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계절을 건너는 중입니다

데이터 인문학

퇴근길, 습관처럼 주민센터 앞 게시판 앞에 멈춰 섰다. 무언가 기대해서가 아니다.


게시판은 화려했다.

'청년 취업 지원', '신혼부부 주거 안심', '어르신 돌봄', '경력 단절 여성 지원'... 좋은 나라다. 저 포스터 속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느슨해진 넥타이를 고쳐 매며, 그 촘촘한 그물망 사이에서 '나'를 찾아보았다. 눈을 씻고 봐도 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서류상 나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저 빼곡한 복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납세자'이자, 묵묵히 버텨야 하는 '기둥'으로 분류될 뿐.


통계청 데이터는 내가 소득 상위 구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데이터에는 내 통장을 스치듯 안부만 묻고 사라지는 아파트 대출금, 아이의 학원비, 부모님 요양비가 찍히지 않는다. 정부가 보는 나는 '중산층'이지만, 내가 마주하는 나는 속이 텅 빈 채 껍데기만 남은 '채무자'다. 사회는 이 명백한 모순을 모르는 척한다. 아니, 관심이 없다.


지난달 명예퇴직한 친구 녀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야, 구청에 갔더니 내가 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사지 멀쩡하니 공사판이라도 가라는 눈빛 같더라. 평생 세금 내며 살았는데... 막상 벼랑 끝에 서니 뭐 배신감만 든다."


우리는 '약자'가 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세대다. 어릴 땐 "남자가 울면 못쓴다" 배웠고, 커서는 "가장 이고아빠고 남편이니까 참아야 한다"라고 배웠다. 그래서 아파도 비명을 삼킨다. 약자라고 인정받는 순간, 보호받는 게 아니라 도태된 수컷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다. 50대 남성 고독사 1위라는 뉴스는, 그래서 남의 일이 아니다. 실직, 이혼, 질병... 그중 하나만 삐끗해도 나는 순식간에 저 도시의 불빛 밖으로 밀려날 것이다. 아주 조용히.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선다. 거실은 조용하다. 아내는 아이 방에서 나오지 않고, 닫힌 방문 틈으로 낮은 말소리만 새어 나온다. 나는 식탁 구석에 앉아 냉동실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북어포 몇 점을 꺼낸다. 맥주 캔 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까 봐 조심스레 딴다. 차가운 탄산이 목을 긁으며 넘어간다. 시원하다. 아니, 쓰다. 한 캔 더 하고 싶지만, 닫힌 방문을 보며 그만두기로 한다.


오늘 내가 삼킨 건 맥주가 아니라 세상의 무관심이었을까. 그래도 가족의 눈치를 보는 이 식탁 귀퉁이가 밖보다는 낫다.


화장실 거울 속에 나란 놈이 있다. 주름은 깊어졌고 희끗한 머리카락은 힘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일 아침이면 나는 다시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 잘 다림질된 옷을 입고 현관을 나설 것이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행정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년의 사내는 아프지 않을 거라는, 아파서도 안 된다는 사회의 잔인한 '관점'이 만든 감옥이었다.


일기장을 덮으며 펜 끝으로 꾹 눌러 적는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다. 다만, 울 곳을 찾지 못해 계속 달리고 있을 뿐이다." 욕이 치민다.

IMG_2962.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공평을 바라는건 욕심일 수 있다. 공평의 공식을 사회는 모르기 때문이다"

©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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