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과 숲에서 다시 만난 소명과 욕망
오늘 아침, 예고도 없이 Mac OS가 업데이트됐다. 별 의미 없을 변화처럼 보였지만, 새로 등장한 Mac OS Sequoia 15.0의 배경 화면이 나를 붙잡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숲. 단순한 배경화면이 아닌, 나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숲이었다.
그 화면을 보며 떨림이 일었다. 나는 한참 잊고 있던 소명을 떠올렸다. 그 숲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농부가 과실나무를 돌보듯, 내가 돌봐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편으론 황당한 생각이다.
단지 화면 하나가 이런 파장을 일으키다니,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화면 속 숲을 보면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돕고자 했던 사람들, 기업들. 그들을 마치 잘 가꿔진 정원의 나무들처럼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화면은 정원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는 독립적인 존재들, 숲 속의 나무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 안에는 나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기 자라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적절히 돕는 농부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웠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감정이 폭발했다. 단순히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울림은 깊고 강렬했다. 일상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찾아온 이 화면이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나는 알았다.
우연히도, 나는 뉴욕에서 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 숲을 ‘뉴욕에서 만난 숲’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다. 그러나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이 숲이 나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신호를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그런 경험이 있었다.
십여 년 전, 한국의 방바닥에 누워 타인의 꿈을 이루어 주면 내 꿈도 이루어질 거라는 깨달음이 내 뇌를 관통한 날. 오늘의 울림은 그때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나는 다시금 앞으로 걸어갈 길을 떠올렸다. 숲 속의 나무들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성장을 완성한다.
내 한국 이름은 농부 준에 빛날 환이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고 했던가. 나의 이름 속 ‘농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 세상을 보는 철학이다.
그러나, 나는 농부이지 자원봉사자는 아니다.
나는 그들이 숲 속 나무처럼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고 돌봐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 역시 무언가를 얻고 싶은 욕망이 있다. 마치 작은 열매를 같이 수확하려는 농부처럼. 그 욕망은 이중적이다. 그들이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나 역시 그 안에서 빛나고 싶다는 욕망. 이것이 내 이름 속 두 번째 한자인 ‘빛날 환’이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을 돌보는 농부로서 빛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두 가지가 독립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 빛나길 바라는 욕망과 그들을 돕는 농부로서의 역할이 반드시 하나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
오늘, 나는 이 오래된 수수께끼 하나를 풀었다.
나의 본질을 드러내는 욕망과 사명. 나는 뉴욕의 컴퓨터 화면 속 천천히 움직이는 이 숲을 보며
다시 다짐한다.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것만이 나의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함께 자라 강한 숲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농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의 빛남을 염원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참고로, 이 글의 커버이미지는 맥 운영체계 Sequoia 배경화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