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딥 스위치

데이터 인문학

보이지 않는 흐름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파가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갑니다. 잠들 때조차 멈추지 않는 24시간의 소란. 누군가는 이것을 <정보>라 부르고, 누군가는 <세상의 흐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묻습니다. '과연 이것이 나를 살찌우는가, 아니면 갉아먹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포털 사이트의 뉴스 탭을 누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상한 음식을 피하듯,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곳엔 내가 찾는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헤드라인과 긴박한 속보들이 쏟아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저 흩어지는 <사건>의 파편들일뿐입니다. 그것들은 도파민이라는 달콤한 자극제를 뇌에 주사하고, "이걸 모르면 너는 뒤처질 거야"라며 은근한 공포를 판매합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게으릅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하게 비판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수용하는 쪽을 택하죠. 미디어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들어, 내 뇌의 주인 행세를 하려 듭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그 수많은 뉴스를 보며 인생의 해답을 찾은 적이 있었나?" 대답은 침묵뿐이었습니다.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요. 남은 것은 막연한 공포, 빗나간 예측,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소비했다는 찝찝함뿐이었습니다.


<해답 없는 뉴스>는 이제 정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처 처리되지 못한 마음의 쓰레기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짧은 영상과 요약된 뉴스에 매달리는 건, 어쩌면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을 잠시 잊게 해 줄 마취제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릅니다.


단순함은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소음 속에서, 나만의 고요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스마트폰의 알림을 끈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갑니다. 불편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집중은 놀라울 만큼 깊어졌습니다. 세상이 외치는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라는 구호 대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공포와 불안의 소비를 멈추고, 비로소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을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소란스러운 파도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답은 저 시끄러운 뉴스 속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의 고요한 생각, 그 선택적 <딥 스위치>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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