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ot·2024》노 스포일러 후기
《설계자》의 주인공 영일(강동원)은 교묘하게 사고로 위장하여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다. 그의 팀원 재키(이미숙), 월천(영일), 점만(탕준상)이 그 설계대로 실행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마침내 착수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영일은 버스사고로 사망한 동료 짝눈(이종석) 을 죽게 한 사고가 '청소부'라고 불리는 거대 청부 조직의 짓이라고 의심한다.
〈감시자들(원작: 천사의 눈)〉처럼 밀키웨이 영화사에서 제작한 소이청 감독의 〈엑시던트〉가 원작이다. 〈엑시던트〉는 청부살인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강박적 불신에서 홍콩 사회의 불안과 현대인의 고독을 인상적으로 투영해냈다. 〈엑시던트〉는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의 〈컨버세이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에 영향을 받아 깊은 죄의식과 불안으로 왜곡된 시야를 가진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심리 스릴러이다.
《설계자》는 재벌과 검찰, 언론 등의 사회적 불안으로 판을 키웠다. 모든 사고는 조작될 수 있고, 의도가 있는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는 원작의 명제를 한국 사회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지루해진다. 원작을 거의 따라가지만,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장황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규모를 키운 만큼 관객이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중반부부터 유튜버 하우저 (이동휘)에게 설명조의 대사를 전담시켰다. 정경유착, 가짜뉴스에 대한 담론을 러닝타임 99분에 다룰 수 없다. 캐릭터들도 (물리적 한계로) 기능적으로 소모될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살인 계획 부분을 축약하는 바람에 인물들의 행동이 관객이 납득하기 힘들어졌다.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전개하기에 급급해진다.
원작인 〈엑시던트〉은 주인공의 단일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관객은 전체적인 자초지종을 알 수 없으며, 주인공이 부분적으로 보는 것을 보고 그가 듣는 것을 듣게 된다. 정보량을 제한했기에 미스터리가 발생하고 긴장을 유지한다. 그 미스터리가 온전히 주인공이 해석했기 때문에, 착오가 일어난다. 즉 단서를 오인한 것은 오래전 자기 탓에 살인이 벌어졌다는 깊은 죄책감 때문이다. 감독은 아내의 죽음을 대사나 플래시백으로 그 트라우마를 강조해서 납득이 간다.
반면에 《설계자》는 주인공의 독백과 주변 인물의 설명 대사로 양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강동원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데, 영화는 자꾸만 새로운 정보로 인해 혼선을 빚는다. 전부 이해하기도 전에 또 다른 정보와 용의자를 추가한다. 즉 원작은 인물 중심 서사였는데, 《설계자》는 사건 중심 서사다. 이런 방식은 인물의 심경 변화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사건을 너무 크게 벌려놓은 경우에 해당한다. 실제 《설계자》는 전반에 벌러 놓은 인물과 사건을 후반에는 수습하기 바쁘다. 강동원이 심리극을 장악하지 못하자 관객이 ‘영일’의 추리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후반에 주인공은 급작스럽게 입장을 바꾸고, 빌드업 없이 반전이 급발진한다.
정경언유착을 다룬다고 형사, 정치인, 사이버렉카, 보험전문가 전부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원작의 1인 심리극을 정치 스릴러로 각색하는 것은 좋으나 99분내에 다룰 수 있도록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원작의 아이디어를 왜 활용하지 않았는지 아쉽다. 〈엑시던트〉는 홍콩 특별행정구기를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이 겪는 트라우마가 홍콩인 모두가 짊어졌다고 은유한다. 또 〈컨버세이션〉에서 다루는 ‘도청’이라는 소재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 (2.0/5.0)
Good : 한국 사회의 불안을 진단하다.
Caution : 판을 키워도 너무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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