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포터의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읽고
정말 한강 이후로 슬픔을 이리도 탁월하게 적어낸 글을 처음 만난 듯하다. 처음에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슬픔이 그렇게 가벼운 것이던가, 날개가 달려 쉬이 날아갈 수 있는 것이던가, 생각했고, 무엇보다 원제는 Grief is the Thing with ‘Feather’이기 때문에 슬픔은 ‘깃털’ 달린 것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한데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니, 그래 슬픔은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이면서도, 또 때가 되면 마침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눈에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슬픔과 고통을 다뤄온 것과 같은 파편화의 방식으로 이 작품 역시 대체로 쓰여있다. 그러한 각 부분들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나에게 특히 커다랗게 다가온 건 책장을 하나씩 넘김에 따라, 아내가 죽은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느껴지는 변화였다.
모든 챕터마다 현재성이 대단했다. 정말 실제로 아내 혹은 엄마를 잃은 남편 혹은 아이들이 그녀가 죽고 며칠 뒤로부터 매번 그때 그때 적은 글을 나중에 시간 순으로 모아놓은 듯했다. 그녀가 죽은 지 며칠째, 슬픔보단 혼란이, 절망보다 분노가 날을 세우며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 아직 언어라는 형태로 정돈될 수 없는, 차라리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 덕지덕지 서술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각기 슬픔의 팔목을 붙잡고 격렬한 춤을 추고,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잘 믿어지지도 않는다. 얼마큼의 시간이 더 흐르고, 아버지와 아들들은 서로를 의식한다. 얄팍하다 못해 투명해지려 하는 가냘픈 생의 존재를 서로를 통해 확인한다. 넷에서 하나가 빠진 불완전한 세상을, 셋의 세상으로 어렵지만 새롭게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죽은 지 몇 년, 문장은 차분해지고, 글은 완성된다. 다소 당황스러우리만큼 가지런해진 글은 슬픔이 그만큼 줄었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슬픔이 다른 국면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슬픔이 아직 죽지 않고 다만 나이를 먹은 듯한 느낌이랄까. 마구 울부짖는 갓난아기였던 슬픔이 청소년기를 지나 어느덧 성인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겪은 뒤 찾아오는 거대한 까마귀의 방문을, 아마 대부분 맞이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소 뜬금없게 느껴질 법도 한 이 작품의 까마귀 은유는 꽤나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렇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어느새 무언가가 찾아와 내 방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고 있곤 했지. 그리고 언젠가, 며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지나고 난 언젠가, 그것은 홀연히 날아가버리고, 그것이 있던 자리엔 그것의 자취만이 남아있곤 했다.
사실 슬픔이 어찌 날개만 달린 것이겠는가. 슬픔에는 가시가 달려서 피가 철철 나도록 찌르기도 하고, 슬픔에는 발이 달려서 미친 듯 날뛰기도 하고, 슬픔에는 납덩이가 달려서 그 밑에 깔리면 숨도 못 쉬게 되기도 하고 그런 거지. 다만 슬픔에는 날개도 달려서, 언젠가는 휑하니 날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영 그 자리에 있지만 동시에 훅 날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어느 누가 이리도 삼면화를 보듯 요리조리 뜯어보며 사랑과도 같은 정확함으로 써냈었던가.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내 방 한 켠에 아직 날개를 접고 우두커니 고여있는 슬픔과, 이전에 날아가버린 슬픔이 머물렀던 진한 자욱을 천천히 쓰다듬고 가만히 껴안다가 잠들어야지.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나는 아내를 기리기 위해 맨손으로 100피트 높이의 기념비를 세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하이드파크의 거대한 돌의자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나의 이 그리움이란 어쩌면 이리도 물리적인 것인지.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그 그리움은 금으로 만든 거대한 왕자, 콘서트홀, 천 그루의 나무, 호수, 구천 대의 버스, 백만 대의 차, 이천만 마리의 새들 그 이상이다. 도시 전체가 아내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다. (77)
남자: 이제 난 슬퍼하지 않게 되는 건가?
새: 아니, 천만의 말씀.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남자: 나도 동의해. 그건 늘 변하지.
새: 슬픔 말이야?
남자: 응.
새: 그건 모든 것이야. 그것은 자아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것이고 아름다울 만큼 무질서하지. (149)
아빠는 자기 눈앞에서 영국의 여름날에 주근깨투성이 얼굴로 활짝 웃으며 트랄랄라 트랄랄라 노래하고 있는 부재不在를 향해 욕을 퍼부을 수도 없었다.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