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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뷰 Dec 02. 2016

나도 모르겠어. 모로코는

좋은 모로칸, 나쁜 모로칸

   에어컨이 있는 숙소에서 하루를 지냈음에도 밤새 온몸을 덮치는 더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몸을 물에 한 번 적시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모로코의 더위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피곤함도 더위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결국 지난밤, 호스텔에 찾아오는데 애 먹은 기억까지 떠올라 호스텔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호스텔에서 준비해준 오렌지 주스와 빵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할 일이 있었다. 유심 칩 구매와 사막투어 예약, 호스텔 알아보기 그리고 그 후 사막에 갈 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야 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는 충분히 길었다. 


   하나부터 열 까지 모두 현지인들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지나친 신뢰는 금물이다. 경계와 신뢰 사이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지고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 쉬웠다. 그리고 오늘 해야 하는 대부분의 일은 광장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말을 거는 호객꾼들 때문에 모로코를 피곤해하는 여행객들이 많지만 반대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여행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싸고 저렴한 유심칩을 구매하고(3G 5GB 유심 칩 포함 9유로 정도) 잠시 광장에 서 있으면 사하라? 사하라! 하고 외치는 호객꾼들이 몰린다. 그리고 그중 느낌이 좋은 사람을 붙잡으면 된다. 특히 각 투어 회사로 이끄는 호객꾼을 만나게 되면 좀 더 수월하게 예약할 수 있다. 나는 전 날 인터넷을 통해 투어의 적정 가격을 알아 놨고, 그중의 가장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옵션을 조사했었다. 그리고 호객꾼에게 그 보다 살짝 더 낮은 가격을 불렀고 그는 나를 알맞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운 좋게도 투어계의 스타트 업 회사를 만나 가장 저렴한 가격 보다도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조건에 좋은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게 도와줘 고맙다고 했다. 이 인사가 반가웠는지 아저씨는 호스텔도 알아봐 주겠다며 괜찮은 곳 몇 군데를 알려 주셨다.  단, 가격 흥정만은 내 몫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호객꾼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그 들의 지나친 관심은 사실 관광객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적어도 은인같은 사람들이었다.


밤의 제마엘프나 광장. 낮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객행위로 가득하고, 밤에는 오로지 관광객들을 위한 소리가 가득한 곳. 


    이제 사막에 가기 위한 채비만 남았다. 사막으로 가는 길은 멀뿐만 아니라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고 했다. 음식도 딱 식사 때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간식거리와 마실 것이 필요했고, 사막에 들어가면 바람을 타고 눈, 코, 입으로 날아 들어올 모래를 막기 위해 스카프도 필요하다고 했다. 스카프를 보고 있자니 모로코 전통의상인 칸두라와 질레바에도 눈길이 갔다. 왠지 제대로 입고 싶은 마음에 마음에 드는 옷이 나타날 때 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옷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옷들을 발견하면 값이 꽤 나갔고, 가격이 마음에 들면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가격대가 나올 때까지 이리저리 뛰었지만 가격 대비 괜찮은 옷을 찾지 못했고, 더 받으려는 자와 덜 주려는 자의 기싸움에 슬슬 지쳐갔다. 그러다 눈에 띄는 가게를 발견하고 재빨리 뛰어갔더니 주인장은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지 하던 일을 멈추고 구경하기를 허락해주었다. 정말 다행이게도 가격과 디자인 모두 마음에 드는 질레바를 발견했다. 그러나 남성용 의상이라 밑 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아저씨는 날 보고 씩 웃으시더니 가까운 수선집을 알려주셨지만 수선집은 벌써 문을 닫았고 수선 할아버지는 집에 갈 채비를 하고 계셨다. 나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본 수선집 할아버지는 날 한번 보더니 오케이를 외치셨다. 대신 재봉틀은 사용할 수 없으니 손으로 직접 해야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할아버지 맞은 편에 앉아 꿰매고 있는 모습을 지켜 봤다. 할아버지는 원래 옷 만드는 일을 하셨단다. 이제는 그 일을 딸이 대신하고 자신은 옷 수선을 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대화는 특별할 것 없었지만 안경너머로 내 눈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내 질레바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완성되었고, 결코 버릴 수 없는 질레바가 되었다. 



   내 모든 일정은 시계 바늘이 열한 시를 가리킬 때쯤 끝이 났다. 봐도 봐도 늘 새로운 메디나는 길고 긴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적들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디로 가도 도망칠 수 있도록 많은 골목을 만들었고, 한 번 들어서게 되면 쉽게 나갈 수 없도록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그 덕에 나는 또 길을 잃었고, 길 부심이 빵빵한 나는 이 길 위에서 납작히 겸손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발견할 수 있는 모로칸들의 친절. 결국 친절한 모로칸이 집 앞까지 바래다줬다. 그러나 이 친절에는 값이 매겨져 있었다. 내게 돈을 요구하는 모로칸 뒤로 어느 아주머니가 날 지켜보고 계셨고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도망가라는 말을 하고서는 창문을 닫아 버렸다. 애석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돈 몇푼때문에 도망가면 또 다시 길을 잃을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아 모로칸에게 주었지만 그는 동전은 받지 않는다며 지폐를 내놓으라고 했다. 답답한 심정에 한참 실랑이를 하니 그의 친구가 보다 못했는지 그냥 친구를 데려가 버렸다. 질레바 수선 할아버지를 만나 여행의 온도가 따뜻해지나 했더니 꼭 그렇지는 않나보다. 어느 하나 예측할 수 없는 모로코의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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