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파리 시간으로 2일 23시 14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인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이곳에서의 내 소확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 주제만으로도 연재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겠지만, 때로는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도통 포기하기 힘들 정도로 내가 아끼는 구체적인 시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가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여기서 유독 이 시간이 특별해진 건지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진수성찬도 아닌데 밥 한 끼 차려먹는 일이 꽤나 큰 일이다. 간단히 파스타 해먹자, 마음먹으면 우선 물 올려서 면부터 담가놓은 다음 채소를 손질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채소를 적당히 볶다가 소스를 추가해 면과 함께 좀더 익힌다. 파스타와 함께 먹을 샐러드도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서 발사믹 드레싱을 살짝 뿌리면 뭐, 완성이다. 이제 그릇에 옮긴 파스타와 샐러드를 가지고 큰방으로 이동하면, 뭔가 굉장히 엄숙하면서도 자유로운 특별한 시공간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건 그 장소 자체의 특별함 때문이기도 한데, 여기서 내가 사는 집의 형태를 잠시 설명해야만 한다. 이곳은 거실이 따로 없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다. 나와 룸메이트가 두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고, 현재 가장 큰 방 하나가 비어있는 상태다. 우리들의 집주인은 약간 비현실적일 정도로 착한 편이라서,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보고 빈 방을 식당처럼 편하게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을 해주었다(우리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말했듯이 거실이 따로 없는 이 집에는 식탁을 둘 곳 역시 딱히 없고 조리와 설거지를 겨우 할 수 있는 규모의 주방만이 전부라서, 우리로서는 이 집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식당 겸 거실을 얻게 된 셈이다. 그러니 원래는 제한된 구역이지만 한정적으로 이용을 허락받은, 남의 것이지만 동시에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방이 갖는 특이한 미묘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내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별 게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긴장 상태의 지속이 있다. 밖에 나서면, 아무래도 매순간이 모험이다. 내 나라, 내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나도 모르게 실수하기 십상이고, 말이 서툰 내가 그 실수를 바로잡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래서 모든 긴장을 내려놓아도 되는 집에서 마음 편히 식사를 하는 일, 그러면서 한국어 음성이나 한국어 자막으로 된 영상을 감상하는 일은 뭐랄까, 나를 잠시나마 일종의 모국으로 데려다주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했었던 일, 바로 그런 일이라는 점이 핵심인 것이다.
큰방에서 영화를 보며 밥을 먹는 일은 다시 크게 두 경우로 나뉜다. 혼자 혹은 함께. 내게는 정확히 반씩 중요하다. 일주일에 몇 번, 룸메이트와 함께 작정하고 장을 봐서 맛있는 음식을 차린 다음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맛있게 먹는 일은 내게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이 여겨진다. 그러니까 마치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이 계속 앞으로 가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을 것만 같은, 내가 파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모종의 의식. 우리는 마라탕을 끓이고, 삼겹살을 굽고, 와인을 따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넷플릭스를, 왓챠를, 유튜브를 튼다.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정리한다. 그렇게 하고나면 두세 시간이 훌쩍이다. 저녁은 언제나 밤이 되어 있다.
이렇게 각자 방을 쓰면서 한 아파트를 쉐어하는 형태를 프랑스에서는 ‘꼴로까시옹Colocation’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처럼 공간도, 시간도 ‘꼴로’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모든 관계의 미덕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소소하지만 확실한 관계. 지금, 몇몇 얼굴들이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