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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Jun 23. 2020

엄마 혹은 한 인간의 사라짐, 또는 남겨짐을 위하여

영화 <축복의 집(2019), 박희권>을 보고



2020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국제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 수상 <축복의 >

Korea | 2019 | 79min | Fiction | color | 15 +



엄마가 죽었다. 죽은 엄마가 집에 누워있다. 이제 엄마를 진짜 ‘죽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제법 남아있다. 그래서 주인공인 해수는 엄마가 죽은 뒤 꽤나 바쁘다. 죽은 엄마는 6천만 원을 남긴다. 재개발로 인해 언제 철거될지 알 수 없는 집에서 나온 다음 당장 살 곳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원래 죽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남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의 죽음을 택했다. 자식인 두 남매는 묵묵히 그 일을 마무리한다.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지만, 영화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혹은 그 일 이후에 이들이 어떻게 되었을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 한 명의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과정을 아주 자세히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마치 ‘가족이 죽었을 때 처리 방법’ 내지는 ‘사망 후 절차’와 같은 내용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올 법한 동영상 같이 보인다. (검색해본 적 없다.) 나의 경우는 아직까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고, 지인의 가족 장례식에 참석해본 정도가 내게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것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나타난 많은 것이 새로웠다. 가까운 이의 죽음, 그것도 엄마의 죽음씩이나 되는 상실이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외에 다른 것들이 더 있을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죽은 이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남은 이는 죽은 이를 진짜로 ‘죽게 하기’ 위해서 참 많은 사소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어쩌면 마음껏 슬퍼할 여유조차 없을지 모른다.



엄마의 숨이 끊어진 이후에도, 묘하게 엄마는 아직 존재한다. 숨을 쉬고 말을 하지 않을 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엄마는 여전히 엄마이고, 염을 하고 화장을 마쳐 뼛가루만 남은 뒤에도 여전히 실재하는 무게로, 납골함과 영정사진으로 나뉜 채 남매의 손에 들려 있다. 납골함을 흙 속에 파묻은 뒤에도, 엄마는 육천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남매의 통장에 입금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남매의 남은 인생 내내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어떤 날엔 꿈속에도 나타날지 모른다.


창세기를 보면 늙은 이삭이 죽기 전에 아들인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는 장면이 나온다. (의도와는 달리 야곱이 대신 그 축복을 받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남매는 엄마가 죽으며 남긴 축복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엄마가 죽고 곧 허물어질 비탈 위의 그 집은 결국 축복의 집이었던 걸까. 아니면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남은 건 단지 먼지와 재뿐인 것일까.




(+)

GV에서 감독은 긴 장례 장면에 관해 ‘한 사람의 사회적 죽음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내내 주인공인 해수의 얼굴을 거의 정면으로 비추지 않는 카메라와 어둡고 흔들리는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카메라 덕분에 큰 서사적 리듬 없이도 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오묘한 페이스로 해수 역의 미스터리함을 소화해낸 안소요 배우와 이 작품으로 첫 장편 데뷔를 한 남동생 해준 역의 이강지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눈에 띄었다. 이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모든 시간들을 진심으로 감사해 하고 행복해하는 듯한 재능 있는 두 젊은 배우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이후의 활동들을 많이 기대하게 됐다. 또 중간에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가 깜짝출연을 하는데, 아직 그의 웹사이트상 필모그래피에는 등록돼있지 않다. 출연 분량이 길지는 않지만 여느 때와 같이 자연스러운 연기로 톡톡한 신스틸러 역할을 하는데, 다음 날 관람한 <우리집>에서 우정출연한 장혜진 배우의 모습까지 봤을 때는 나 자신이 <기생충>이 꾸는 꿈속에서 아직 깨지 않은 듯한 묘한 인셉션스러운 기분이 들었다는 건 아무도 안 물어본 비하인드 스토리.




GV 현장의 박희권 감독, 안소요 배우, 이강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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