다시금 고민하도록 이끈다. 





#15 : 삼파 (Sampha), 《Lahai

예술은 자기 성찰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고통의 파도 아래서 이젠 아버지가 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딸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고 천체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의 엔트로피 강연을 보게 된다. 영감을 얻은 그의 상상력은 표현주의적 화폭으로 그린다. 인생의 순환을 어렵지도 쉽지도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중용의 자세로 채색했다. 


 



#14 : 이브 튜머(Yves Tumor), 《Praise A Lord Who Chews But Which Does Not Consume

아트록은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평가절하되기 쉽다. 이쪽 방면에서 이브 튜머는 과거의 어떤 특정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동시대의 음악과도 달리 들리고, 그렇다고 미래의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독창성이라는 낱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13 : 미츠키(Mitski), 《The Land Is Inhospitable And So Are We

흔한 베드 룸 팝 같은 음반은 장 뤽 고다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같다. 평범한 인상과 달리 치밀한 구성이 얼핏 아닌 것 같은 요소들이 실제로는 더 큰 함의를 품고 있음을 은연중에 퍼트린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힘듦은, 혹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는 그 반대편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말이다. 행복과 사랑에 대한 욕구를 강해지는 것에 대한 역설적인 해답이다. 


 70년대 소프트 록이 떠오르는 편안함은 전쟁 같은 하루를 지내는 현대인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한다.




#12 : 사카모토 류이치 《12》 

사카모토 류이치는 암 진단을 받고 좀 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12집이 발매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간이 반드시 겪게 되는 필멸을 담은 그의 마지막 작품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 낙관과 비관이 우아하게 빚어놓았다. 이 모든 것들이 감정적 무게를 더한다. 여담으로, 앨범 커버 아트는 한국의 예술가 이우환이 그렸다.




#11 : 켈렐라(Kelela), 《Raven

켈렐라는 "흑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댄스 음악에서 흑인 여성으로서 항상 느꼈던 고립감과 소외감"에서 《Raven》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즉 우리는 여럿이 함께 있음에도 종종 외롭다거나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거기서 출발한 댄스 음악은 앨범 표지처럼 정글의 그루브, 댄스홀 비트, R&B의 관능미가 앰비언트에 용해되어 유동성을 확보한다. 침실에서 혼자 있을 때나 다 같이 모여 파티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을 때나 《Raven》은 언제 어디에서나 위안을 안겨준다.


 


#10 : 예지, 《With A Hammer

이 음반은 미국 음악의 유산은 한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앰비언트, 재즈, 테크노가 섞인 신스팝이 굉장히 ‘예지’스럽다. 영감과 주제 그리고 균형을 맞추려는 그녀의 노력은 서양 음악에 한국적인 뉘앙스가 묻어나는 융합을 이뤄낸다. 청자의 예상을 깨는 신선한 서사가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즐겁다. 음악 곳곳에 팝 벵거 다운 흥겨움도 잊지 않아서 이질적인 장르가 충돌하는 흥미를 돋운다. 





#9 : 아노니와 존슨즈(ANOHNI & The Johnsons), 《My Back Was A Bridge For You To Cross

아노니는 13년 만에 밴드 존슨즈와 재결합하며 밴드명을 딴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마사 P. 존슨을 커버 사진으로 내세웠다. 아노니는 청자와 대화하듯이 차분히 억압과 차별은 이제 그만이라고 호소한다. 앨범은 그러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은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긍정한다. 격동의 시대일수록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 만이 멸종을 향해 전쟁과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류가 공존하는 길이라고 믿는 것 같다.





#8 : 블러(Blur), 《The Ballad Of Darren

50대의 데이먼 알반은 음악적 동료인 바비 워맥(기타), 토니 앨런(드럼)이 세상이 떠나보냈고, 20년간 함께 지냈던 파트너 수지 윈스탠리과도 헤어졌다. 그 허전함과 상처, 고독 속에서 멤버들과 함께 현재의 감정을 녹음한다. 달콤 씁쓸한 노래들은 개방적이다. 누구나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모두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그런 소속감을 공유한다.





#7 : 제이미 브랜치(jaimie branch), 《Fly or Die Fly Or Die Fly Or Die ((world war))》 

훌륭한 음악은 화성, 조성, 주법을 몰라도 마음을 움직인다. 트럼펫 연주자인 제이미 브랜치는 2022년 8월에 39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그녀는 드럼에 채트 테일러, 베이스에 제이슨 아제미안, 첼로와 건반에 레스터 세인트루이스 등과 함께 재즈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 놓았다. 


