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m: 대학을 잘 못 가서?! 대학을 잘못 가서?

Chapter 1. 잠시만요, 제가 좀 우울해서요 2006-2013

by Luci

천성대로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점점 자랄수록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 대하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K-장녀로 태어난 것이 문제였다)

천성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일을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창 고민할 때,

사실 큰 꿈은 없었고 그냥 집에서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욕망이었던 때에 결정적으로 수능을 기대한 만큼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바람대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갔고(나에게는 꽤나 큰 좌절이었고, 나이 서른 무렵에야 그 좌절에서 조금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재빨리 졸업이나 해서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2006. 2. 2.

<일기장을 처음 사서 글을 씀>

첫 페이지에 글자를 적는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우연히 이 노트를 발견해서 이렇게 멋진 일기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예전에는 일기장에 온통 살기가 힘들다는 둥, 괴로워 죽겠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둥, 번잡한 생각들과 자기중심적인, 나름의 고뇌를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면, 지금은 막연히 의무감에서라도 펜을 들어 무언가라도 남기지 않으면 지나간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에 펜을 들게 된다. 그때는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몸 아프지 않고, 괴로워할 일도 없고, 쓸 수 있는 약간의 돈도 있고, 굶지도 않는다. 이렇게 소소한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일들이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고맙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불만을, 아니 세상을 향한 나의 불만을 적기 위해서였다면, 지금부터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떤 방법이 더 나을지를 고민하기 위해 적어야겠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죽으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마무리를 잘해야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년, 10년을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하루의 일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훗날 내 삶을 정리하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며칠 만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허나 지금부터 조금씩 변화하는 삶을 산다면 잘 산 인생이 되지 않을까.


2006. 2. 3.

친구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재수한다는 친구도 있고, 공무원 시험을 벌써 준비한다는 친구도 있다. 모두들 대학에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 시절 바라본 이상적인 세상과 커서 알게 된 세상과의 차이처럼. 내가 생각했던 20대의 삶이 모두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스무 살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리다는 이유로 규제되었던 행동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면 성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 예전에는 마냥 좋을 것만 같았는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내 주위의 그런 친구들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 불합격 소식을 들으며 태연하게 앉아 밥을 먹으며 걱정하는 내 모습이 어떨지도 참 궁금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당장 밥 숟가락 놓고 달려가 위로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수저를 드는 것이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 밝음 뒤에 어둠이 있듯이, 행복한 사람 뒤에는 불행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는 진리가 문득 떠오른다. 내가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줄 수도, 용기도 줄 수 없지만 그들의 앞날에 따뜻한 볕이 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2006. 2. 4.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만났다. 조금씩 모습이 변한 친구도 있었고, 나같이 그대로인 사람도 있었다. 날씨가 무척이나 추워 조금 힘들었다. 대학에 잘 간 아이도 있었고, 재수를 준비하는, 추가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얼굴들은 아닌지라 감격의 포옹 같은 것도 없었고,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지도 않았다. 역시 인터넷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무서운 건가. 아이들은 TV 속 드라마 이야기,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에 바빴고, 나는... 주로 듣기만 했다. 술도 없이 안주만 먹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대학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왜 서울로 가지 않느냐며 묻곤 했는데, 나로서는 그들에게 “초딩 가르치려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 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만만치 않은 등록금, 생활비 등의 금전적 압박과 시골에서 온 아이라는 시선, 스스로 느끼는 상대적 격차 등등의 생각을 하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문득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 성공 아니면 실패한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내가 그들에 비해 들인 노력이 적었던가?’, ‘내가 그들보다 못한 삶을 살았나?’ 같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특히나 00이 서울에서 뮤지컬 본 얘기 등을 떠들며, “여기서 교대 나와서 선생 하면 촌구석에서 썩어야 하지 않냐?”라고 했을 때는 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잘 살았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며 살았는지가 기준이 되어야겠지만, 현실 속에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야,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산 것처럼 평가되기 마련이다. 대학 입학만 해도 그렇다. 간판 좋은 학교 가야 아무래도 좀 더 대접받게 되는 것이 슬프다. 어쩌면 나는 소위 ‘SKY’라고 하는 대학의 좋은 과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반대로 대학의 서열화는 반대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이상주의자이지만 안으로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일지도 모르고.
별 뜻 없이 모였다가 아쉬움 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 친구들을 같은 반, 같은 학교였다고 해서 만나는 일이 매우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이 들어서도 좋지 만은 않겠지만.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추세에 거슬러, 혹은 반작용으로 인터넷을 통한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일까. 왜 이렇게 오늘의 만남이 어색했던 것인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2006년 대학에 입학하기 전 2월의 일기를 보면 한없이 자존감이 낮은, 아직 사춘기 티를 벗어내지 못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때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지독히도 어색해했구나 싶다.

이때쯤부터 엄마는 나를 ‘결혼 시장’에 내놓았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보이도록 할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상품성 제고를 위해 토끼처럼 튀어나온 앞니 두 개를 교정하러 치과로 끌고 갔다.

치과에서는 교정해도 다시 이는 나올 수 있으니

차라리 죄다 갈아내고 씌우는 게 낫다고 해서 앞니 네 개를 싹 갈아내고, 신경치료를 하고, 인공 치아로 씌우는 시술을 받았다.

물론 나는 싫다고 했지만, 나의 의견 따위가 먹힐 리 없었다.

지금도 곁에 있는 이보다 도드라지게 빛나는 인공 앞니 네 개를 볼 때마다

그때눈물 나게 아팠던 신경치료와, 본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치워버렸을 때의 허전함과,

나처럼 인공 치아를 해 넣었던 엄마의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이면 한창 생각 없이 지낼 때인 것 같은데, 이제 와 돌아보니

그때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연유로 가끔 우울할 때가 있었나 보다. 그리고 한없이 처연한 글을 끄적여두었다.


2006. 5. 7.

눈부시게 맑았던 하루. 난 그저 그 햇빛에 도취되어 모든 것이 맑을 줄로만 알았다. 그 뒤편 보이지 않는 구석에 가리어진 어둠을 미처 알지 못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숙제를 가지고 매일 해결을 위해 애쓰곤 한다. 결론을 낸 사람, 못 낸 사람, 숙제가 없는 사람... 나는 얼만큼이나 알아냈을까. 내 삶에 주어진 과업에 대한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턱 밑까지 차오르는 슬픔.
사람들 사이에서 숫자 싸움에 골몰해야 했던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지지 않는 불완전한 욕구에 대한 고민으로
번민하고 있다.
그 속엔 내가 있다.


심지어 슬픔이 온몸 가득하다는 그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무슨 일로 그렇게 슬펐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울적함’ 부문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기본값이 설정된 사람이 나인가 싶다.


2006. 6. 4.

사람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시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미래에 목매고 있거나.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고 슬픔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과거에 누군가가 행했던 일이 초래한 현재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마치 나비효과처럼 의도하지 않은 현재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계속 후회하고 분노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간에 관계없이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함께 그때의 잘못된 선택이 현재는 물론 미래의 다가올 시간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미래에 목매고 사는 것은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혹은 희망의 결과이다. 원치 않는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단지 앞으로 다가올 어느 날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제물로 삼는 것은 희생되는 현재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과연 이런 갈고리에 걸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만약 그랬다면...’이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삶은 고통의 연속
끔찍한 기억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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