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읽고
저자의 이름과 시집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의 콜라보에 속으면 안 된다. 아니 어쩌면, 속기를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감쪽같이 속았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구인지.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그 아름다운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들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펼친 그의 시집 속 시들은 분명 아름답다기보다는, 아니 아름답지 않다기보다는, 뭐랄까, 잘생겼달까. 잘생긴 사람을 한자로 하면 미인(美人)이니까, 결국 아름다운 게 되는 건가.
어느 누가 시를 감히 정의내릴 수 있겠냐만은, 최소한 우리들이 교과서를 통해 시라 배우며 자라온 시의 모습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는 아마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고 말한 것이었겠지. 사실 시에 관해 이보다 정확한 설명도 이전에 본 기억이 없다. 문학과 예술의 그 실체없음, 그러면서도 매혹적임, 영원한 실패와 거짓말과 욕망과 겸손이 한 데 모여 벌이는 축제와도 같음을 이토록 잘 묘사하다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문학은 곧 불편함과도 같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치 그동안 편하게 읽고 편하게 살았구나, 싶다. 그래 내가 왜 시를 멀리 하는 것이겠나. 시의 그 불편함을 감당하기가 귀찮고 두려워서, 단지 그뿐. 문학 공부를 하는 내내 셀 수도 없이 많은 부끄러움들이 내 것이었지만 ‘제가 시를 잘 몰라서요’라고 말할 때의 부끄러움은 특히 최악이었다. 방금 쓴 문장 속에 이미 그 부끄러움이 스며있다. 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이 그럼 소설만 공부하고 시는 공부를 안 한다는 게 어디 말인가. 그럼 문학이 대체 뭐람.
시라는 건 어쩜 이리도 시인일까, 생각해본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보다 훨씬 더 지은이를 묻게 되는 이것. 김민정이 김민정을 말하는 이들의 증언과 같은 김민정이 아니었다면 김민정의 시는 결코 시가 아니었을 것이다. 김민정이 김민정이라서, 김민정의 시가 시가 된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어떤 사람이 쓴 시는 죽어도 시가 될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을 고친다. 그렇다면 시인이 시를 쓸 때 시를 쓰는 것보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어디 가서 특별히 김민정 시인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마 못할 것이다. 다만 그의 시집을 한 권 읽고, 그가 거기에 적어둔 정도만큼 그를 알게 되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장차 내가 어떤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시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보다는 시를 쓰려고 애써주셔서—시를 쓰기 위한 시간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더 적합하겠다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