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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Sep 03. 2019

Her Story -〈르뢰 영감의 유언〉의 하녀

연희대학교 영문과 입학 며칠 후, 신입생 환영 모임이 있으니 <자연장 다방 紫煙莊 茶房 >으로 오라는 공지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이 다방은 경향신문 빌딩 건너편, 현 강북 삼성병원 자리 즈음에 있던 유명한 찻집으로 뜻풀이를 하자면 ‘자주색 연기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나는 이름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아지트로 삼고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명소였다. 이화여자중학교 시절에도 농구 훈련 후 이상훈 코치, 임원식 선생님과 농구부원들이 들락거렸던 곳으로 나에겐 이미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이었다. 신입생 환영회를 ‘문화 예술인들이 모이는 유명한 공간에서 하네?’라며 자연장으로 향했다. 박술음 교수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우리보다 2년 위인 3학년의 차범석 선배가 환영식을 이끌었다. 후에 연극계의 원로 연출가로 이름을 남길 바로 그 차범석 선배였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차 선배가 빨간 줄이 세로로 그어진 편지지에 뭐라고 마구 쓰더니 나에게 불쑥 내밀었다. 대사였다. 즉석에서 짧은 시나리오를 급조할 정도로 차 선배는 연극에 천재적 능력을 타고났었나 보다. 엄마와 딸이 대화하는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줄무늬 편지지에 적힌 대로, 그 쪽대본으로 그 자리에서 연극을 해보라고 했다. 내심 흥미가 동하긴 했지만 연극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휙휙 써댄 대본을 보고 즉석에서 엄마 역을 하라니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다. 딸 역할은 친구 박화영에게 하라고 했다. 초면인 선배 앞에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난감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안 한다고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거역할 수 없는 선배의 지시대로 우리는 어설프게나마 연기를 했다. 연극에 소질이 조금은 있었는지 아니면 인간은 모두 그런 능력을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잘해냈다는 차범석 선배의 평을 들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한경 언더우드 박사님이 미국으로 귀국한다는 소식과 함께 학교에서 환송회를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때 차범석 선배가 환송 연극을 무대에 올리자며 찾아왔다. 무대라니. 연극은 전혀 해본 적도 없는 데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더구나 첫 시험이 코앞이라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내가 연극을 어찌하냐며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더욱이 대학에서는 농구도 그만두고 다른 특별 활동도 접고 공부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참이었다. 차 선배는 언더우드 박사님의 송별회이니 꼭 해야 한다고 우겼다. 대본은 자기가 맡을 것이고 연극을 올릴 준비를 하라고 밀어붙였다. 

프랑스 작가 로제 마르탱 뒤 가르(Roger Martin du Gard)의 <르뢰 영감의 유언>이라는 작품이었다. 남학생 세 명, 여학생 한 명이 출연하는데 하녀 역을 맡은 나는 무대에 오르는 단 한 명의 여학생이었다. 소품도 홀로 집에서 준비했다. 별걸 다 해봤다.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는데 하녀 역할에 어울릴 만한 언니의 까무스름한 치마와 흰 에이프런을 구해서 걸치고 막이 오른 무대로 나섰다. 사람이 무척 많이 앉아 있고 관객석이 그냥 까맣게 보였다. 처음 무대에 서니 한겨울 북풍에 창호지 떨듯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만 했다. 어찌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뜨거운 박수 소리에 정신이 들면서 ‘아! 해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관객석에서는 ‘목소리가 좋다’ 거나 ‘쟤가 어느 과 누구냐’고들 물었다니 결과는 괜찮았나 보다. 나도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자신감으로 연결되었다. 이화여자중학교 때도 연극부가 있었는데 농구부, 미술부, 그리고 간간이 육상부로 활동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쳐다보기만 하고 시도하지 못했다. 처음엔 할 수 없다고 마다 했지만 한 번 무대를 경험해보니 연극의 새로운 재미가 상당히 유혹적이었다. <유관순> 영화로 스크린에 이어 연극무대에 섰던 체험을 기억 속 나의 개인 소사(小事)에 기록했다. 

소학교 6년, 중학교 6년 내내 그러했지만 대학에 오니 배우고 싶은 것이 더더욱 많아졌다. 세상은 흥미로운 문물로 가득했고 접하고 시도해볼 가치가 충분했다. 대학 생활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던 나는 스펀지처럼 한껏 흡수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해 1949년은 그랬다. 아름다운 꿈의 터전이던 연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1년 동안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바로 1년 후, 천지를 뒤흔들며 몰아칠 검은 폭풍우에 떠밀려 다시는 그 캠퍼스 강의실에 앉지 못하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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