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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상정 댕그마니 Mar 13. 2022

시엠레아프. 급성 위염.

아이의 급성 위염으로 호텔에서 꼬박 보낸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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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에 시엠레아프에 도착했다. 여권에 적힌 나의 생년월일을 보고 호텔 직원들이 내 얼굴을 그린 케이크에 촛불을 켜 들고 저녁에 우리 방문 앞으로 올라왔다. 케이크는 호텔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시내 중심가에 가서 직접 맞춘 것이라고 했다. 첫날은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했다. 우리는 시엠레아프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앙크로와트를 여유 있게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씨엡립 시내에 가서 직원이 특별히 맞췄다는 생일 케이크.

3월 2일. 아이가 아파서 끙끙댔다. 나의 트렁크에는 의사 선생님들이 처방해 준, 늘 복용하는 약들과 만약의 사태에 복용할 진통해열제부터 지사제에 이르기까지 약들이 들어차 있었다. 배가 아프다고 하여 소화의 문제인가 해서 소화제를 먹였다. 밤이 되어도 차도는 보이지 않고 사지는 냉기가 감돌았다. 점차 더욱 심해졌다. 식음을 전폐하고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상비약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듯했다. 마침 시엠레아프에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파견 나와 학교와 도서관을 운영하며 교육 사업을 하는 지인인 선교사님께 연락을 취해 아침에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선교사님은 내과 의사로 은퇴 후 역시 의술을 펼치며 역시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는 우리나라 의사 선생님이 호텔로 왕진을 오도록 연결을 해놓았다. 하루 종일 굶었다. 위급할 때 나의 엄마가 해주었듯이 따뜻한 설탕물, 차 물을 끓여 먹였고 사지를 주무르며 마사지해 주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어찌할지는 모른다. 보고 자란 대로 행동했는데 아이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8시, 의사 선생님은 출근 전에 왕진 가방을 들고 호텔로 오셨다. 진단은 급성 위염. 프놈펜에서 스스로 방어하다 보니 지나치게 신경을 쓴 탓이다. 어리바리하게도 보이는 엄마까지도 보호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발현했나 보다. 시엠레아프에 와서 마음을 풀어놓는 순간 위염이 도졌다. 호텔에 특별히 이야기하여 흰 죽을 올려왔지만 아이는 한 술도 뜨지 못했다. 

캄보디아 느낌을 완전히 살린 호텔 인테리어.

이틀, 사흘, 나흘… 우리는 호텔방에만 있었다. 나흘 째. 조금 차도를 보였다. 손끝, 발끝에 온기가 돌아왔다.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히 식사하기로 했다. 호텔 직원들도 모두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앙코르와트에 가려던 계획은 모두 연기했다. 


화색을 되찾은 오후에 나의 생일을 기념하여 ‘라플스 호텔(Raffles Grand Hotel d’Ankors)’에 차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인도차이나의 랜드마크인 이 호텔은 시엠레아프 사방 어디에서든 보였는데 건물이 줄어들었는지 도대체 보이지 않았다. 15 에이커나 되는 정원에서 수확한 채소, 과일, 허브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이 호텔은 프랑스 식민시대 스타일의 건축 양식으로 1932년에 문을 열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라플스는 이제는 더이상 가장 큰 건물이 아니었다.

크메르 식 에프터눈 티.

우리는 크메르 식과 프랑스 식 에프터눈 티를 주문했고 아이의 건강 회복과 나의 생일을 자축했다. 샴페인을 토스하고 건강을 기원했으며 다시 웃음을 찾았다. 이만하기가 다행이다. 병고만 없다면 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여행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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