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춤, 가장 정직하고 강인한 마음의 선언

데이터 인문학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봅니다. 어떤 이는 나의 시선이 닿자마자 황급히 바닥으로 눈을 떨구고, 어떤 이는 잔뜩 날 선 공격적인 눈빛을 쏘아보기도 합니다. 그 엇갈리는 시선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속아왔던 거대한 <거짓말>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른 앞에서는 눈을 깔아야 한다." "눈을 똑바로 뜨는 건 건방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미덕이라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나의 진심을 들키지 않기 위한 포장이자, 스스로를 '을'의 위치에 가두는 굴종의 제스처가 아니었을까요? 땅을 보고 걷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읽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고, 그 침묵 속에서 진실은 왜곡되었습니다.


잘못된 유교주의적 '시선 피하기'과거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 하위 계층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심리적 무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관습은 결국 상하 관계를 고착화하고, 눈을 가림으로써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해 왔기 때문입니다.


마스크 하나로 온 세상이 단절되었던 지난 코로나 시절을 기억합니다. 입과 표정이 가려진 답답한 시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장 깊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눈가의 미세한 떨림, 찰나의 기쁨과 슬픔. 그 뜨거운 <감정의 전이>를 통해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눈이야말로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가장 투명한 창이라는 사실을요.


데이터를 읽는 저는 이것을 과학으로도 설명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것이 있어, 타인의 표정을 볼 때 마치 내가 느끼는 것처럼 뇌가 반응합니다. 눈을 피한다는 것은 이 거울 뉴런의 연결을 의도적으로 끊는 행위입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대한 <데이터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죠. 즉, 눈을 보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공감 능력의 차단'인 것입니다. (본인과 상관없다, 피곤하다, 미안하다, 하기 싫다, 불필요한 감정 책임 싫다 등등의 이유…)


물론 세상에는 따뜻한 눈빛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이유 없는 적의나 오해로 가득 찬,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예전의 나라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라며 고개를 돌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회피는 평화가 아니라, 상대의 분노를 정당화시켜 주는 비겁함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나를 향한 적의조차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봅니다.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당신의 분노가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적대하지 않지만, 결코 물러서지도 않습니다."


이 무언의 선언을 담아 고요히 응시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활활 타오르던 상대의 적의가 나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부딪혀 갈 길을 잃고, 당황스러움으로, 그리고 마침내 차분함으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최초의 적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나의 단단한 시선이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당당함이자, 상대를 존중하는 어른의 대화법이 아닐까요.


길가에 핀 꽃을 보듯, 담장 위의 고양이를 보십시오. 그들은 눈이 마주쳤다고 해서 억지로 피하거나, 이유 없이 주먹을 날리지 않습니다. 계산하고 숨기려는 인간만이 눈을 피하는 부자연스러운 짓을 합니다. 서구 사회에서 눈 맞춤(Eye Contact)이 '당신과 나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선언인 것처럼, 우리도 이제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땅을 보며 걷기엔, 우리가 나누어야 할 진실이 너무나 많습니다.


떠올려 보십시오.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볼 때, 나의 아이와 눈을 맞출 때,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그때 우리는 그 눈빛 하나라도 놓칠세라 최선을 다해 눈에 담으려 하지 않았던가요? 그 눈에는 위계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오직 사랑과 존재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고개를 듭니다. 따뜻한 공감이 필요할 땐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대를 안아주고, 부당한 적의 앞에서는 강인한 눈빛으로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나의 눈은, 그리고 당신의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눈의 관점을 갖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지 자아분석이 잘 된 사람이 포용의 강인함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남이 이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한다는 식의 내 삶을 남의 기준으로 자꾸 변경시키지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힘이 들고 내심 불편하지만, 분명히 해야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IMG_3068.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내 그림자에만 빠지지 말자,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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