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지능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 참 좋은 말이죠? 노래 가사처럼 흥얼거릴 땐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지나간 일'이 오늘 밤 이불속까지 쫓아와 말을 걸면, 낭만은커녕 식은땀만 흐릅니다.
물리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압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몸은 여기 2025년 서울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그때 그 시절, 그 실수, 그 후회 속을 서성입니다. 아무리 베어내도 비 온 뒤 쑥쑥 자라나는 마당의 잡초처럼, 과거의 기억은 끈질기게 내 현재를 덮쳐오곤 했습니다.
처음엔 도망쳤습니다.
"다 잊었어, 상관없어"라며 짐짓 쿨한 척 스스로를 속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더 길어지더군요. 상처를 덮으려 할수록 덧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도망치는 대신,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그 잡초 밭에 털썩 주저앉아보기로 한 것이죠.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 생각보다 꽤 아프고 꽤 무서운 일이더군요. 때로는 깨지고 상처받으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자책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그 감정들이, 역설적이게도 내가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였다는 것을요.
우리는 흔히 과거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가 지금도 힘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라는 녀석에게 "너는 나를 괴롭힐 자격이 있어"라고 권력을 쥐여준 건,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과거가 족쇄가 될지, 성장의 발판이 될지는 전적으로 '오늘의 나'에게 달려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과거는 결코 현재의 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멈춰버린 데이터지만, 나는 지금도 매일매일 새로 쓰이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불쑥 과거가 찾아오나요?
그렇다면 문을 활짝 열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왔니? 하지만 이 집의 주인은 나야. 넌 손님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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