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지능
저는 꽤 오랫동안 '적는 사람'이었습니다. 6년이나 플랭클린 다이어리를 끼고 살았고, 지금도 스마트폰엔 좋다는 투두(To-Do) 앱이 종류별로 깔려 있습니다. 아침마다 그 예쁜 앱을 켜고 할 일을 비장하게 적어 내려갑니다. 그리곤 생각하죠.
'아, 오늘도 열심히 살 준비가 되었어.'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열심히 썼는데, 열심히 정리했는데, 하루 끝에 남는 건 '했다'는 안도감보다는 '해야 하는데'라는 부채감뿐입니다.
저는 쓰고 있었지만, 사실은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저 애만 쓰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할 일(To-Do)'과 '진짜 하는 것(Doing)'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을요.
우리는 자주 착각에 빠집니다. 책상을 깨끗이 치우면, 성능 좋은 노트북을 사면, 신상 다이어리를 펼치면, 구독료를 내고 일정 관리 앱을 결제하면, 곧바로 실천이 뒤따를 것이라는 착각 말입니다.
하지만 '실천'은 준비 운동이 필요 없습니다. 실천은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이고, 하기 싫은 마음을 깨부수는 파격이며, 두려움 속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진짜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떠벌리지 않고, 앱을 고르는 데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움직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결과로 증명합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의 뇌가 '값싼 도파민'에 절여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튜브 쇼츠, 자극적인 뉴스, 끝없는 먹방과 남의 이야기들...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느끼는 그 찰나의 자극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무엇이 나아졌니?"
한 번뿐인 인생이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의 뇌는 쓰레기통처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일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조용한 혁명을 시작하려 합니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영상에는 적극적으로 '관심 없음'을 누르겠습니다. 소비하는 즐거움 대신, 생산하는 괴로움과 그 뒤에 오는 묵직한 회복을 선택하겠습니다.
말과 계획으로 쌓은 성은 쉽게 무너집니다.
이제 화려한 '계획표' 대신, 투박한 '실행'을 선택합시다. 나를 위한 진짜 환경 설정은, 앱을 다운로드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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