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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에 대하여

사진에 진심人

가끔은 거울 속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분명 '나'인데,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하죠.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나'라는 이름의 정교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환경과 아버지,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나의 머리'라는 CPU를 과신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게임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규칙이 있습니다. '나의 욕망'이라는 퀘스트를 따라가고, '나의 잣대'라는 아이템으로 남들을 쉽게 평가합니다. '편향된 마음'이라는 특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죠. 가끔 들려오는 다른 유저들의 조언은 '분노'라는 스킬로 튕겨내고, '정당화'라는 무한 생성 아이템으로 나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참 편리하고 효율적인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엔딩은 조금 씁쓸합니다. 모든 스테이지를 완벽하게 클리어했다고 생각한 순간,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텅 빈 필드에 '외톨이'라는 이름의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들도, 세상도, 상황도 다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정작 게임의 주인공인 '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말이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게임의 리셋 버튼을 누를 기회를 얻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나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요란했던 게임의 배경음악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옵니다. 실패나 절망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으로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시간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분명하게 본다는 것은 눈을 찌르는 듯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더 이상 흐릿한 안경에 의지하지 않고 맨눈으로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 보겠다는 가장 용기 있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에 아직 답을 찾지 못하셨나요? 괜찮습니다. 어쩌면 정답은 '나는 매일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일지도 모릅니다. 그 서툴고 고통스러운 '인정'의 과정이야말로, 우리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지혜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요.


이제 더 이상 ‘나도 안다’, ‘나도 바보 아니다’라는 말로 혼자만의 방어적인 주문을 걸지 않으려 합니다. 정작 내가 나를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질문 앞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침을 튀기고 혈압을 올렸던 그 익숙한 교만과 이제는 작별하려 합니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용기가 필요한 때 입니다. 똑같이 살면 내일도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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