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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Oct 20. 2022

012. 내가 전부 이해되어버리지 않아서

2021년 6월 파리 시간으로 4일 23시 53분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찬사를 대체 무슨 단어들로 적을 수 있을까. 고민이 길어질수록 손가락은 굳어갈 뿐, 그것을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를 간직하겠다는 것만이 목표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다녀왔다. 이곳은 파리 중심,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노트르담 대성당이 건너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오래된 서점으로, 처음 문을 연 것은 1919년이니 생긴 지 무려 100년이 넘은 곳이다. 이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인데, 1차 대전 이후 파리에 거주하던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의 거점으로 삼으며 숱한 토론을 나누었던 곳이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대작 <율리시스>의 원고가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할 때, 바로 이곳의 사장인 실비아 비치가 제안해 직접 책을 출판해주었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손님들이 그 첫 독자가 되었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좀 더 최근으로 시간을 당겨오면, 불후의 로맨스 영화인 <비포> 시리즈 3부작 중 2편인 <비포 선셋(2004, 리처드 링클레이터)>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극중 이름인 제시와 셀린이라고 하는 게 맞지만, 이 시리즈에서만큼은 언제나 이렇게 배우들의 이름으로 부르고 싶게 된다) 9년 만에 재회하는 바로 그곳, 작가가 된 에단 호크가 사인회를 갖는 바로 그 서점으로 나와 더욱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위의 한 문단을 적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기억과 추억들 사이를 마음 벅차하며 여행했는지. 온갖 책들로 빼곡해 흡사 미로와 같은 서점 내부를 구석구석 몇 바퀴씩 구경하고 또 구경한 나는, 그곳을 나서기 전 계산대에서 점원들에게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전 인생에 걸쳐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노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심지어 파리에서 살고 있다고. 너무도 친절한 점원들은 나와 똑같이 눈을 빛내며 나의 그런 TMI를 듣고 반가워해주었다. 근데 사실 내 말은 거짓말이다. 내가 이 서점을 정확히 인식하게 된 것은 전 인생은커녕 채 몇 년도 되지 않는다. 유럽여행 기간 동안 이곳에 들렀던 친구가 이곳의 기념품인 가방을 보여줬을 때, 나는 왜 영국 작가인 헤밍웨이 이름을 딴 서점이 파리에서 유명한 거냐고 진심으로 의아해하며 물었었다. (1919년 당시 실비아 비치가 영미권 서적을 프랑스에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운 서점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영어로 된 책들을 다루고 있고, 그게 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거짓말이 아니다.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실비아 플라스, 스콧 피츠제럴드,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이런 이름들을 듣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나의 인생을 견인해온 것이 언제나 문학이었다는 것 한 가지는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름들과, 그 이름들에 묻어있는 어떤 것들로 가득 메워진 시간과 공간, 그게 바로 파리 6구 오데옹가 12번지에 서서 1900년대와 2000년대를 보내고 있는 이 서점이라는 것. 내 거짓말은, 대충 그런 스토리의 아주 짧은 버전인 셈이었다.


  이쯤에서 조금 분명히 해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나는 위에 언급한 심장 떨리게 하는 이름의 주인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잘 모른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거의 모른다. 그래서 심장 떨려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전공은 영문학이 아니라 국문학이다. 이광수, 이청준, 박태원, 이상, 김명순, 강경애, 이런 이름들을 들으면 심장이 떨린다기보다는... 솔직히 약간은 지겨운 그런 느낌이 든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누가 뭐래도 우리 문학이다. 다만 10년 사귄 연인을 여전히 사랑해도 처음의 환상을 유지하는 사람은 없듯이, 내게 낯선 만큼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명성뿐인 영미권 작가들이라는 것. 파리가 나를 설레게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명성의 높이만큼 내겐 아직 낯설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 아이들과의 수업 준비 때문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었다. 어릴 때 읽었었는지, 학창시절에 읽었었는지, 사실은 말로만 듣거나 영화로만 보고 정작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절반 읽을 때까지 재미없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오늘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 남아있던 뒷부분을 한 시간 반가량 멈추지 않고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오만과 편견>뿐만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 세계가, 그것에 발목 잡혀서 여지껏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내 인생이 너무너무 재밌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구경하는 동안 그곳에서의 내 느낌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문학이 내 인생에 남겨놓은 발자국들이 숱하게 어지럽고 절대 정리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그 서점 안 어느 곳에서 왜 울컥했고 왜 폭소했고 왜 숨을 삼켰고 왜 깜짝 놀랐고 왜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절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기뻤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어떤 기쁨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본능이 결국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괴팍하고 고독한 예술가라 해도, 결국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바깥으로 꺼내어 놓는다. 어떤 존재에든지 끝내 다른 이에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정확히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부분들이 아니라, 표현하고 해명하고 설득해도 끝끝내 남겨지는 바로 그 부분이 진짜 그 사람을 구성하는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내가 전부 이해되어버리지 않아서, 내가 다 설명할 수가 없어서, 사실 자고 일어나면 내일의 나조차 오늘의 나를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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