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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뷰 Nov 14. 2016

어쩌면 주술사들의 나라

welcome to MORROCCO

   두 달 간의 유럽여행을 로마에서 공항 노숙으로 마무리하고 이른 새벽 모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떤 정보도 없이 출발한 했기에 긴장할 법도 했지만 노숙을 한 탓인지 노곤하기만 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무섭게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이미 모로코 땅을 달리고 있었다.



   비몽사몽 정신으로 간신히 입국심사를 하고 공항에서 짐을 찾고 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은 300유로(약 35만 원, 약 3200 디르함). 통장에서 돌아갈 비행기 값을 빼고 쓸 수 있는 돈은 30만 원 정도. 이 돈으로 이 곳에서 얼마나 지낼 수 있을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보통 처음 발 밟는 도시에선 일종의 액땜이라 생각하고 가장 먼저 지갑을 여는 곳에서 일부로 바가지를 써준다. 그러나 당장 공항에서 구시가지까지 가는 택시비용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태라 얼마나 바가지를 쓰게 될지 걱정이었다. 그때 공항 전광판에 구시가지나 신시가지까지의 택시 비용이 나왔다. 여행객들을 위한 배려였다. 택시비는 70~100 디르함이라 적혀 있었지만 바가지 씌우기로 악명 높은 모로코에선 최저가란 없다. 마라케시에서 첫 지출은 택시비였기에 원 가격을 알면서도 120 디르함을 주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70 디르함만 계산했어도 충분히 올 거리 같아 조금 억울했다. 어쨌든 택시 아저씨는 내가 머무를 호스텔 주소를 보고선 찾기 쉬운 곳이라며 제마 엘프나 광장((Jemaa el-Fna) 한가운데 내려줬고 메디나 안으로 쭉 가면 된다는 한 마디와 함께 사라지셨다.


    메디나를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메디나는 결코 쭉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과거,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는데 사방팔방으로 골목과 골목으로 길이 이어진 탓에 지금은 길을 잃기 위해 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했으면 여행자들 사이에선 구글도 포기한 메디나라고 불리겠는가. 처음 온 여행객을 이렇게 두고 간 아저씨가 원망스러웠다. 더군다나 길을 찾아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모로칸들이 더러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메디나에 들어서기 전부터 살짝 긴장이 되었다. 이미 택시비로 나름의 액땜을 한 나는 더 이상의 자선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나름 머리를 굴려 늙은 장사치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이 방법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누구도 나의 주머니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출생 국가와 혼자 왔냐는 물음, 그리고 오늘 밤에 뭐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질문을 받았다. 물론 아주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여지까지의 여행으로 이 정도 질문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묻고 물어서 호스텔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며,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쯤 되자 이제는 차라리 삐끼를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여행기를 읽어 보면 길을 찾아 주겠다는 삐끼가 차고 넘친다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겐 길을 자진해서 찾아준다는 이는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길을 묻자 이번엔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에 내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고 있는 아이를 보며 얼마쯤 줘야 하나 고민하며 쫓아갔다. 정말 호스텔 문 앞까지 데려다준 아이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고민이 채 끝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아이는 내 손을 끌어 악수를 했다. 


“Welcome to MORROCCO”


   세상에.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그 아이는 문을 열어주고는 휙 가버렸다. 뒤늦게 땡큐 하고 외쳤지만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말인지 돈만 아는 모로코인으로 생각한 것 같아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겪지 않은 소문 때문에 낯선 이를 반기는 그 친절에 값을 매길 뻔했다.

분명 흐린날씨는 아니었다. 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날씨였다.


   무사히 호스텔에 도착해 체크 인을 하고 옥상에 올라가 전경을 보기로 했다. 내가 걸어온 골목들이 보고 싶었다. 두 달간 여행하면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길 여러 번이지만 도시보다 어두운 하늘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날이 흐린 것도 아닌데 잿빛으로 물든 하늘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 모든 열기를 그대로 땅에 쏟아 붓는것 같았다. 그 뜨거움에 골목 보기는 포기하고 방에서 쉬기로 했다. 그러나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켰음에도 영 시원해지지 않는 모로코란. 결국 잠을 포기하고 호스텔 주인장에게 지도를 받아 광장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주위의 장사치들이 날 보며 와보라고 소리친다. 그 외침을 애써 뒤로하고 광장으로 향했다. 호스텔에서 광장으로 가는 길은 들어오는 길에 비해 매우 쉽다. 광장이 넓어 그곳으로 가는 골목이 많기 때문이다. 무사히 광장으로 나가니 이 번에는 몸에 헤나를 새기라며 아주머니들이 날 붙잡는다. 혼자 돌아다니는 외국인에게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그 관심이 부담스러워 가장 가까운 오렌지주스 트럭 앞으로 갔다. 모로코의 오렌지 주스는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안 마셔 본 사람도 없고 한 번만 마신 사람도 없을 정도로 극강의 당도를 자랑하는 대표 주스다. 가격 역시 저렴하여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다. 아저씨는 나에게 손가락을 펴며 4 디르함이라고 말하고 조금 미리 갈아 놓고 얼음을 띄워 놓은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한 잔 주셨다. 우리나라 돈으로 450원쯤 되는 가격이었다. 조금 비위생적이라는 이야기가 돌지만 맛을 보면 그게 무슨 상관인지 싶을 정도로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5 디르함을 내밀면 1 디르함을 거슬러 주시는데 동전에 묻은 진득함에 아저씨의 하루를 잠깐 상상할 수도 있다. 


   오렌지 주스를 입에 물고 주위를 둘러보자 택시에서 내려 보지 못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리 소리에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뱀, 어깨에 원숭이를 앉혀 놓고 외국인들을 놀래 키는 아저씨, 중국의 블랙마켓을 통해 매매한 폰을 싸게 파는 흑 형들. 그뿐이랴. 어디서 날아오는 타는 냄새, 매연냄새, 각종 향신료 향이 콧속으로 순서 없이 날아든다. 잠시 그 향기에 취해 있으면 지금 서 있는 곳이 동남아인지 인도인지 모로코인지 모르겠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이 곳이 현실 세계가 맞는지도 의심될 정도이다. 마치 주술사들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만난 적 없는 각종 호객꾼들을 마주하면 환상만 가지기엔꽤나 피곤한 곳이라는 생각도 물 밀듯 밀려온다.


   사십도를 웃도는 더위의 모로코는 더위만큼 이나 존재감도 이리 강력한 걸까 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콧 끝에 맺히는 향들이 현실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와 본적 없는 오묘한 나라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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