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소소한 행복
Dear 폴 & 찬우
이곳은 본격적인 할로윈 시즌에 들어섰어요. 지난 주 금요일엔 아이 학교에서 Trunk and Treat이라는 작은 할로윈 파티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제는 할로윈이 더이상 반갑지만은 않은 이벤트가 되어버렸지만 노는데 진심인 미국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차 트렁크를 한 껏 할로윈 무드로 장식하고 사탕을 나눠주는 사람들 또 저희처럼 코스튬을 차려입고 나가 '해피 할로윈!'을 외치고 사탕을 받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31일에는 마을 전체에서 현관에 전등이 켜진 집에서는 사탕을 나눠줄 것이라는소식에 한 껏 들떠있는 아이를 보는 것이 요즘 제 소소한 일상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번역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프로젝트의 킥오프를 기다리며 6년만에 처음으로 아이가 학교에가면 육아도 일도 비어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커리어의 시작부터 워킹맘이었다보니 늘 일과 육아를 병행했는데 이렇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니 처음엔 벙-쪄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두 분도 이런 비어있는 시간을 마주할 때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그래서 저는 날씨의 힘을 빌어 걷기 시작했어요. 매일 1만보 걷고있는데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선 아니고요, 제가 2017년에 포르투갈 길을 따라 순례자의 길을 매일 5시간 이상 걸으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걷다 보면 생각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보인다는 거였죠.
우리의, 특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들의 일상은, 늘 Task가 가득이잖아요. 시간의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어떻게든 생산적인 일과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한 것들, 또는 저처럼 육아나 기타 family event로 가득 채워놓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빈틈없는 시간 속에서는 생각하는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저는 10000보를 걷는데 평균 1시간 30분 정도 걸려요. 중간에 사진도 찍고, 아이가 쉬는 시간에 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커피도 한 잔 사고요. 그렇게 걷는 동안엔 그저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천천히 곱씹듯이 생각해보죠. 이번 주의 주제는 ‘사명’이었어요.
며칠 전, 문해일이라는 젊은 사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명’이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제 안에 자리 잡더라고요.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작은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폴이 말하는 겨자씨 같은 씨앗이 이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이번 주에는 ‘영어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답을 잠시 떠올렸어요.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영어를 아주 잘 해서 그 언어의 장벽을 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영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아직도 그 답이 명확하지는 않아요. 아마 다음 주도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갈 것 같아요.
다음 편지에서는 조금 더 명확한 답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요. 두 사람도 가을의 풍경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래요.
사랑을 담아,
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