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른 Oct 10. 2020

당신을 예술가라고 부르기 위하여

리처드 링클레이터, <어디갔어, 버나뎃(2020)>을 보고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들은 전부 각본집으로 소장을 해야만 한다. 원작 소설이 있다 해도 말이다. 오로지  남녀의 끝없는 대화가 담긴 영화  편으로 사랑이 뭔지를 전부 말해버린  있는(<비포> 시리즈)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각본이, 그야말로 ‘메소드연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도록 탁월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만나 완전히 빛을 발했다. 블란쳇의 연기에 대해서야 워낙  말할 것이 없지만, 배우가 언제나 자기 자신  캐릭터 본인인  혼연일체되어 장면 장면과 작품 전체를 소화해내게끔 만드는 것이 워낙 링클레이터 특유의 재주 아니겠는가.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이야기가 단순해지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단순한 방식으로 건넬 때뿐,    올의 이야기,  꺼풀  꺼풀의 대사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려져 전해지는  하나의 문장은 울림이 된다.

  버나뎃은 천재성을 가진 건축가다. 창작 활동을 멈춘  예민하고 불안해진 그를, 가까운 이들은 ‘환자취급할 뿐이다. 예술가로서의 버나뎃을 알고 인정하는 그의 오랜 친구만이 아주 오래간만에 그를 만나 그의 불안정한 일상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짤막하게 이야기해준다. 내가 해줄 말은 하나야. 버나뎃, 너는 예술가야.  창작을 해야 .  장면에서 울컥한 당신, 당신이 바로 예술가다. 내가 당신을 예술가라고 부르겠다. 당신은 창작을 해야 한다.

  버나뎃과 버나뎃의 가족들이 분투하는 고민과 일상이 아주 현실적인 것이라면(물론 버나뎃 패밀리의 경제적 수준은 아주 소수의 관객들에게만 현실이겠지만)  갈등이 해소되는 양상은 아주 시원하게 영화적이다. 영화는 버나뎃의 딸인 비의 생일선물로  식구가 함께 남극 여행을 결정하는 징면으로 시작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남극이 수시로 언급되지만, 너무 자주 언급되니까 오히려 맥거핀 같아 보여서, 진짜  식구가 남극에 가버릴 줄은 몰랐지.

  나에게는, 사실상 평생을 꿔왔지만 좀처럼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꿈이 있다. 심지어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은 내가  꿈과 상당히 가까이 닿아있다고 여긴다. 내가 느끼는  꿈과 나의 거리는, 나에게만 남극이다. 그리고 남극은, 남극행 비행기나 배에 탑승하는 순간, 이루 말할  없이 가까워진다. 건축가는 집을 짓고, 소설가는 글을 쓴다. 당신의 꿈이 당신에게 묻는다.

  ,  어디 갔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