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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Jun 23. 2020

정말 가까운 곳에 서서,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박근영 감독 영화 <정말 먼 곳(2020)>을 보고


*영화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국제장편경쟁부문 상영작 <정말 먼 곳(2020)>, 박근영

Korea | 2020 | 119min | Fiction | color | 15+





정말 먼 곳


박은지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바스러지고

뿌리는 튀어나오고 견디지 못한 풀들은

툭 툭 바다로 떨어지고

매일 무언가 사라지는 소리는

파도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거야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박은지 시인의 시 제목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현실의 문제들과 복잡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실제로는 단순히 '정말 먼 곳'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정말 먼 곳'으로 떠날 때, '정말 먼 곳'을 떠올릴 때는 언제일까. 아마 현재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나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주지 못할 때일 것이다. 그런데 위의 시는, 화자를 '나'가 아닌 '우리'로 설정하고 있다. 시에서 말하는 '정말 먼 곳'과 '정말 가까운 곳'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서의 먼 곳과 가까운 곳인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진우(강길우)가 먼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유는, 이처럼 그가 혼자가 아닌 '우리'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현민(홍경)은 이십대 때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추측컨대 아마 동성커플인 그들에게 그들이 속한 세상은 많은 아픔을 주었을 것이고, 진우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능한 적은 곳에서, 조용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등장한 설(김시하)의 존재는 치명적이다.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인 은영(이상희)의 딸인 설은,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은영에 의해 '한 달'을 약속하며 진우에게 맡겨지지만, 결국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 스스로가 진우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채로 자라게 된다. 설은 어떤 연유에선지 진우를 '엄마'라 부르는데, 이웃들과의 식사에서 진우는 자신 역시 어릴 때 아빠를 '엄마'라 불렀었다고 이야기한다. 설은 진우가 '정말 먼 곳'으로 택한, 사람이 거의 없는 강원도의 한 목장에서 진우,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평화로운 자연 속 양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평화를 깬 것은 연이은 두 사람의 방문 때문인데, 먼저는 진우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연인 현민의 방문이고, 다음은 설의 친모인 진우의 여동생 은영의 방문이다.





그렇게 '정말 먼 곳'이었던 이곳 진우의 세계는, '정말 가까운' 단 두 사람에 의해 다시 '정말 가까운 곳'으로 무너져내리게 된다. 진우와 현민이 연인관계임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경멸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보내고, 진우는 애써 새롭게 시작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것이 단지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아도 금세 알 수 있다. 아니, 한 사람이 멀리 떠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아니, 왜 어떤 두 사람은 가까운 곳을 버리고 가능한 먼 곳을 향해 떠나야만 함께일 수 있는 걸까?






감독은 이 영화가 '거리감'에 관한 영화이며, 그 개념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힌다. '거리감'은 '거리'와는 다른 단어다. 감각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는 사람도 태양보다 멀게 느낄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가수의 팬은 그를 가족보다 가깝게 느낄 것이다. 진우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가능한 먼 곳으로 떠나기를 원했지만, 사실 그가 진정 필요로 하는 곳은, 자신과 현민을 '정말 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이 살고 있는 땅일 것이다. 설이 진우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성별에 관한 논의에 앞서 진우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모두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아기가 태어나 언어능력이 아직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가장 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말을 단어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촌인 진우를 '엄마'라 부르는 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진짜 엄마' 은영은 낯설기만 한 타인이다. 실제의 '거리'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느끼고 상정하는 '거리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설정이다. 그러나 설은 머지않아 은영에게도 곁을 내어주며 빠르게 거리감을 좁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 곳'과 '가까운 곳', '먼 사람'과 '가까운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진우와 단 둘이 누운 침대에서 현민은, 둘이서 아무도 모르는 먼 외국으로 떠나 사는 행복한 삶을 상상하며 진우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우는, 모든 곳이 결국은 똑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설령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살아간다 해도,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도피했다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부정당했다는 인식을 떨치고 오롯이 편안하게 머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거리감의 문제이다. 진우와 현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먼 곳'이 아니라, 이들을 '정말 먼 사람들'로 내치지 않을,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존재다.





진우는 설의 나이가 찼음에도 유치원에 보내기를 거부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아마 설이 유치원에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일반적인 사회'를 마주하면서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갖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존재, 이성애와 정상가족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치관들을 학습하게 되면, 다시 다른 사람들처럼 진우를 부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뜻대로 설이의 삶을 조정해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영화는 여러 복잡한 질문들에 어떤 정해진 답도 제시하지 않기를 선택하지만, 양의 죽음으로 시작한 서사를 양의 탄생으로 끝맺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생명의 탄생이라는 경이로운 장면 앞에서는, 모든 이가 고민과 갈등을 잠시 멈추고 그것을 숨죽인 채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거리감들이 잠시나마 종식되는 한 순간인 것이다. 가깝거나 먼 곳,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하는 모든 행위들을 넘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삶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또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진우와 현민과 설과 은영의 앞날이 어쩌면 그러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짐작을 할 수 있었다.





(+)


GV에 이상희 배우를 제외한 감독 이하 전 출연진이 와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영화의 여러 장면과 요소들에 있어 정해진 답을 제공하기를 많이 조심스러워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어떤 예술장르에서든 당연한 것이기도 한데, 제법 구체적인 동시대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야기할 거리가 풍부한 작품인 만큼, 특정한 해석을 내어놓음으로써 그와 같은 토론의 장을 좁히지 않겠다는 의사가 작품을 만든 이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좋은 이야기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또다른 만족을 선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질문에 대한 감독과 배우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이 영화는 단지 저 고요하고 멋진 풍경만큼이나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강에게>에 이어 또 다시 좋은, 어떤 측면에서 더 발전된 영화로 돌아온 박근영 감독의 차기작들에는 단연 무한한 기대를 안고 있는 바이며, 기존에 알고 있던 강길우, 이상희, 기주봉 배우에게 더욱 호감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새롭게 만난 홍경, 기도영, 김시하 배우의 모습은 내겐 놀라움과 반가움이었다. 금세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분주해질 게 분명한 기대주들이다. 꼭 큰 화면으로 감상해야 하는 이 영화가 하루빨리 정식 개봉으로 많은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고, 이 작품을 앞서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GV 현장 사진. (화질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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