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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Jun 27. 2023

예쁜 쓰레기로 만든 풍경

Desk

*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따개비가 잔뜩 붙은 부표와 슬리퍼, 녹아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그물, 돌처럼 둥글둥글하게 풍화된 스티로폼 조각들. ‘뉴 락’ 프로젝트로 알려진 미술가 장한나의 책상 위에는 그가 바닷가에서 주워온 쓰레기로 가득하다. 장한나 작가는 우리가 미세 플라스틱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이한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길 원한다.



구입 시기

2015년 선배의 작업실에서 물려받은 튼튼한 책상, 2016년 문화역 서울 전시 후 입양한 검은 책상, 2021년 상수동 작업실 앞에서 입양한 합판 책상.


책상과의 시간

바닷가에서 채집한 뉴 락 표본들을 올려놓고 배열한다. 뉴 락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컴퓨터에서 확인하고 편집한다. 논문과 기사를 읽으며 온갖 정보도 수집한다. 요즘은 그림을 자주 그린다.


책상 앞 루틴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앱 ‘미세미세’를 확인한 뒤 공기가 좋으면 창문을 열고, 좋지 않으면 공기 청정기를 튼다. 작업 전에 오늘 해야 하는 작업을 파악한 뒤, 작업에 맞는 도구들을 세팅한다. 디지털 드로잉, 펜드로잉, 연필드로잉, 사진 촬영 및 편집 등 다양한 작업을 한다.


몰입하는 주제

바닷가에서 풍화작용을 겪어 닳고 닳은 플라스틱 쓰레기인 ‘뉴 락’ 그리고 심각한 환경오염 지역에서 살아남도록 유전자가 진화한 동식물들.


성장의 원동력

나의 몸과 마음을 더 아끼고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 또한.





장한나 작가는 카메라와 포대자루, 장갑을 들고 전국 팔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는다. 그가 천착하는 것은 오랜 세월 풍화를 겪어 본모습을 잃어버린 괴이한 플라스틱 조각들이다. 이 변형 플라스틱을 모은 ‘뉴 락’ 시리즈를 통해 쓰레기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에 입주했다. 상수동에 있던 6평 남짓한 작업실보다 훨씬 넓은 이곳에 책상을 3개나 들여놓았다. 그 위에 바닷가에 굴러다니던 쓰레기들이 감각적으로 전시돼 있다. 그가 고른 쓰레기들은 미적으로 아름답다. “이 오브제들에 ‘뉴 락’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예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소비하고 싶은 예쁜 이미지에 끌리죠. 저마다의 미감이 있는 쓰레기를 수집해 미학적으로 전시하는 건 그래서예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에게 가 닿고 싶어요.


장한나 작가의 ‘뉴 락’들은 종류에 따라 구분돼 있다. 풍화를 겪어 둥그렇게 깎인 스티로폼, 햇볕에 녹아 모양이 변형된 낚싯바늘, 플라스틱 안에 새로운 생명체가 자리를 잡으며 하나의 새로운 생태계, ‘플라스틱스피어’를 형성한 것들. 책상 위에서 그녀는 이 쓰레기들을 표본처럼 늘어놓았다가, 풍경처럼 세워 보기도 하고, 때로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최근에는 가로세로 약 1미터가 넘는 스티로폼 조각을 들고 왔는데, 그 안에 개미떼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는 것을 목격했다.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 된 적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요즘 그는 더욱 기이한 형상에 몰두하고 있다. ‘뉴 락’ 이전의 초기 작업인 ‘이상한 식물학’ 시리즈를 발전시킨 것으로, 원전사고나 중금속 유출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생태계에서 살아남도록 여러 세대를 거쳐 진화한 동물들을 그리는 세밀화 작업이다. “그냥 사진을 붙여 놓았을 때보다, 연필로 하나하나 그렸을 때 사람들이 더 주의깊게 보거든요. 수행성의 의미도 있어요. ‘뉴 락’ 시리즈 표본 전시를 할 때도 직접 샤프를 들고 전시장에 가서 캡션을 일일이 손으로 써요.” 호주의 납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어떤 종류의 참새는 50년, 5세대에 걸쳐 납 중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유전자로 변화했다. 체르노빌 근처의 개구리들은 색이 점점 검게 변했는데, 이는 멜라닌 색소를 점점 포화시켜 피부를 통한 방사능 피폭을 줄이기 위함이다.

개구리나 참새는 생애주기가 짧아 진화가 가능하지만, 생애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요지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 생각해요. 이렇게 자기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면 관심을 갖지 않거든요.” 그는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상악화 뉴스 중에서도 유독 공기와 관련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말한다. “공기가 가장 치명적이잖아요. 마음껏 숨쉴 자유가 사라진다는 게 너무나 압도적이고 슬픈 경험이에요. 최근에는 뉴질랜드의 환경이 좋기로 알려진 지역에서 공기 중에 엄청난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연구를 봤어요.




작업실 한 가운데에는 검은 책상이 있고, 그 위에 5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어린이미술관에 전시할 작품의 표본이 놓여 있다. 가로 세로 약 2M는 족히 돼 보이는 거대한 작업이다. 그 위에서 작가는 각 표본들의 위치를 섬세하게 조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열흘 정도 현장에서 세팅하기도 하거든요. 시간을 들여 세팅할수록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작업 앞에 머물러요. 신기해요. 처음엔 멀리 보다가 점점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풍경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의도했어요.” 이렇게 공을 들이는 작업의 이름은 “신풍경”이다. “전에 ‘뉴 락’ 시리즈를 수조 안에 넣어서 ‘신생태계’라는 작업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걸 바닷속 얘기라고만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아니라 땅 위에도 수없이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는 걸 다시 강조하기 위함이에요.”


작업실에 놓인 세 개의 책상은 모두 구입한 게 아니라 ‘입양’한 중고 제품이다. 하나는 2015년 문화역 서울에서 전시한 뒤 폐기 예정이었던 전시용 테이블이다. 다른 하나는 상수동에서 작업하던 시절,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을 주워왔다. “다리 부분에 나사 하나가 빠져 있었는데, 이사하면서 용달 기사님이 채워주셨어요. 완전 멀쩡해진 거죠.” 나머지 하나는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같은 작업실에서 선배가 쓰던 작업용 책상이다. 합판이지만 튼튼해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에 딱 좋다. 책상마저 업사이클링하여 쓰는 장한나 작가가 바로 그 책상들 위에서 자주 쓰는 도구들은 다음과 같다.





1. 카메라. 바닷가에서 ‘뉴 락’을 채집할 때,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둔다. 잘 보면 카메라는 소니 것인데 렌즈캡은 니콘 것을 사용하고 있다. 바닷가에 떠내려온 걸 주웠는데, 꼭 맞진 않아도 그럭저럭 쓰고 있다.


2. 다양한 드로잉 도구들.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가장 밝은 4H 연필과 샤프심부터 펜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도구들을 잘 세팅해놔야 그림 작업에 돌입할 수 있다.


3. 장갑. 오래된 플라스틱에는 유해물질이 많다. 맨손으로 집었다가는 각종 중금속에 노출될 수 있다. 때로 유리 섬유가 포함된 파편들을 만질 수도 있으니 ‘뉴 락’ 채집 시 꼭 장갑을 낀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풍경










Editor Kim Yerin

Photographer Maeng Mi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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