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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Sep 04. 2020

더위는 잠시 잊고, 우리를 계속 기억하기 위하여

윤단비 감독 영화 <남매의 여름밤(2020)>을 보고



  우리가 가을의 낮이나 봄의 아침보다 여름의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루종일 사그라들지 않을 것처럼 지겹도록 타오르던 더위가, 잠시 내일을 기약하며  걸음 뒤로 어물쩍 물러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흘린 땀으로 몸은 온통 끈적이고, 어둠은 내렸어도 여전히 어딘가  식지 않은 훗훗한 공기가 뒷목을 훑고 지나가는 듯하지만,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어도 사방이 뚫려 바람이 통하는 트인 공간에 가만히 나와 앉아 있으면  ‘여름도 지낼 만하구나하는 태평한 생각이 들곤 한다. 다음  새벽 일찍 떠오르는 뜨거운 여름 해에 금세  생각은 자취를 감추지만,  나절이 지나고 또다시 밤이 오면 거짓말 같이 찾아오는 안도와 함께 눈을 감는 것이다. 그렇게 여름 내내 역시 더운 것보단 추운  낫다며 겨울을 그리워하다가,  깜짝할 사이 가을을 지나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역시 추운 것보단 더운  낫다고 말을 바꾸는 , 우리는 그렇게 바보같은 회전문을 돌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인 것처럼 살아간다.


  아비를 원망해보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어미를 저주해보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죽어도  사람 같은 부모는 되지 않겠노라고, 결코 저런 실수만은 하지 않을 거라고 이를 갈며 다짐해본  없는 자식이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겨우 강산이   바뀌고 나면 그토록 한심해 보이던 부모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내게 있음을 발견하고, 평생  치도 부모보다 나은  없었음을 그들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며 고백하는  우리들 아니던가. 여름밤, 그것은 여름의 뒷면이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잠깐 잊어버리는 공간이다. 절대 용서할  없는 관계를, 언뜻 놓치고 지나보내는 방학이다.


   영화를 보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떠올리지 않기는 어렵다. 여름, , 가족, 그리고 차분한 정서까지 너무 많은 것들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꾸준한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모든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갈수록  필요로  뿐이다. 코로나 시대, 인류를 위해 모두가 서로 거리를 둬야 하는 요즘, 부쩍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피가 섞인 가족이든, 그렇지 않은 가족이든 말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소유의 집이든, 남의 것인 집이든 말이다. <남매의 여름밤> 추억이라기엔 너무나 동시대적인, 그러면서도 현재라기엔 어딘가 아련한 이야기와 영상들을 담고 있다. 가족의 정의와 형태는 많이 달라졌어도 우리는 여전히 어떤 가족의 안에서 존재하며, 집의 양식과 구조 또한 다양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어떤 집을 필요로 한다. 계절의 정취가 짙게   편의 가족영화를 흔하거나 뻔하게 생각하지 않을 일이다.  영화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나의 자식의 이야기, 나의 부모의 이야기, 나의 부모의 부모의 이야기일 수도.


  인생에는 어쩐지 결코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 언제든 머릿속에서 재생시킬  있는 장면들이  가지 존재하게 마련이다. 앞으로는 그와 같은   가지 추억의 영상들이,  영화 속의 어떤 장면들과 나란히 재생될  같다. 감독이 (세트를 짓지 않고) 생활감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실제 2 양옥집을 섭외하느라 꽤나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오래된 집은 역시 세월만큼 고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 속에서는  자체가  명의 인물과 같은 존재감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영화 전체를  집이 꾸는  여름밤의 꿈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보고 싶어서, 모두가 보고 싶어서 꾸는, 아쉽거나 경쾌한 하룻밤 꿈과 같은  자락의 추억. 내가 가진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편집해  편의 영화로 만들  있다면,  영화의 배경이자 상영관은 역시 ‘이지 않을까 싶다. 웃고, 대화하고,  먹고, 싸우고, 떠나가고, 돌아오고, 나이 먹고, 후회하고, 태어나고, 화해하는, 한여름의 깊은 밤과 같은 내가 살던 . 나의 부모, 부모의 부모에게서부터 반복되며 내려온  영화는 이제 다시 나에게로 와서 멈춤 없이 충실하게 재생되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기억  무너지지 않은  고향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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