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상정 댕그마니 Mar 13. 2022

호이안, 모녀 요리 학습

시장에서 식재료 배우고 세 가지 요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둥 둥 둥…’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북소리, 명절 맞이 행사인가 싶어 강가가 바로 보이는 호텔 테라스로 내려오니 마을 사람들끼리 조정 경기를 하고 있다. 어제 이른 아침 같은 시간, 6시 이전에 들린 북소리가 사자 놀이패가 아니라 이 조정 경기를 고무하는 고수(鼓手)의 응원과 흥분의 울림이었다. 

조기축구회처럼 새벽부터 동네 아저씨들의 조경 시합.

만보계는 없지만 어제 걸은 걸음 수는 족히 만보를 넘고도 남았을 것이다. 측정 단위를 벗어나 마음과 몸이 느껴지는 대로 따른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줄곧 하루에 만 보, 2만 보 이상 걸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하는 내내 교통수단으로써 의존하는 ‘두 발로 걷기’에 조금씩 익숙해질 것이다. 골목길을 누비고 주택가의 낮은 담장 안에 대한 호기심에 기웃거렸다. 이방인의 여행의 한계는 분명하다. 현지 사람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삶과 일상을 좀더 알고 싶지만 눈앞에 보이는 낮은 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호기심도 그 선에서 멈춘다. 

등불과 노란색 도시 호이안.

오후 초, 요리 교실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엄마와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담 너머에서도 다 보였다. 호텔로 들락날락하며 걸어 다니면 국적을 정확하게 알아 맞추는 동네 주민들이 어설픈 우리말 발음으로 “안녕”이라고 말을 건네지만 미소와 인사말 외에 더 이상의 소통으로 진전되지는 않는다. 평범한 하루, 일주일의 일상 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접점을 찾고자 인터넷을 통해 요리 교실을 신청했다. 

강에 면한 골목길 빨래대의 빨래들로 옷 주인을 상상해본다. 

오늘은 베트남 선생님으로부터 요리도 배우고 장터에도 가는 날이라 나는 기대가 컸다. 아이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자고 했고 아이는 요리하기보다 요리 먹기에 더 관심이 많다. 반나절을 인도할 가이드를 따라 호이안 시내 중심에 있는 중앙 시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시장으로 도시 인근 지역의 15만 주민들에게 생필품과 식재료를 공급하는 호이안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부두에 면한 생선 가게들. 설을 맞아 황금을 의미하는 노란 국화 화분을 매대에 놓았다.

2월 설 명절에 황금처럼 노란 꽃, 복을 기원하는 노란 국화 화분이 어물전 각 점포의 나무 도마 위며 생선 박스 위에 노란 수를 놓았다. 안정, 안녕, 복을 기원하는 연약한 인간의 애절한 마음이 아름다움이 되어 고스란히 전해왔다. 

가공식품부터 채소, 과일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들었다.

점포와 상인들을 스쳐 지나가며 음식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달걀과 거위 알의 크기를 비교해 봤고, 간장과 생선 소스, 초록 채소와 푸성귀들, 그린 파파야와 바나나 꽃, 코코넛 과자와 새우 뻥 과자 등 먹거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영국인 두 명과 우리 모녀는 어물전을 나와 부두에 섰다. 오늘 요리를 배울 멤버는 모두 네 명이다. 부두에 대기 중인 투박한 나무 배에 올랐다. 

계란과 거위 알 크기를 비교해 주는 가이드.

호이안 중심에서 넘실대는 투본 강을 거슬러 40여 분 정도 올라갔다. 푸른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잔잔하게만 보였던 강물은 크게 일렁대고 차지게 양쪽으로 갈라졌다. 우리가 탄 배와 강 위에 떠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배의 꼭대기에서는 베트남 붉은 국기 ‘금성홍기’가 바람을 따라 세차게 흔들렸다. 투본 강 위의 푸른 하늘에 붉은 기가 흐드러지게 나부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뒤로 뒤로 흩날렸다. 배는 우리가 머무는 강변의 노란색 호텔 앞을 지나쳤다. 

투분 강의 넘실대는 강물 위로 수많은 목선이 달리고 있다.

요리 교실로 가기 위해 목선을 버리고 대나무 바구니 배로 갈아타고 강과 연결된 늪지 같은 물길로 들어서야 했다. 우리의 목선이 부두로 가까이 갈수록 대형 스피커에서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싸이의 목소리가 자연의 모든 소리를 삼켰다. 우리나라 관광객을 위해 특별히 K-pop을 틀어놓는다고 했다. 

대나무로 엮은 가벼운 이동 수단.

우리가 탈 바구니 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따라 연휴로 인해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서 바구니 배를 모두 타고 나가자 싸이의 목소리도 사라졌고 자연은 다시 제 소리를 냈다. 겨우 구해 가이드까지 다섯 명이 올라탄 대나무 바구니 배 2대의 노를 저어 사람 키의 두 배는 넘을, 키 큰 물풀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 요리교실로 이어지는 개인 주택의 나루터 계단에 도착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로맨틱한 장면 속을 내가 걷는 듯했다. 

4명의 외국인 학생을 위해 준비된 재료들.

요리를 배울 공간은 상당히 큰 규모의 주택 1층 홀이다. 홀 벽의 반은 뚫려 있어 바람과 고양이가 들락거렸다. 더운 남쪽의 집 구조는 대개 이렇다. 거실, 홀, 마루… 어떤 명칭이든 그 끝에 서서 팔을 휘저으면 자연과 닿고 자연을 집안으로 확 끌어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의 학생은 단출하게 네 명이므로 홀의 긴 테이블 하나에만 도구와 식재료들이 분량대로 미리 담겨 있었다. 


스프링 롤, 새우 넣은 샐러드, 반세오를 만들기 위해 셰프를 따라 칼질을 하고 재료를 썰었다. 뭐든 잘 먹는 아이에 비해 나는 비린 젓갈류나 휘시 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네 입맛에 따라서 더 넣고 덜 넣고…”라며 강한 베트남 억양의 영어로 랩을 하듯 재미나게 가르치는 셰프를 따라 하다 보니 휘시 소스의 ‘바로 그 맛’에 끌리고 말았다. 끓이고 볶은 후, 우리들만의 소박한 ‘만찬’을 시작했다. 두 말하면 잔소리로 음식은 맛났다. 

어둠이 내린 뒤 육지를 통해 호텔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배를 타고 투본 강을 따라 일부러 돌아가며 강 양 기슭의 경치, 강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금성홍기를 단 어선들을 감상하게끔 배로 이동한 것과 달리 돌아오는 길에는 차량을 이용했다. 사람이 사는 나지막한 집들, 나무, 강물이 한데 어우러져 어둠 속에서 선 굵은 지평선을 이루었다. 

마을 골목길 곳곳을 장식한 등불. 등불의 도시 호이안.

새로 배우는 외국 요리 이름은 단번에 머리에 입력되지 않는다. 베트남어나 중국어 명사는 더욱 그러하다. ‘요리 이름이 뭐였지’ 하며 자꾸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읽혔다. 뭔가 엇박자가 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굳이 캐묻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고 잠을 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2월. 하노이 도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