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0m: 우울한 게 뭐 어때서요?

Chapter 1. 잠시만요, 제가 좀 우울해서요 2006-2013

by Luci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을 그렇게 치부해 버리면 내가 지난 몇 년간 때로는 분투하고, 때로는 무너져 내리고, 대개는 근근이 겨우 버텼던 시간들이

며칠이면 약 먹고 잘 쉬면 나았을 가벼운 병인 것처럼 느껴져서다.

그보다는 정세랑 작가가

“우울은 내 지성의 부산물이야. 너는 이해 못 해.”

라고 표현한 것을 훨씬 좋아한다.

내가 우울증인가 싶어 상담을 받고, 병원을 가고, 긴 시간 심리검사를 받고, 결국 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밤에 잠들 수 없어 약을 먹고...

끝이 보이지 않던 시간을 보내며 그냥 우울한 면이 나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이 마음 편해지던 어느 순간에도

끝끝내 떨쳐버리고 싶었던 꼬리표 같은 것이 우울증이었다.

마치 나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이상이 있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영영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두려워서

수컷 새가 구애할 때 자신을 한껏 과장하듯 아주 어색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다가

다시 나의 작은 둥지에 돌아오면 한없이 초췌해져서 초라하고 비루한 나를 바라보며

또 무너졌던 날에 조금씩 기록했던 것들이 남아있다.

이제 와 다시 그 시절에 적었던 것들을 들춰보니 세상 심각한 중2병 말기 환자의 성찰문에 가깝지만,

그래도 그 서투르고 오그라드는 문장을 써 내려간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안타깝고 조금은 불쌍하다.

아주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영영 묻어버려야 하는 나의 치부를 꺼내어 놓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내가 여러 영화 중에 유독 성장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을 것 같다.

어딘가 모자라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때로는 수습도 못하는 사고를 치는 캐릭터들이 좌충우돌하며

여러 경험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미소를 짓게 한다.

괜히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끝끝내 거부하고 싶었지만,

내가 하는 ‘선생 일’도 어쩌면 매일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성장하는 어떤 가능성의 ‘덩어리’들을 마주하는 일인걸 보면

그것이 운명인가 싶기도 하다.

부족한 ‘나’이지만 아직 나보다 더 여리고 덜 여문 꼬마들을 모아 1년 열심히 보살피다 보면

그 작은 꼬마들이 한 뼘 자라는 동안 함께, 나도 조금씩 자라게 되는 것이 내 운명일까 싶다.

우울은 나를 어떤 심연으로 이끌었고 너무 깊이 빠져들었을 때는 여기서 내 숨이 다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어느 순간엔가 바닥을 찍고 올랐을 때는 조금씩 머리 위로 비치는 환한 빛을 느낄 수 있었고, 가끔 눈이 부시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정리해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란 사람은 그다지 잘하는 것도 없고, 때로는 소심하며 옹졸하지만, 돈도 없고, 뒤를 봐주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가진 재능이 버티는 것이라,

넘어져서 주저앉기는 했어도 울다가 다시 일어나야 할 때가 오면 울면서도 걸어갔다.

우울해서 눈물 콧물 쏟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끝내 나의 고결함을 잃지는 않았다.

우울했던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게 자랑이 될 수 있을까.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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