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를 읽고
한 작가의 훌륭한 데뷔작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소감인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뛰어난 게 데뷔작이라고? 완성형 작가인 건가?’ 그러다 바로 다음 순간 거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긴 이 정도로 강렬하니 눈에 띄었고, 이 작품으로 소설가가 될 수 있었겠구나.’
정세랑 작가 입문은 비교적 최근, <피프티 피플>로 했다. 맞는 표현인진 모르겠지만, 소설의 놀라운 구심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이야기 전체를 마음껏 가지고 노는 작가라니. 반전(反轉)을 싫어하는 독자가 있을까?(물론 있을 수 있다) 한 작품에서 반전이 차지하는 중요도나 역할에 대한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작품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허를 찌르는 반전 요소는 달콤하기 마련이다. 모든 소설에 스릴러나 서스펜스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갖게 된 독서 경험이 말해주지 않는가, 그게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정세랑은 그걸 다룰 줄 아는, 은근히 흔치 않은 소설가 중 한 명이다.
한국소설, 또는 전세계적인 소설의 흐름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는 훌륭한 분석가분들이 전문적으로 판단해주시겠지만, 전체적인 서사를 좀 더 중시하던 분위기에서 섬세한 표현들이나 작품 전반의 분위기 같은, 감각적인 요소들을 중요시하는 최근의 흐름이 있지 않았나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아무리 교훈이 있고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해도 재미라곤 일절 없는 소설이 잘 팔리기는 힘들다. 그리고 사람이 느끼는 ‘재미’라는 것은 대개 장면이 바뀌고 서사가 진행되고 무언가 등장하고 사라지고 변화하고 갈등하고 그럴 때 발생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재미보다는 구체적인 상황 설정과 감각적으로 그려진 작중 인물의 감정을 통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많이 사랑받았던 최근 우리 문단이었기에 어쩌면, 정세랑의 ‘재미있는’ 소설들은 다소 갑작스러우리만큼 다시금 사랑받고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의 주인공인 재화도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정세랑 역시 원래는 ‘장르소설’을 썼다고 한다. 문제는 ‘장르소설’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경계를 허물기 위한 어떤 이들의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장르소설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도 난 대기가 어렵고, 장르소설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묘한 비하적인 느낌도 영 찝찝하기만 하다. 아마 그 장르소설의 개념이 생겨나고 자리 잡고 한창 소비되던 시기에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거나 너무 어렸기 때문에 더욱 모호하기만 한 거겠지. 요즘 부쩍 이런 질문이 많아지는 것 같다. 소설가를 인정해주는 건 누구인가. 다른 소설가들? 독자들? 언론과 매체? ‘문단’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부터 누구까지인가. 최근엔 그 문단에 속한 이들 중 어느 한 명도 한국의 문단이라는 일종의 시스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 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타격 없이 건재한 저 문단이라는 것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
작품 얘기는 안 하고 (언제나처럼) 딴 얘기만 계속했네. 아무튼 이 작품이 퍽 재미있었다는 얘기다. 작품의 초반부 페이지들을 넘길 때는 괜히 ‘어, 내가 아는 정세랑 맞아? 왜 이렇게 가벼워?’라고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생각한 나였다. 그리고 중반부를 지나며 같지도 않은 판단을 지껄인 스스로를 반성했고, 뒷부분에서는 탄성을 내질렀다. 아.. 정세랑 슨생님.. 특히 마치 처음의 내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작가의 말에 써있던, ‘가벼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무게’라는 띵언 앞에서 나는 무릎마저 꿇을 뻔했다. 가벼움을 두려워하는 것. 요 근래 내가 깨닫고 있는 지금까지의 못난 내 모습을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을까.
‘덧니가 보고 싶어’라는 제목이 책을 반 이상 읽도록 이해가 안 간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그저 끝까지 읽으라. 기대는 필요 없고, 단지 궁금증만 간직해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나처럼, 그냥 조용히 곧장 정세랑의 다른 책을 찾게 될 거다. 지난달쯤이었나, 자주 가는 대형서점의 소설 베스트셀러 코너에 정세랑 작품만 여러 권이 함께 있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뒤늦게 그게 어떻게 된 일이었는지 온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정세랑 책 아직 다 안 읽은 내 소중한 뇌가 기특할 따름인데, 그 뇌 곧 잃게 될 예정이니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