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는 마법사들의 도시 임이 틀림없다.
제마 엘프나(jemma el-Fna) 광장에 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을 따라 각종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고, 각종 악기 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타는 냄새, 매연 냄새, 각종 향신료의 향들. 피리소리, 북소리. 한참 감각에 의지하다 보면 언젠가 느꼈던, 맡았던 냄새, 들었던 소리에 여기가 어디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가본 적 있는 더운 나라들이 생각나는 걸 보면 사십 도를 웃도는 더운 나라들은 다 이런가 싶기도 하고, 혹은 지난 시간을 뒤적이게 하는 마법을 썼던가. 코 끝에 향이 맺히고, 귓가에 소리가 들려올 때 머릿속은 스스로 옛 시간을 뒤적였다. 머리가 다른 시간을 찾아 헤 매일 때 면 내 걸음도 목적 없이 걸어 길을 헤 매게 했다. 골목이 나오고 또 골목이 나오니 걸으면 걸을수록 더 깊이, 더 진하게 모로코를 누리는 것 같다.
광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각종 물건들은 물론이고 생전 처음 보는 악기를 가지고 어깨를 들썩이며 연주하는 아저씨들과 모로코스러운 헤나를 해주겠다는 아주머니들, 피리 소리에 몸을 흔들고 있는 뱀이 있고, 전통의상을 입은 아저씨 어깨에 앉아 관광객들을 놀리는 원숭이도 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광장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아프리카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피리소리에 몸을 꺼낸 뱀을 밟을 뻔했다. 뱀 주인이 모로코 말로 뭐라고 했지만 나를 혼내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조심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손을 뻗으면 원숭이도 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사진을 찍건 만지건 다 돈이 드는 것 같아서 피해 가려는데 원숭이 주인이 끈질기게 만져보라고 한다. 솔직히 만지기 싫은데 너무 권해서 미안한 마음에 손을 뻗는 척했는데 원숭이에게 한 대 맞았다. 그 후 모든 동물은 되도록이면 멀리서 구경하는 지혜가 생겼다.
광장을 서성이다 보면 모로칸들의 의상에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발목까지 오는 긴 후드를 입고 있는데 옷 모양이 다들 한 마법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모자 끝이 뾰족하고 발목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긴 옷인데 “질레바 diellaba”라고 부른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영화 <스타워즈>를 탄생시킨 조지 루카스 감독 역시 이 옷을 보고 영감을 얻어 영화 속 복장을 맞췄다고 한다. 너도 나도 질레바를 입고 생활하는 덕에 그들은 뭘 해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도 신비의 묘약 같아 보이고, 피리를 불어도 다른 마법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저녁이 되어 광장에 나가보니 질레바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뜨거운 해가 사라진 틈에 생긴 선선함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개중에는 여럿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는 무리도 있었는데 이런 무리들이 한 둘이 아니어서 마치 마법사 모임에 초대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마법사들은 각종 악기를 두드리며 리듬을 탔다. 어느새 사람들은 소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광장은 듣고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로코식 버스킹이었다.
그중 특별하게 느껴진 공연이 있었는데 오로지 북으로만 연주하는 버스킹이었다.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피리를 불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연주의 대부분은 북을 두드리는 것으로 공연을 완성시켰다. 흥겨운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멈춰 서서 공연에 집중했다.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도 있었고, 추임새를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객들은 카메라를 꺼내 찍기 바빴다. 북으로 기본 리듬을 맞추면서 그들은 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자신들의 언어로 흥을 이어갔다. 노래보다는 박자에 맞추어 큰 소리와 작은 소리로 읊고 이야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랩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 판소리 같기도 했다. 한참 흥에 취해 있을 때 공연을 보던 아주머니가 공연을 이끄는 사내에게 가서 귓속말을 했고, 귓속말을 몇 번 주고받더니 사내는 큰 소리로 다른 말을 뱉었다. 연주하며 곡을 읊던 이들은 일제히 그 말을 따라 했고 귓속말을 건네 준 아주머니는 두 손을 맞대며 뭔가를 빌었다. 어떤 의식처럼 보였다. 단순히 흥을 돋워주는 공연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공연은 아니었다 보다. 공연을 관람하던 이들 모두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고요히 지켜보기만 했다. 한 이십 분쯤 하더니 다시 자신들만의 공연으로 돌아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흥은 다시 이어졌다.
붉은 등으로 불을 밝힌 광장에서 야시장의 음식 냄새와 연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온갖 악기의 연주가 귀를 두드리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뭔가 홀린 듯 이 세상이 아닌 느낌이다. 마라케시는 마법사들의 도시 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