생의 마지막에서 불을 뿜는 트럼펫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뉴올리언스(재즈의 고향)부터 시카고(블루스의 집결지)를 횡단하며 무한하고 경이로운 여정을 되돌아보고 이 모든 것을 축복하고 경배한다. 순수한 희열과 의로운 분노가 그녀의 불꽃같은 생애와 맞물려 내적인 고뇌가 온전히 전달되기에 더욱 안타깝고 애석하다.


 



#6 : 빌리 우즈(billy woods) & 케니 시걸(Kenny Segal) 《Maps

〈케이트라나다(KAYTRANADA)와 아미네(Aminé)〉와 더불어 올해 최고의 콜라보 앨범이다. 뉴욕의 MC 빌리 우즈와 LA의 프로듀서 케니 시걸은 근사한 로드 무비를 제작한다. 팬데믹으로 강제 칩거한 그들이 느낀 바는 경유지와 장거리 여행, 새로운 음식과 이상한 풍경으로 가득한 45분짜리 여행기다. 마틴 스콜시지의 <특근> 같은 블랙코미디와 초현실주의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힙합 황금기를 소환하는 타임머신이 되었다.


 



#5 : 대니 브라운(Danny Brown) & 제이펙마피아(JPEGMAFIA), 《Scaring The Hoes

디트로이트 출신 대니 브라운과 장르 해체업자 제이펙 마피아가 뭉쳤다. 두 괴짜는 급진적이고 다소 엉뚱한 형태의 정치학을 탐구한다. 힙합을 기반으로 누가 권력을 쟁취할지 궁금하게 할 여러 장르를 해체하고 리빌딩한다. 비주류 래퍼들은 Z세대들이 꿈꾸는 신세계를 음악에 담았다. 종잡을 수 없이 중성자가 튀어나와 핵분열을 이루는 독특한 음악은 괴이하고 변칙적이고 중독적이라 당신을 매료시킬 것이다.





#4 : 웬즈데이(Wednesday), 《Rat Saw God

얼터너티브 컨트리를 통해 90년대 루저 감성을 복원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중소도시 애쉬빌에서 겪은 일을 르포르타주처럼 생생하게 옮긴다. 보컬리스트 칼리 하츠먼은 비극을 희극으로 위트 있게 승화시키는 유머감각으로 어필한다. 음악적으로도 슈게이징과 그런지, 컨트리를 오가며 앨범은 응집력 있게 끝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여 대도시 출신이 아님에도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3 : 캐럴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예술가에게 작품이 있다면 학자에게는 논문이 있다. 모두 자신이 관찰한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논리를 세상에 발표하는 것이다. 캐롤라인은 프로듀서 대니 엘 할과 함께 방대한 음악적 자신을 해석하고 이론을 정립해서 학회에 출석한다. 표현주의적인 만화경에 자신이 영향받은 음악들(마돈나, 윌리엄 오빗, 케이트 부시 등등)을 한데 모으고 직관적인 선율로 팬들을 설득한다. 그녀가 창조한 세계관에서 우리 모두 즐겁게 뛰어놀자고 노래한다.




#2 :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Javelin

올해 4월 사망한 남자친구에게 바치는 앨범은 〈인터스텔라〉처럼 슬픔과 고통의 블랙홀을 스윙 바이 하며 마음의 중력을 제어할 방정식을 찾아 나선다. 가변 역사와 불가변역사처럼 어떤 사건이 영향을 끼치는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스티븐슨’라는 낙관론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복잡한 심경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동안 절망을 이겨내는 포크 음악의 위대함을 만나볼 수 있는 진귀한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 : 강허달림, 《Love》 

마트나 편의점 가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뉴스 틀면 화병이 돋는다. 이러한 고난의 시기를 이겨낼 희망가를 찾는다면 이 앨범을 고르고 싶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애를 몸소 체험한 음악가는 그 벅찬 감동을 음표에 옮겨놓았다. 본래 흑인 노예들이 설움을 담은 이 장르는 묘하게 한국인의 애환을 달래 준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 속에 부동산 대출금 갚기도 벅찬 2023년 겨울밤에 《Love》의 편안하고 낙관적인 어조가 당신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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