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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Jun 22. 2020

살기 위해 법을 어기는 인생들을 위하여

영화 <토니 드라이버(2019), 아사니오 페트리니>를 보고



2020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국제장편경쟁부문 상영작 <토니 드라이버 Pasquale Donatone in Tony Driver>

Italy, Mexico | 2019 | 73min | Documentary | color | 전체



다큐와 픽션을 오간다더니, 정말이었다. 상상도 못한 방식. 실로 이 작품 전체를 다큐로 봐야 할지 픽션으로 봐야 할지 난감하게 되는 형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큐멘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 안에 극영화의 서사 기법을 넣었다. 주인공인 토니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연기하듯 들려줄 때, 그 당시의 상황이 배우들을 통해 재연되는 동안 카메라가 완전한 토니의 1인칭 시점으로 움직이는 화면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의 토니의 모습이 서로 교차편집된 장면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야외에서 운전대 하나를 가지고 자신이 국경지대에서 체포되던 당시의 상황을 재연 중인 토니.



가장 흥미로운 건 형식도 형식이지만 바로 토니 그 자체였다. 그가 처한 상황과 영화가 담고 있는 모습은 모두 픽션이 아닌 실제가 맞고, 토니 역시 연기자가 아님이 분명한데, 꾸며내거나 연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몸짓 하나 말 한 마디가 전부 짜여진 듯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것이다.


영화는 미국 이민자들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태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토니는 뉴스와 잡지에 나오는 트럼프를 향해 대놓고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자신이 어겼거나 자신을 내쫓은 미국의 어떤 법에도 상관하지 않고 미국이 자신의 조국임을 주장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흡사 전쟁터에서 죽은 오빠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왕에게(법에) 대항한 그리스 신화 속 안티고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토니는 사실 애초에 정식으로 미국 국민이었던 적도 없고, 그런 신분으로 미국땅에서 불법 행위를 하다 적발되어 추방당했기 때문에, 아니 심지어 정확히는 재판 대신 그 스스로 추방을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가 미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꿋꿋하다. “나는 미국에서 40년을 살았어. 미국은 내 조국이야.”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짜고짜 국경을 몰래 넘기 위해 멕시코로 가고, 멕시코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국경을 넘어 달려가는 토니의 뒷모습을 저 멀리 작아질 때까지 비추며 끝난다. 어디서 순간 총알이라도 날아오지 않을까 끝까지 긴장하며 보게 되는 장면이다.





토니는 분명 무모하다. 무식할 만큼 무모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에겐 단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다른 선택지가, 하나도 없었던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미국에 가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 오래 산 만큼 그곳만이 자신이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헤어진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국을 조국으로 여기는 이상, 그의 입장에서 그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자신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다른 나라가 자신이 태어나 9살 때까지 살았던 고향 이탈리아라고 해도 말이다. 이것이 그가 10년의 추방 기간 중 5년을 이미 보냈음에도, 나머지 5년을 더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건 채 다짜고짜 미국으로 향하는 이유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먹고사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그의 고용주는 자신의 사업체를 그에게 물려주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하며 그의 미국행을 만류한다. 하지만 이혼한 아내가 재결합의 의사를 보인 이상, 아내와 두 아이를 미국에 남겨둔 채 홀로 살아가는 삶은 5년이 아니라 단 1년, 아니 하루인들 그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안티고네는 법을 뛰어넘은 무조건적인 요구를 고집스럽게 꺾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가족을 올바르게 장사 지내는 일은 어떤 국가나 법보다도 상위에 있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국, 아니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설적으로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대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느냐고. 숱한 목숨 값들을 치러가면서까지 상위에 두고 있는 당신의 원칙은 대체 무엇이냐고.





이 영화의 장르는 어쨌든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몰래 넘어가는 마지막 토니의 모습은 실제일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관객은 그가 들키지 않고 무사히 안전한 곳에 도착해, 앞으로도 쭉 법의 감시망을 피해 가며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서’ 잘 살아가기를 기도하게 된다. 물론 토니와 같은 사람들이 모조리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 미국에 밀입국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토니를 전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그라는 개인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 간 미국 정부가 보인, 중요한 것들을 중요시하지 않고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여러 이해할 수 없는 행보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무모한 토니가 지금쯤 미국 어딘가에서 가족들과 ‘불법적인 일을 하며’ 오순도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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