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우주적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Cosmos>를 읽고

by 다른


작년 이맘때쯤 읽기 시작한 이 책을 약 1년이 지난 이제 와 드디어 다 읽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었나 싶으면서도, 또 중간에 한없이 지루해서 포기하고 말았던 때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다 읽어낸 게 뿌듯하기도 하고, 사실 뒷부분은 마냥 재밌었기 때문에 지루했던 그때 그냥 포기하지 말고 좀 더 읽어서 얼른 다 읽어버렸을 걸 싶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아주 얇은 책이 아닌 이상 보통의 책은 완독하는 데 최소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약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방대한 책과 함께한 나의 시간은 1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책을 쓰고 번역한 분들에게는 비할 바도 못 되겠으나, 이 책을 재밌게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읽으면서 졸다가, 결국 때려쳤다가, 이 책에 관한 영상을 보고, 다시 손에 잡았다가, 매혹되어 문장들을 잔뜩 옮겨적었다가, 이 책이 썩 괜찮은 책이라고 주변 이들에게 이야기했다가, 그랬던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도 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처음에는 이 책이 문학적이라는 데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문학을 전공하고, 한결같이 문학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겨우 이 정도 표현들이’ ‘문학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우주와 별과 지구에 관해 노래한 칼 세이건의 문장이나 표현들이 문학적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나 생각이 너무나 낭만적이고 문학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그야말로 사랑에 빠져있다. 천문'학’이 아니라, ‘천문’에 홀딱 반해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은지.


문과 중의 문과인 내가 읽기에는 사실 거의 몇 페이지를 통째로 날렸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검은 건 글자요 흰 건 종이.. 그 느낌. 그렇게 전문용어들을 가지고 대상이나 이론에 관한 설명이 이어질 때면 이게 천문학과 전공서적에 불과한 것 같은데 왜 베스트셀러인 거지, 싶은데, 곧이어 그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가 서술될 때면 금세 감동하게 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칼 세이건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사랑하자는 것이다.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그리고 그토록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기적적인 것인지를 열심히 설명한 뒤, 그러니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과학적으로 납득되는 순간이다. 우주적 낭만이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로서 당연히 진화론을 신뢰하고, 창조론이나 각종 종교에 대한 반감을 책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드러낸다. 내가 놀란 건 (아마) 무신론자인 그와 크리스천인 내가 갖는 경외감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절대자가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냈느냐,에 대한 의견이 다를 뿐, 아무튼간 이러저러해서 우주가 탄생하고 지구가 태어나고 자연과 인류가 살아가는 것을 바라볼 때 인간이 갖는 본능적 경외감.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의 반대말인 코스모스, 이 세계가, 이 우주가, 그토록 광대한데, 그토록 다 알 수 없는데, 믿을 수 없도록 질서정연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소름이 돋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밖에 무한하도록 넓고 기이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파헤치고 알아갈수록 허무에 빠지기보다 차라리 더더욱 이 작은 지구별 여행자들의 존재가 소중해진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코스모스, 우주, 그 질서가 곧 사랑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압도되는 느낌, 경외심,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 두려움과 설렘, 오래된 이야기, 생명의 소중함.

인간은 참 덧없이 스러져가면서도 악착같이 살아간다.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이 우주의 질서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일임을, 저 별들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의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역사와 민족을 모두 초월한 범인류를 상정하고 방금 ‘우리’라는 단어를 썼다.


내 모습이 참 작아 보일 때, 내가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나 자신보다는 차라리 나라는 존재 따위 보이지도 않을 만큼 크고 먼 곳, 영원하고 무한한 저 코스모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