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지대 삶을 지운다.

데이터 인문학

나는 옷장을 열 때마다 묘한 안도감을 느낍니다. 흰색, 검은색, 회색, 그리고 베이지색. 튀지 않고, 어디에나 잘 묻어가며,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을 안전한 색들입니다.


"가장 무난한 게 제일 편해."


입버릇처럼 하던 이 말이, 사실은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편한 옷을 고른 게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한 사람, 거슬리지 않는 풍경의 일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겁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감시당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닐까? 중심 없이 흔들리는 나를 숨기기 위해,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인간의 뇌는 참 낡고 겁이 많습니다. 아주 먼 옛날, 무리에서 쫓겨나는 건 곧 죽음이었기에 우리 뇌는 '사회적 비판'을 칼에 베이는 '물리적 고통'과 똑같이 느끼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색을 지웁니다. (한국은 더 심각합니다.) 특히나 모든 실수와 다름이 기록되고 박제되는 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그 두려움, 정말 실체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느끼는 그 공포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색을 낸다고 해서, 내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위험은 평생 남의 눈치만 보며 '나'라는 존재를 희미하게 지워가다, 결국 아무런 색도 남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는 것 아닐까요.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묘한 용기가 생깁니다. 나의 색을 찾는 일은 이기적인 고집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을 말하는 일은 불화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명확할 때, 우리는 남에게 휩쓸리는 대신 진정으로 '어울릴' 수 있습니다. 무조건 맞추는 건 굴복이지만, 내 색을 가지고 남의 색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생'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타인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나를 바라보고, 나의 기준으로 나를 검열하며, 그렇게 다듬어진 '진짜 나'를 세상에 내놓는 과정입니다.


오늘, 나는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조금은 낯선 색의 셔츠를 꺼내 보려 합니다. 남을 위한 배경이 되기를 멈추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듯, 입버릇처럼 쓰던 '회색 언어'도 갈아입으려 합니다. 남이 무엇을 물어보건 나는 자신 있게 마침표를 찍을 것입니다.

"음식이 정말 맛있는 것 같아요..."라는 추측 대신, "이 음식, 진짜 맛있어요!"라는 확신으로.

"그런 것 같아요..."라는 도피 대신, “그렇습니다."라는 긍정으로.


말을 뱉는 입은 분명 '나의 것'인데, 정작 그 말속에 '나'는 없었던 시간들과 작별하려 합니다. 내 느낌에 대한 확신, 그것이 곧 나를 지키는 가장 선명한 색깔일 테니까요.

IMG_2780.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결국 교육이 회색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이"

©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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